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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다이애나, 스펜서 가의 사람으로 남다

61. 스펜서 - 파블로 라라인

 

영화 ‘스펜서’는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야기다. 그녀의 성이 스펜서이다. 스펜서 백작 가문의 집안이라는 얘기다. 스펜서 집안은 스튜어트 왕가의 후손이다. 스튜어트 왕조라면 몇 년 전 영화로 나왔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생각하면 된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앤 여왕이었으며 앤은 스튜어트 왕가의 마지막 후손이었다. 앤 여왕 다음으로 하노버 왕조가 이어지고 그다음이 지금 엘리자베스 여왕이 제위(帝位) 중인 윈저 왕조로 연결된다. 윈저 가문은 끊임없는 유명세 혹은 구설을 낳았다. 조지 5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이라는 이혼녀를 사랑해서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린 일이나, 그 뒤를 이은 에드워드의 동생 조지 6세가 말더듬 장애를 이기고 처칠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극복한 이야기(영화 ‘킹스 스피치’) 등이 그렇다.

 

 

어쨌든 다이애나는 이런저런 왕가가 죽 내려와서 현대에 정착한 윈저가의 며느리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제목이 ‘윈저’가 아니라 ‘스펜서’인 것은 다이애나가 찰스 윈저의 아내이거나 윈저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만의 독립체로서 죽었다는 것이며, 그녀가 그러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썼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다이애나는 다이애나였다. 왕세자비도 아니고, 공작부인도 아니며, 어떤 남자의 여자도 아니었고, 대중들이 환상을 가졌던 여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냥 다이애나 스펜서로 죽었으며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의 엄마로 죽었다. 그러니까 영화 ‘스펜서’는 시작부터 다이애나란 이름의 여인이 갖는 개별성과 독립성,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영화 ‘스펜서’가 왕세자비로 살았던 다이애나의 살풍경한 왕실 일상이나 갈등, 그 장대하고 파란만장한 일생이 대서사로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1997년 다이애나 공작부인(이혼 후 그녀는 왕세자비란 호칭 대신 이렇게 불렸다)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몇 해 전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휴가 3일간의 얘기를 그린다. 그 짧은 3일 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숨 막히는 삶을 살았는지, 왕세자비로서 그녀의 삶이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증명해 낸다. 그 과정이 눈물겹다.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그녀가 왕실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믿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인 의상 담당 비서 격의 매기(샐리 홉킨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전히 『레 미제라블』을 좋아하고 『오페라의 유령』을 좋아해. 나는 중산층 여자야”. 그런 사람이었던 만큼 그녀는 왕실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의 삶은 일반 시민들처럼,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살아야 했다. 그녀는 생래적으로 왕가의 엄격한 규율에는 안 맞는 사람이었으며, 속박과 얽매임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다이애나는 대중과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건 마치 신데렐라 증후군 같은 것이어서, 사람들은 다이애나처럼 자기와 같은 부류(는 엄밀하게 얘기해서 결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들도 왕이나 왕에 준하는 가문의 사람으로, 그러니까 계층 상승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판타지를 가졌다. 다이애나는 대중들의 환상이자 꿈이었다.

 

왕실의 수석 요리사의 대런(숀 해리스)은 그런 그녀를 늘 안쓰러워했던 모양이다. 마침 다이애나는 거식증에 시달리는 때였다. 대런은 그녀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남모르게 메뉴에 넣는다. 전하가 좋아하실 만한 디저트를 만들었으니 그건 꼭 맛보시라고 얘기한다. 대런은 종종 왕세자비를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친근하게 군다. 요리사는 왕세자비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 “당신을 걱정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여왕 폐하나 왕세자만이 아니다. 궁정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걱정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걱정하고 사랑한다. 다들 당신이 잘 견뎌 내기를 간절히 원한다(당신은 일반 국민들의 꿈이자 만인의 연인이기 때문이다)”.

