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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30 - 어느 개성상인의 선물, 그 후

 ‘후덕(厚德) 재물(載物)’. 주역에서 이르길 ‘덕을 쌓은 후에 재물을 취하라’ 했다.

 

재물을 취하고도 부자가 아닌 것은 덕을 쌓지 못함이라 했으니 그저 자기 앞자락에 재물을 끌어모은다고 다 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덕을 두껍게 한 사람이 만물을 포용한다는 말로 대변되는 말, 덕을 쌓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덕불고(德不孤), 오죽하면 ‘덕을 쌓고 나눔이 외롭지 않다’라고 했을까. 분명 외로워 이웃이 생긴다고(必有隣) 했을 것이다.

 

이제 덕과 부자 타령 접고 길을 나서보자. 입동 추위가 일기 예보에 한 꺼풀 더 입은 것이 둔하게 느껴진다.

 

‘미추홀구 비류대로’로 접어드니 지난 회차의 ‘문학산’ 이야기 중 ‘비류백제’가 다시 생각난다. 이 길이 슬픈 길인 것 같다.

 

‘송암미술관’ 경내에 들어서니 다른 곳에서 느껴보지 못한, 낙엽 구르는 소리가 꼭 ‘비류’의 애가 타는 소리 같이 들린다.

 

‘민화(民畵), 비밀의 화원을 품다’(6월 15일~11월 28일)展을 보고 입속에서 구르는 투정이 절로 난다. “조금만 더 오래 사실 것을.”

 

이 민화전은 ‘인천동양화학주식회사’ 창업자 송암(松巖) 이회림(李會林 1917년 4월 17일~2007년 7월 18일)이 작고 전 인천시에 기증(송암미술관 2005년 6월 13일)된 유물로 이뤄진 전시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우리의 정서와 취향을 나타내며 실내를 정원처럼 꾸며 사계절을 즐겼기에 ‘백성의 그림’이라고 했다.

 

4년 전, ‘어느 개성상인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제호의 전이 열렸다. 송암 타계 10주기 추모행사로 이뤄진 기증전으로 그의 삶과 그가 사랑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1755년에 겸재(謙齌) 정선(鄭敾)이 그린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 위용을 자랑하듯 화면을 꽉 채운 소나무 아래 구름을 연상케 하는 영지버섯이 있는 그림으로 쓸쓸하면서도 의연함이 작가 심경을 쏟아낸 수(秀)작이 아닐 수 없다.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연화도(蓮花圖), 화조도(花鳥圖)를 비롯해 죽은 사람의 생전 죄업(罪業)을 심판하는 지옥의 왕, 진광왕을 시작으로 요도 전륜왕까지 열 명을 그린 불화, 10폭의 병풍이 장관이었다. 일명 시왕도(十王圖)로 2015년 10월 인천유형문화재 67호로 지정됐다.

 

동란을 기점으로 평생 수집한 1만 1200여 점의 서화, 토기, 도자, 공예작품 속에서 우리는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개성상인으로서 삶을 초탈하게 해주는 미술작품 수집이 남다른 총명과 강기가 깃든 송암의 안목은 참 명불허전이다.

 

참으로 아쉽다. 이 ‘어느 개성 상인의 마지막 선물 전’이 아쉽다는 것이다. ‘송암 타계 10주기 추모전’의 부제 전(展)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1년 뒤 송암미술관 기증 작 중 ‘평양성도’가 국가 보물 1997호로 지정(2018년 8월 21일)됐다는 사실.

 

‘평양성도’는 국립박물관에도 있으나 송암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은 가장 빠른 시기에 그려진 전도식(全圖式) 읍성도(邑城圖)로 문화재적 가치는 물론 예술적 완성도 측면에서도 귀하기 이를 데 없고, 조선 후기 지방의 연구자료로 으뜸이다. 조선의 한성(서울)이 있다면 서경(西京)은 어디인가.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이 아닌가. 이 ‘평양성도’가 송암이 사랑한 그림이 분명할 텐데 1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정녕 아쉽다는 것이다. 보고 또 봐도 싫증 없는 ‘평양성도’ 덕이 쌓인 사람,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만든 성(城)과 경(敬)이 어우러진 결과인 듯싶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시 유형문화재 68호)과 ‘목조보살좌상(69호)을 비롯한 모든 기증작들은 지금도 시(국)민을 부르고 있다.

 

송암이 준 선물(송암미술관)은 16년이 됐다. 연 20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 인천시민 300만 명에 버금가는 숫자라면 서울 종로구 송현동의 ‘이건희’ 컬렉션에 대변되는 인천의 ‘송암미술관’이라고 논한다면 과함이 있을까.

 

한때 기증된 작품 일부가 위작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위작을 감별하는 일은 전문가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끝이 없는 작가들의 위작 시비는 진행형이다.

 

진품만 보면 된다. 위작이 진품보다 더 넘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송암미술관’, 인천의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송암의 유향이 머무는 곳, 후덕재물(厚德載物)이 영근 곳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그를 기릴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볼 일이다./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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