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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녹두꽃이 떨어지면

  • 최영
  • 등록 2021.12.14 06:00:00
  • 13면

 

1980년 5월 21일 서울 변두리 여관방, 며칠 전 광주 도청 앞 시위로 검거대상 1호로 지목된 전남대 교수 몇 사람이 피신 중이었다. TV에는 ‘폭도들이 광주를 폭도에 장악했고 계엄군이 진압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뒤덮었다. 광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피비린내가 진동할 때, 뉴스를 보던 송기숙 선생이 벌떡 일어섰다. “갑시다. 광주사람들이 다 죽는다는데 우리만 여기서 이럴 수는 없소. 살아있더라도 평생 부끄러운 삶일 것이오. 차라리 가서 같이 싸우고 같이 죽읍시다. 내려갑시다.” 그 길로 3명의 전남대 교수는 전라선 막차를 타고 제 발로 사지로 들어갔다. 시민수습위를 조직하고 활동하다 계엄군에 체포되어 보안사의 모진 고문을 겪어야만 했다. ‘내란죄 중요임무종사’라는 죄명이었다.

 

소설 ‘녹두장군’의 작가 송기숙 선생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의 녹두꽃이 떨어졌다. 78년 서슬퍼런 유신치하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유신독재의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하고 구속되기도 했던 선생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두 세력에 모두 맞서며 고초를 겪었다. 선생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군사쿠데타 주동자는 모두 세상을 등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발전했으되 정치나 언론은 과연 광주에서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지금 우리는 80년 5월의 뉴스보다 공정한 뉴스를 접하고 있는가?

 

탱크를 앞세우고 총칼로 권력을 찬탈했던 쿠데타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쿠데타란 원래 ‘국가에 일격을 가한다’는 뜻으로, 그런 점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형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사냥개 역할을 했던 검찰은 민주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예외없이 선출된 권력을 사냥하며 주가를 높였다. 그리고 이젠 오랜 숙원, 스스로 임명권자가 되는 로망을 실현하려 한다. 언론은 검찰의 앵무새가 되어 기획수사를 벌이고 고발을 사주하는 국기문란이 벌어져도 별 반응이 없다. 검찰총장 출신의 후보를 둘러싼 속칭 본부장 의혹(본인, 부인, 장모를 둘러싼 의혹)은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후보가 핵심쟁점에 대해 딴소리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입을 다물어도, 실언을 거듭하고 거들먹거려도 “우리가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고 눙친다. 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수년간 진행된 검찰발 쿠데타는 이제 거의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본다. 

 

검찰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80년 군부가 그랬던 것처럼 윤석열 캠프의 중요직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십여 명의 검사출신 간부들은 검찰공화국의 요직을 맡게 될 것이며 물불 안가리는 치부과정에서 모든 애로사항을 해결해줄 검사사위는 더욱 몸값을 높이게 될 것이다. 후보가 내뱉었던 말들, ‘주 52시간제, 종부세, 최저임금제’ 등은 부자들의 욕망은 채워주되 서민들의 안전망은 걷어내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5·18 항쟁이 폭동이며 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는 사람이 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캠프, 그 캠프가 만들 세상이 나는 두렵다.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질주하고 있다. 그 앞에 우리 시대의 수많은 녹두꽃들이 허망하게 떨어져서는 안된다. 남은 삶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송기숙 선생처럼 다시 격랑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리석은 자의 지배는 이명박근혜정권으로 충분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폭주의 시대는 더 이상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