 

 

다이애나를 죽인 건 어쩌면 왕가의 불필요할 만큼 엄격한 규칙들(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저울에 앉아 몸무게를 재야한다는 전통 같은 것)이거나 왕세자 찰스의 외도 혹은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파파라치로 대변되는 대중의 유난한 관심이 그녀를 죽인 것일 수도 있다. 하녀 매기는 다이애나에게 말한다. “여왕이나 찰스 왕세자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맞다. 특히 찰스는 다이애나를 이해하려고 애썼으며 카밀라 파커볼스와의 불륜은 사실 결혼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니 찰스 역시 왕가의 희생자일 수 있다.

 

엄마인 엘리자베스 여왕으로서는 과거 자신의 큰 아버지였던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 부인을 만나 왕위를 버린 것처럼, 아들 찰스가 유부녀인 카밀라 때문에 왕위를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이애나와 찰스를 결혼시킨 것은 이러한 정략적 판단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는 그 같은 배경을 생각해서인지 찰스와 엘리자베스 여왕을 그렇게 혹독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왕가의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의상과 미술의 화려함은 여느 영화와는 비할 데가 못 된다. 특히 끼니때마다 갈아입어야 해서 다이애나로서는 스트레스 중의 스트레스였던 왕세자비 의상은 샤넬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의 작품이다. 헤어와 메이크업은 일본 디자이너 요시하라 와카나의 작품인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외모를 다이애나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게 만들었다.

 

미술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버킹엄 궁전과 크리스마스 휴가 3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샌드링엄 별장의 모습을 재현해 내는 데 주력한다. 샌드링엄 별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크론베르크에 있는 슐로츠 호텔의 내부를 변형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슐로츠 호텔은 과거엔 프리드리히 호프 궁이었으며 영국 하노버 왕조의 빅토리아 여왕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속에서 다이애나가 정신적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유년 시절을 환각 속에서 보게 되는 계단 신은 이 슐로츠 호텔의 계단에서 찍은 것이다.

 

인상적인 장면이 꽤나 많지만 찰스(잭 파딩)와 다이애나가 당구대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다. 당구대 사이가 유난히 멀게 느껴지게끔 각자의 시점 숏으로 교차 편집되는 이 장면은, 둘 사이가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유감없이 그려 낸다. 다이애나의 당구대 앞에는 당구공 몇 개가 흐트러져 있다. 찰스의 앞에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한 명, 특히 다이애나가 곧, 당구공 하나를 집어 들고 찰스에게 집어 던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실로 팽팽하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찰스와 다이애나가 이미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알 수 있다.

 

 

조니 그린우드가 만들어 낸 불협화음의 음악은 왕가 내부의 갈등과 위선, 촘촘한 감시체계 속 억압 심리를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영화의 오프닝 부분에서 다이애나는 벌판에 서있는 허수아비에게서 자신의 아버지가 입다 버린 외투를 벗겨 온다. 그녀는 그 옷을 매기에게 뭘 어떻게 해서든지 수선을 해달라고 한다. 그녀는 스펜서의 옷을 입으려 한다. 허수아비에게는 자기가 입던 옷을 입힌다. 스펜서로서 살고 스펜서의 것을 남기려고 하는 마음이 읽힌다.

 

샌드링엄 별장의 숲에는 사냥용 꿩을 키운다. 찰스 왕세자는 아들 윌리엄과 해리를 데리고 꿩 사냥에 나선다. 다이애나와 꿩은 죽이기 위해 키우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동일화가 느껴진다. 그녀는 아이들이 ‘꿩=자신’을 죽이기를 원치 않는다. 사냥에 나간 아이들을 울부짖어 가면서까지 빼내서 데려오는 이유이다.

 

인간은 뼛속 깊숙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 죽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들은 고통 속의 삶을 살아간다. 그걸 몸소 보여 준 인물이 바로 다이애나 스펜서이다. 다이애나는 현대판 노라(헨리크 입센의 1879년 소설 『인형의 집』 주인공)였다. 영화 ‘스펜서’를 보는 것은 그래서 고통스럽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그만 거기서 뛰쳐나와. 나오라고!’ 하녀 매기는 다이애나를 사랑한다. 그녀의 제스처에는 섹슈얼한 무엇이 있다. 그녀는 다이애나에게 말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충격, 그리고 웃음이에요”. 맞다. 우리에게도 사랑과 웃음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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