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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넌 나에게 모멸감을 줬어!’ 그녀가 그를 죽인 이유

52. 하우스 오브 구찌 - 리들리 스콧

 

시작부터 이상한 얘기지만 ‘하우스 오브 구찌’는 그렇게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근데 그렇다고 아주 엉망인, 보기가 민망할 정도라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미리 자락을 깔고 리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할리우드의 거장이자, 국내에도 영화적 팬덤을 깨나 자랑하는 리들리 스콧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스콧 영화치고 그리 걸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뿐이다. 그의 무수한 전작들,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시작해 ‘에일리언’과 ‘델마와 루이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커버넌트’ 등을 생각하면 이번 영화의 질감이 좀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는 영국 왕립예술아카데미 출신이며 기사 작위를 갖고 있을 정도다. 깨나 지식인이며 그의 영화는 대개가 늘 철학적이다. 실로 리들리 스콧 경(卿)이라 불릴 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85세이다. 고령이다. 신선하고 도발적인 영화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영화를 만들 때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작품이 ‘용서’가 되는 측면이 있다.

 

리들리 스콧의 ‘하우스 오브 구찌’를 통해 영화적 고관여층, 그러니까 마니아급 관객들은 구찌家의 비극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그 ‘진짜’ 연원을 알고 싶었고 또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그런 심층이 좀 없다. 그러니까 구찌가의 며느리였던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의 마음 속 어떤 폭풍, 그 어떤 심연의 괴물이 자신의 남편이었던 마우리찌오(아담 드라이버)를 청부 살해하게 했을까에 대한 실체를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단순하지가 않다. 너무 복잡해서 때로는 사람을 죽이고도 이해를 얻는다. 아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게 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우발적이지 않다. 죽이는 그 행위 자체보다 죽이기까지 그 과정이 더 크게 작동하기 때문에 동기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사람은 너무 사랑해서 혹은 너무 미워하고 증오해서 상대를 죽이기보다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더 나아가 그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서 상대를 세상에서 없애려고 한다.

 

그렇다면 파트리치아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남편의 사업체를 통째로 갖는 것? 아니면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는 것? 아니면 남편 자체를 지배하는 것? 아니면 남편의 집안, 곧 구찌 가문의 모든 것을 승계 받는 것? 그 막대한 재산을 독차지 하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그 모든 것 때문이었을까. 파트리치아의 마음속에는 언제부터 마우리찌오를 죽일 생각이 싹트게 된 것이었을까.

 

‘하우스 오브 구찌’는 1995년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을 맨 후 순위로 배치한다. 트럭 회사 딸이었던 여자가 세계적 패션 브랜드인 구찌의 아들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고 살아가는 과정을 전반부에 배치한다. 여자는 클럽에서 남자를 만나고 한눈에 반하기보다는 그가 구찌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남자의 아버지, 로돌프 구찌(제레미 아이언스)로부터의 냉대와 경멸을 참고 축하객 하나 없는 결혼식을 치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이런 식으로. “다 좋아. 같이 놀고, 같이 자고, 데리고 살아. 그런데 결혼만은 안 돼. 우리 집안의 유산은 물려줄 수 없어.” 아버지는 자신의 동생, 그러니까 마우리찌오의 삼촌인 알도 구찌(알 파치노)와 구찌의 모든 것을 5대5로 나눠 갖고 있다. 삼촌 알도는 조카에게 기회를 주려 한다. 그는 자신의 못난 아들이자 디자이너를 자처하는 파올로(자레드 레토)가 구찌의 명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자식보다는 조카가 더 똑똑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형인 로돌프가 죽고 전 재산의 50%가 아들인 마우리찌오에게 승계되지만 그 과정이 깔끔하지가 못하게 된다. 마우리찌오는 막대한 세금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라크 석유 재벌의 자본을 끌어 들이고, 그렇게 약화된 자신의 지분을 삼촌 알도와 사촌 파올로의 지분을 사실상 자신이 지배하는 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마우리찌오는 두 사람을 배신한다.

