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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의 '오늘의 성찰']수용소? 혹은 수도원?

 

여기서 벌어지는 비참한 일들은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어. 사람들은 큰 막사들 안에서 하수구 안의 수많은 쥐들처럼 살고 있어. ... 지난주 어느 날 밤 포로들을 이송하는 열차가 이곳을 지나갔어. 그들의 마르고 창백한 얼굴. 그토록 피로한 모습은 본 적이 없어.... 이른 아침에 그들은 빈 화물차에 쑤셔 넣어졌고, 그다음에는 열차를 판자로 막는 동안 오래 기다려야 했어, 이제 그들은 동쪽으로 3일 동안 실려 가야 한다. 병자들에게는 바닥에 종이 매트레스를 깔아 주었어. 나머지 사람들은 밀폐된 차량 한 대당 70명가량이 가운데 양동이가 있는 맨 판자 위에서 지내야 해.. 살아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염려했다. 그리고 내 부모도 그렇게 이송될 채비를 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 옆으로 샜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거야. 여기서 벌어지는 비참한 일들은 몹시 끔찍하지만, 등 뒤의 심연으로 해가 슬그머니 물러난 늦은 밤에 나는 철조망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을 때가 많아. 그러면 자꾸만 어떤 인식이 가슴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오지. (있는 그대로의 어떤 근원적인 힘 같은 것이어서 나도 어쩔 수 없어.) 그것은 삶은 장엄하고 숭고하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전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는 인식이야.

 

정말 여기서 나는 너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살았던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또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그럴 수 있어.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사람들 아래에서, 사람들 위에서, 사람들 가운데에서 살면서도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단다.

 

미라아,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 황야 위에서 우리가 얼마나 어렸는지! 이제 우리는 좀 더 나이 들었어. 우리 스스로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평생 동안 고통으로 얼룩졌어. 하지만 마리아,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삶은 놀랍도록 선해. 나는 자꾸자꾸 삶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마리아, 우리가 적절히 보살피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신은 우리에게 안전하게 맡겨져 있어.

 

출처 : '에티 힐레숨' 패트릭 우드하우스. 이창엽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에티 힐레숨 1914-1943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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