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주의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오히려 반역자들로부터 갖은 고문과 심지어 암살까지 당했던 뒤틀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민주주의는 분단이라는 냉혹한 현실과 불가분의 관련성을 지닌다. 76년 동안 민족국가 건설(nation-state building)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분단체제의 제한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주의를 탄압한 자들이 다름 아닌, 분단에 기생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가로막는 자들인 상황에서 더 무슨 말을 하랴!
여기서 우리는 민주화 운동과 민중 생존권 투쟁을,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큰 틀의 독립운동에 포함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등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의 강제 분할이 만든 현실에서 민주화 운동은 앞으로 여전히 독립운동의 연장선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단은 민족을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몰아넣었고 민주주의를 압살했으며, 민족융성의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창조적 에너지를 소진시켰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분단체제가 철폐되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허리가 잘린 긴 수난의 세월이 사회 곳곳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분단 체제는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부분의 조작간첩 사건들과 민주화 운동에 들씌워진 혹독한 ‘빨갱이’ 누명들이 최근 잇따라 벗겨지고 무죄 판결로 이어지는 것이 그 증거이다. 외세에 빌붙은 세력은 언제나 반공을 명분으로 내세워 민주주의 말살을 획책해 왔다.
친일 분단 세력과 그 후예들은 식민 지배자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받은 불법한 권력과 재물을 쥐고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곳곳을 멋대로 흔들고 있다. 분단 잔재를 청산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 이것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명확한 시대적 인식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민중 투쟁의 대의는 언제나 민주주의 회복과 반민족세력 척결을 통한 분단 극복이었다. 압제의 아픈 사슬을 끊고 자유당 반공정권을 타도해 눈부신 민주주의의 새 하늘을 열었던 것도 분단 극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 민중이었고, 분단체제에 빌붙었던 군사독재를 부마항쟁과 광주민중항쟁을 통해 심판했던 것도 민중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 말살의 주범이 반민족 분단세력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민주화 운동이야말로 독재, 부정과 부패 등 분단에서 비롯하는 모든 부조리와 거악(巨惡)들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확인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위대한 발자취는 분단 현실의 극복을 위한 투쟁사이다. 민주화 운동은 궁극적으로 분단체제 청산 운동이어야 하며, 선조들이 벌였던 독립운동과 완전히 한 몸이 되는 지점도 바로 이곳이다. 분단 체제 종식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평생 가시밭길을 가신 위대한 언론인 리영희 선생의 타계(2010년 12월 5일) 열한 돌에 드는 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