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 맑음동두천 24.2℃
  • 맑음강릉 30.6℃
  • 구름조금서울 25.1℃
  • 맑음대전 26.0℃
  • 맑음대구 26.9℃
  • 맑음울산 27.1℃
  • 맑음광주 26.5℃
  • 맑음부산 22.9℃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3.1℃
  • 구름조금강화 22.5℃
  • 맑음보은 25.1℃
  • 맑음금산 26.7℃
  • 맑음강진군 24.5℃
  • 맑음경주시 28.7℃
  • 맑음거제 24.8℃
기상청 제공

[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당신은 이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아무려면 어떤가!

㊸ 장르만 로맨스 - 조은지

 

새로 나온, 아니 오랜만에 극장가에 나온 한국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알고 보면 장르는 로맨스 영화다. 로맨스 장르가 아닌 척해도 사실은 뼛속 깊이 로맨스 영화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로맨스들이 심상치가 않다. 예전 같으면(라떼에는) 애들이 보기에 ‘좀 그런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흔히들 얘기하는 현대인들의 성 인지 성향, 우리 사회 속 차별 문제에 대한 자의식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잣대와 같은 작품일 수 있다.

 

중년 남자 교수와 학생 간의 동성애와 이웃집 아줌마와 고등학생의 미묘한 연애담이 유쾌하게 곁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보수 기독교 단체 같은, 세상의 사랑에 대해 오도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얘기한 것처럼 그런 설정들이 ‘곁들여지는’ 느낌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전면과 정면을 살짝 피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이 영화를 만든 배우 출신의 조은지 감독은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이 영화가 갖는 궁극의 주제는 내가 사랑하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만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그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근데 그 말은 영화의 후반, 남자 교수가 7년 만에 발표하는 신간 기자회견에서 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장르만 로맨스’는 이런 얘기다. 학교에서 작가론을 가르치고 있는 중년의 교수 김현(류승룡)은 이혼남이다. 전처인 박미애(오나라)와 두 번째 와이프(류현경)의 사이에서 각각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그는 한때 유명 작가였다. 그러나 책이 나온 지 7년이 지나는 동안 그의 노트북 MS 워드의 A4에는 단 한 줄의 글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지금 와이프는 어린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그는 지금 ‘기러기’이다. 전처인 미애는 툭하면 그에게 전화를 해서 오라 가라 한다. 고등학생인 아들 성경(성유빈)때문이다. 이 아들은 얼마 전 여자친구에게 차였는데 그 이유는 여친이 임신을 한 데다 그 아이의 아빠가 다른 남자 애라는 것 때문이다. 성경은 질풍노도의 청소년인 셈이다.

 

이 청소년의 눈에 비친 이혼한 엄마 아빠는 정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혼 후에도 엄마는 전남편과, 아빠는 전처와 바람을 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부부 사이의 남녀는 어느 날 서로에게 갑자기 혹해서 잠자리를 가지려 했고 그걸 아들이 목격했다는 것인데 문제는 아빠는 이미 새 결혼은 한 상태이고 엄마도 남친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엄마의 남친은 아빠의 30년 절친, 그의 소설을 전속으로 내고 있는 출판사의 대표(김희원)이다. 그러니 아들 눈으로 볼 때 이것도 바람은 바람인 것이다.

 

 

아들 성경은 제멋대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며 엄마 아빠에게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던 와중에 역시 제멋대로 사는 것 같은 옆집 아줌마(이유영)가 눈에 들어온다. 청소년의 욕정은 폭발한다. 주인공 남자이자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작가 김현의 상황은 더욱더 복잡 미묘하기 그지없다. 전처와 현재의 아내 사이의 양다리 문제도 문제지만 전처의 정부(情夫)가 30년 친구 지기라는 걸 그는 아직 모른다.

 

더 큰 문제는 게이 후배 작가의 집에 들렀다가 만난 그의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자기 과 학생) 유진(무진성)으로부터 애정의 융단폭격을 받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진이란 남자의, 김현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다. 김현은 유진의 습작 단편에 자극을 받아 둘 간의 공동 집필을 계획하고 남산의 달동네 단칸방에서 둘만의 생활을 갖기도 한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얘기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좌충우돌, 한바탕 폭소의 소동극을 향해 치닫는다.

 

 

코미디는 역시 슬랩스틱이 있어야 재미가 있다. 근데 그걸 가장 잘 하는 사람이 배우 류승룡이다. 그는 넘어지고, 얻어맞고, 무릎 꿇고, 침대에서 떨어지고, 부딪히고, 뒤로 자빠진다. 그 리듬을 가장 잘 타고, 가장 잘 이해하는 배우가 류승룡이다. 그런데 그런 류승룡을 이번에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감독인 조은지이다. 둘은, 연출과 배우의 합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코미디는 또, 서브플롯이 겹겹이 잘 쌓여져 있어야 재미가 극대화된다. 이 영화가 그렇다. 영화 속의 주제와 소재가 즐비하게 펼쳐지며, 잘 구워진 케이크처럼 착착 잘 얹혀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전처와의 혼외정사를 벌이려는 남자와 옆집 아줌마와 ‘썸’을 타게 되는 아들의 모습, 게이 남자의 애정 공세와 다른 남자와 도둑 여행을 떠나는 전처의 모습 등등 에피소드가 우당탕 거리는 척, 꼬이고 꼬이는 척, 사실은 질서정연하게 펼쳐진다. 스토리텔링이 매우 잘 짜여져 있음을 보여 준다.

 

 

배우 출신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고 보기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하다. 그렇게 보이게 하는 데는 주조연급 배우들의 합이 매우 높아서이다. 특히 출판사 대표 역을 맡은 김희원이 우는 연기는, 영화 속 오나라의 대사처럼 우는 남자가 매력 있게 보일 만큼 감칠맛이 있다. 무엇보다 김희원이란 배우가 우는 연기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신예 무진성의 참으로 예쁘게 나온다. 남자가 남자에게 이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새삼 알게 된다.

 

당신은 영화 속 중년 남자가 게이인 젊은이와 새로운 사랑을 꿈꾸게 되기를 바라는가. 영화가 그런 결말로 갔으면 좋겠는가. 아무려면 어떤가. 당신은 이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그것도 아무려면 어떤가. 세상이 이성애적 사랑과 동성애적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어떻겠는가. 그것 또한, 더더우기나 아무려면 어떠한가. 예수가 서로 사랑하라고 했거늘. 쯔쯔.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우리 사회의 막힌 부분에 대해, 마치 영화 속 오나라가 슬쩍 옆으로 다가와 허벅지를 꼬집 듯, 그렇게 꼬집고 있는 영화다. 그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기법이 돋보인다. 세상이 이 영화만큼 유쾌했으면 싶을 것이다. 그런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점도 이 영화가 선사하는 유의미한 선물 중의 하나다. 웃고들 싶으신가. 마음을 오픈하시고 이 영화를 즐기시기들 바란다. 마침 영화 속 출판사 이름도 오픈 마인드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