 

 

어찌 보면 구찌가의 모든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아내인 파트리치아가 깊이 관여했다. 그녀는 아직 심성이 약한 남편을 대신해 악역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자가 변한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성장한다. 생산력의 변화는 생산관계의 변화를 초래한다. 마우리찌오는 파트리치아가 회사 경영에 깊숙이 들어오는 것에 점점 불만을 느낀다. 게다가 그 즈음에 으레 그렇듯이 남자에게 새로운 여자, 파올라(카밀 코탄)가 생긴다. 이제 모든 위기는 폭발 직전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다시 한 번 으레 그렇듯이, 불안에 휩싸인 여자는 점점 점술가에게 의존하기 시작한다. 파트리치아는 점쟁이인 피나(셀마 헤이엑)라는 여자와 남편을 죽일 청부 살해 업자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자, 리들리 스콧은 두 가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무려 27년 전 일이다. 2030 세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니 팩트 중심으로,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보여 줄 필요도 느꼈을 것이다. 아니면 중간 중간의 깊은 ‘구멍’ –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천박한 여자로 봤던 계급계층의 심리적 갈등 부분이라거나 여자의 신분상승 욕구, 회사 소유지분과 ‘재산=돈=자본’은 혈육 간 관계조차 뛰어 넘는다는 그 만고의 진리, 겉으로는 유약해 보였으나 사실은 더 치밀하고 냉혹했던 마우리찌오의 속내, 사랑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자존심과 주도권으로 점철됐을 수도 있었던 두 사람의 관계 등등 - 중의 하나에 더 천착할 것인가 했을 것이다.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찌오를 죽인 이유는 그가 그녀에게 모멸감을 줬기 때문일 수 있다. 그게 진짜 핵심일 수 있었다. 그런데 리들리 스콧은 그런 걸 다 제치고 앞의 것, 그러니까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쪽을 택해 영화를 만든 셈이 됐다. 그래서 비교적 ‘새끈한’ 영화를 만들기는 했으나 깊이 있고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지는 못한 셈이 됐다. 영화가 다소 지나치게 평면적인 이유다.

 

이 영화에 대한 해외 평점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로튼 토마토의 평점은 332건의 리뷰 중 63% 정도만이 좋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국내 네이버 평점은 7.65로 과거사의 연원을 잘 모르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들은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별 네 개를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구찌 가의 얘기를 다루지만 구찌의 화려한 의상이나 장신구 등이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구찌 가가 소장하고 있다는 수많은 명화(名畵)들도 구스타프 클림트 정도만 나올 정도다. 아마도 영화 기획과 제작 과정에서 구찌 사(社)로부터 협조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저작권 문제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런웨이 장면도 후반 수석 디자이너였던 톰 포드 쇼 정도로만 처리됐다. 깊은 내용의 영화, 좀 더 화려한 볼거리의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 양쪽 모두에게서 불만의 목소리를 들을 만 한 셈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 90년대의 시대상과 그때를 살았던 인물들의 싱크로율이 백퍼센트에 가깝다는 점에서 영화는 꽤나 흥미롭다. 특히 사촌인 파올로 역을 한 자레드 레토는 처음엔 전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머리를 뽑고, 배의 살을 찌웠다. 자신의 원래 모습을 완전히 바꿔서 나온다. 삼촌 알도 역의 알 파치노도, 원래 이런 모습이었나 싶을 만큼 변신한 모습으로 나온다. 마우리찌오 역의 아담 드라이버도 말할 바가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같은 방송물에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모양새의 작품이다. 레이디 가가가 어떻게 저런 연기를 펼쳤을까 싶겠지만 그녀가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NYU 출신이라는 점, 그것도 예술대학인 티시(Tisch School of the Arts)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레이디 가가는 거기서 연기를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중에는 어떤 평판이 들려도 한번쯤은 꼭 보고 싶게 하는 내용의 얘기들, 작품들이 있다. 구찌 가의 비극은 언제라도 듣고 싶은 비사(秘史)급 스토리이다. 인질로 잡힌 자신의 손자를 위한 몸값을 거부해 끝내 그의 귀를 잘리게 했던 자산가 폴 게티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 얘기도 ‘올 더 머니’란 제목으로 영화화 됐으며 그것 역시 리들리 스콧이 만들었다.

 

돈에 대한 욕망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들어도 좋으니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십수 년 전의 우리사회가 그랬고 지금이 또 그렇다. 세상이 온통 부동산과 블록체인 벼락부자 얘기로 채워진 듯이 보인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그런 세상에서 이른바 적정량의 돈과 재산, 적절한 만족도의 삶과 명성이란 게 도무지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하게 해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만고의 진리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지금 이 시기 한국에 묘한 동일화(同一化)를 준다. 영화는 늘 당대의 메시지와 함께 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