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기생(예인) 양성교육기관이었던 수원의 권번이 21세기 현대적으로 재탄생했다. 최고의 예인이 되기 위한 두 소녀의 아름다운 경쟁이 경기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경기도무용단은 10월 3일까지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레퍼토리 시즌 신작 ‘경합(競合)_ The Battle’을 선보인다.
최진욱 도무용단 상임안무가가 안무를 맡았고, 무대 미학의 대가로 알려진 정구호 패션디자이너가 연출뿐 아니라 무대, 의상, 소품, 조명 등 공연의 모든 비주얼을 총괄한다. 경기도무용단과 정구호 연출의 호흡은 이번이 처음이다.
30일 막을 올린 작품은 1910년 수원 권번을 배경으로 어린 예비 예인들의 예술적 경합과 생활 속 이야기를 한국무용을 통해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최고의 예인이 되기 위한 선의의 경쟁과 그곳에서 피어나는 우정,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학교를 통솔하는 교장선생님과 지도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최고의 예인으로 양성하고자 열중이다.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학생들이 서둘러 청소하는 모습을 시작으로 모두 모여 기본춤을 추거나 지도교수의 장단에 맞춰 장구춤을 연습한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 몰래 장터로 나가 사물놀이패를 구경하던 연희는 우연히 최 선비를 만나게 되고 한바탕 소동을 겪는다. 연희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밤늦게 권번을 찾아온 김선비와 마음을 확인하고는 춤을 춘다. 연희의 인기척에 궁금함을 느껴 몰래 따라 나간 초희도 김선비와 마주치게 된다.
1막 ‘새 아침이 밝았네’를 시작으로 2막 ‘배움의 길은 끝이 없네’, 3막 ‘선의의 경쟁을 통한 발전’은 예인이 되기 위한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품의 말미에는 최고의 예인을 선발하기 위한 경합이 벌어진다. 연희와 초희를 선두로 나뉜 두 무리는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한다. 절도 있는 검무와 꽃을 피워내는 듯한 춘앵무를 추며 무대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뿐만 아니라 극이 더해갈수록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한복의상도 눈에 띈다. 1막에서 단출한 옷을 입었다면 2막에서는 쓰개치마를, 3막에서는 춘앵무와 검무에 어울리는 의상을 입으며 성장하고 있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정구호 연출은 “영화 ‘황진이’의 미술감독을 맡아 준비하던 중 권번이라는 교육 기관에 관심을 갖게 됐다. 평양 권번, 동래 권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원 권번에 대해 알게 됐다”면서 “권번에서 일어나는 어린 학생들의 교육, 우정,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여드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즐거우면서도 진정성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정 연출가. 그는 예인들을 키워내는 옛 권번이 오늘날 아이돌을 양성하는 엔터테인먼트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배움을 통해 세상의 예인이 된다는 의미는 매한가지라는 말이다.
최진욱 상임안무가는 무용단원들에게 13살 소녀가 될 것을 주문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덧붙여 “한국 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춤 장르들이 어떻게 보면 권번에서 지키고 계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안무는 전통 권번, 교방 무용을 습득했고 몸에 익힌 춤을 토대로 실제 권번에서 교육받고 췄던 것처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연희 역의 이예닮 상임단원과 초희 역의 이나리 차석단원은 극 중 인물을 연기하며 도무용단의 오디션을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경합스토리를 들었을 때 오디션을 준비하며 노력했던 상황이 기억난다”며 성실하고 모범적이면서도 욕심 많은 인물을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끝으로 정구호 연출은 “전통한국무용이 어렵다는 선입견 없이 아이돌그룹의 콘서트 무대를 보듯, TV 프로그램을 보듯이 편한 마음으로 오셔서 즐겁게 보시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경합_The Battle’은 3일까지 목~금 오후 8시, 토~일 오후 4시에 만나볼 수 있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