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44. 광주 열미리(悅美里) 백인대(百仞臺)

 
열미리는 상열미, 중열미, 하열미로 나뉘어 있었는데, 1914년에 열미리로 통합되었다. 옛 기록에는 연미리(燕尾里)라고 했는데, 이 마을에 있는 조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충렬공(忠烈公) 구치관(具致寬)의 묫자리 형국이 제비 꼬리 같은 연미혈(燕尾穴)이기 때문에 연미리(燕尾里)라 부르던 것이 열미(悅美)로 변했다고 전한다.
 
상열미 마을에서 시작된 개울물이 하열미에서 곤지암천을 만나는데, 곤지암천에 농업용 보(洑)가 설치되었다. 황씨가 개척한 것은 ‘황씨보’라 하고 구춘서씨가 개척한 것은 ‘춘서보’ 라고 부르게 되었다.
 


열미리는 상열미 동래정씨, 중열미 진주강씨, 하열미 능성구씨의 집성촌으로 많은 문화유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아랫마을을 ‘벌열미’라고 하는데 영의정 구치관 묘와 신도비, 효자 구척(具滌) 묘, 구덕회 효자비, 조선백자 도요지, 수령 500년이 넘은 보호수, 백인대 등이 있다. 구치관은 나가서는 장수였고 들어오면 정승이었다. 세조임금의 신임이 두터워 "구치관은 나의 만리장성이다" 하였다.
 
백인대는 일명 육각정이라고도 하고 이 마을 주민들은 ‘육모정’이라고 부른다. 열미리 앞 곤지암천의 절벽 위에 있는 정자인데,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충청도에서 상경할 때 이곳에 들러 이 고장 출신의 제자인 관선재(觀善齋) 구문찬(具文粲, 1636~1693)과 더불어 경학을 강론하고 시문을 화답하던 곳이다.

 

 

백인대의 주련이 이곳 정자의 내력을 전해준다.
 
下流玉水上亭臺  아래에는 옥수가 흐르고 위로는 정자이니
 觀齋先祖講磨所  관선재 선조가 학문을 닦던 곳이라
尤翁上洛探景地  우암공이 상경길에 즐겨찾던 경승지였으니
修補後孫永世傳  지키고 가꾸어 후손에게 영세토록 전하리
 


백인대 앞 냇물에는 주인아씨와 머슴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빠져 죽은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그 후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생기자 구문찬이 송시열에게 이 절벽의 드센 기운을 막을 방도를 물었고, 송시열은 ‘百仞臺’ 글씨를 써주면서, "인명은 하늘의 뜻인지라 인력으로 어찌할 수는 없으나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이 글씨로 현판을 걸면 이 절벽의 드센 기운이 누그러들 것이오"라고 하였다.
 


열미리 옆 마을 신대리에는 평산신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신립(申砬)장군의 후손인 신성하(1665~1736)가 자주 들러 시를 읊었다.
 
坤巖百仞臺 - 伏次家親下示韻
곤지암 백인대 - 삼가 아버지가 내려주시는 운을 따라 지음
 
松石傍幽溪  그윽한 시냇물 가에 소나무와 절벽
一拳高百尺  한번 돌아보니 높이 100척이네
無人識此境  이와 같은 경치 아는 이 없고
唯有巖花落  오직 바위에는 꽃만 떨어지누나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