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6월 10일 만주 서간도 지역에서 신흥강습소로 출발해 일제 탄압으로 1920년 폐교되기까지 독립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가 올해로 설립 11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항일무장투쟁의 산실 신흥무관학교는 항일독립운동 기지의 건설을 위해 이회영과 이시영, 이동녕, 이상룡 등이 중국 지린성 류허현 삼원포에 설립한 신흥강습소가 그 시작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07년 결성된 항일비밀조직 신민회가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공식노선으로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의했다.
같은해 12월 이회영과 이시영 등 6형제를 시작으로 이듬해 2월 이상룡과 김동삼 등이 서간도로 이주한 뒤 5월에 자치기관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신흥(新興)이라는 뜻은 신민회의 ‘신(新)’과 구국투쟁이 왕성하게 일어난다는 의미인 ‘흥(興)’을 합친 것으로, 이 학교가 신민회의 조직적 결의에서 비롯돼 독립운동을 목표로 설립됐음을 알 수 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신흥학교에 참여하기 위해 찾아오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시설만으로 수용할 수 없게 됐고, 그해 5월 류허현 고산자로 본부를 옮기며 명칭을 신흥무관학교로 변경했다.
그러나 1920년 5월부터 일제가 서간도 일대 독립운동 세력에 대해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해 학교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3·1운동 이후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지대에서 독립군이 활발히 활동했으나 일본군의 강요로 중국 관헌들 또한 근거지 이동을 요구하며 사실상 독립군을 탄압했다.
한 달뒤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군북로독군부의 군대가 봉오동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일본군의 보복을 피해 학교로 몸을 숨겼지만, 결국 그해 7월 학교는 폐교됐다.
이 무렵 300여 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생도들이 교성대를 구성해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에 참여,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독립군 뜻 기리는 행사 열려
오늘날 우리에게는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를 통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지난 2019년 육군은 항일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신흥무관학교를 배경으로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담은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선보였다.
항일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신흥무관학교가 군대의 뿌리라는 인식에서 시작, 1907년부터 1920년까지 경술국치 전후 역사적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내용으로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보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 한복판에 서 있었던 인물을 조명했다.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무관학교를 설립한 선각자들부터 조선, 일본, 만주 등 각지에서 찾아온 무관들, 무관학교가 배출한 수많은 투사 등 그들이 이끌어간 항일무장투쟁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렸다.
국군의 뿌리를 다루는 뮤지컬이었던 만큼 당시 군 복무중이던 지창욱, 강하늘, 성규 등 배우들이 작품에 출연했다.
올해는 설립 110주년인 신흥무관학교의 잊혀진 숨은 주역들을 기리고자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독립기념관은 앞서 6월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한 웹툰 ‘신흥무관학교 새벽의 노래’를 제작했다. 전 연령이 광복을 이루기 위해 치열했던 독립운동 과정을 쉽게 되새길 수 있도록 기획한 웹툰을 공식 홈페이지에 8회 연재했다.
남양주시는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신흥무관학교의 뿌리, 남양주!’를 주제로 사진전과 인문학 콘서트 등을 개최했다. 남양주는 평탄한 관직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의 안위를 뒤로한 채 모든 재산을 신흥무관학교 창설에 쓴 민족독립운동을 주동한 이석영 선생의 고향이다.
당시 이석영광장에서 열린 공연 중 관람객 모두가 한마음으로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부르며, 신흥무관학교의 뿌리가 남양주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용인출신 독립운동가 예우해야 한다는 책임 느껴”
“신흥무관학교 110주년을 맞아 그동안 공적이 과소평가되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용인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재평가해서 제대로 예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큽니다.”
신흥무관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있어 용인 지역 사람들의 활약을 밝힌 용인문화원과 용인학연구소는 이같이 밝혔다.
용인문화원은 경기문화재단 ‘2021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민간공모 지원사업’에 선정돼 오는 11월 9일 부설 기관인 용인학연구소와 신흥무관학교 11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학술대회 ‘신흥무관학교와 용인사람들’은 신흥무관학교에서 활동한 용인독립운동가 여준, 김공집, 오광선, 이영선을 조명한다.
학술대회는 ▲1주제, 여준의 신흥무관학교 활동과 독립운동 ▲2주제, 김공집의 신흥무관학교 활동과 독립운동 ▲3주제, 오광선의 신흥무관학교 활동과 독립군 활동 ▲4주제, 이영선의 독립운동과 해방후 신흥학우단 활동을 다루며, 각각 박성순 단국대 교수와 박환 수원대 교수, 김명섭 단국대 연구교수, 조길생·김태근 용인학연구소장 등이 발표한다.
여준은 서전서숙과 오산학교에서 구국 교육운동에 전념하다가 국권피탈 후 서간도로 망명, 합니하의 신흥학교에 합류해 1913년부터 이 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해 기틀을 확립하고 독립군을 길러냈다. 그는 간도참변으로 폐교된 신흥무관학교를 부활시킨 검성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을 이어갔다.
김공집은 오산학교 출신으로 여준이 고향인 용인 죽릉리에 세운 삼악학교의 교사로 있다가 서간도로 망명, 스승과 함께 신흥학교에서도 활동했다.
죽릉리 삼악학교 출신인 오광선은 국권피탈 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이 학교 교관을 지냈다. 서로군정서 중대장으로도 활약했으며, 여준이 교장으로 있는 검성학교에서 군사 교관으로 있기도 했다.
이영선은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으로 무장 투쟁을 전개하다가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후 임시정부에서 국내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파견돼 피체됐으며 석방 후 남자현 여사 의거에 가담했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귀환 동포 생계지원 활동을 하다가 재만주 신흥학우단이 결성되자 단장으로 활약하며 이시영과 함께 신흥학교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다.
용인문화원과 용인학연구소는 공적이 과소 평가된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이 신흥무관학교에서 활약이 지대했다는 것을 밝혀 경기도민의 자긍심을 함양할 수 있는 역사콘텐츠를 제작, 그들의 업적을 알리는데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 내용은 발표와 토론을 통해 추후 ‘신흥무관학교와 용인사람들’ 책자로 발간될 예정이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