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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의 '오늘의 성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향하는 발길들

 

“혹시 소식 들었어요? 나는 가야 해요.” 우리는 서로를 오래 바라본다. 그 애는 얼굴이 사라진 것 같고 눈만 남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 다음 고르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참 딱한 일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평생 배운 게 모두 쓸모가 없어졌어요.” 그리고 “죽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라고 한다.

(최근에 도착한 젊은 여성에 대해) 그녀는 많은 다양한 속옷 세트와 여러 옷을 덧입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둔중하고 우스워보인다. 그녀의 얼굴은 얼룩덜룩하다. 그녀는 무방비 상태로 버려진 어린 동물처럼 모든 사람을 은밀하고 머뭇거리는 눈길로 바라본다. 이미 무너지는 상태인 이 젊은 여성이 남자, 여자, 아이들, 아기들과 한데 몰아넣어지고, 가방들이랑 수화물과 한데 섞이고, 가운데 있는 양동이 하나가 유일한 편의시설인 과밀한 화물열차에서 3일 동안 지내면 어떤 모습이 될까?

죽어가는 노인 한 사람이 혼자 쉐마를 읊으면서 실려 가는 걸 본다. ... 떠날 준비가 된 한 아버지가 아내와 자녀를 축복하고, 이어서 눈처럼 흰 턱수염을 한 늙은 랍비에게 축복받는 것을 본다. 

수용소장 그의 얼굴은 정말 심중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것은 이따끔 냉혹함이 슬픔 및 위선과 뒤섞인 길고 가는 흉터 같다. 그리고 그에게 그밖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여배우를 사귀려고 극장에 드나드는 사내와 말쑥한 미용사 보조원의 중간쯤 되는 면이다. ... 그는 사람들로 미어터질 지경인 화물차들을 따라 군대식 걸음으로 걷는다. 자기가 맡은 병자, 팔에 안겨 있는 갓난아기들, 젊은 어머니들, 머리를 민 남자들을 점검하고 있다. 몇몇 많이 아픈 사람들은 들 것에 실려 가고 있다. 그는 짜증스러운 몸짓을 한다. 그들 때문에 너무 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정말로 지금 열차 문들이 닫히고 있는 건가? 그렇다. 떼지어 빽빽이 들어찬 수많은 사람들을 태운 채 열차 문이 정말로 닫혔다. ... 수용소장은 자전거를 타고 맨 앞부터 맨 뒤까지 열차를 따라 간다. 그다음 오페레타에 등장하는 왕족 같은 가벼운 몸짓을 한다. 자그마한 당번병이 날듯이 재빨리 다가와서 경례를 하고 수용소장에게서 자전거를 넘겨받는다. 기차가 날카로운 기적 소리를 낸다. 그리고 1.020명의 유대인들이 네델란드를 떠난다.

출처 : <에티 힐레숨> 패트릭 우드하우스. 이창엽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
(에티 힐레숨 1914-1943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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