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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사랑이었을까

 

 

알 길이 없다. 거기가 흡연이 가능한 곳인지 아닌지. 소사역 1번 출구를 나와 왼쪽으로 틀면 곧장 파출소다. 파출소 앞에는 6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가 있다. 그녀의 위치는 횡단보도와 파출소를 y축 밑변으로 하는 직삼각형의 x축 높이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그리도 오묘한 꼭짓점 좌표에서 담배를 물어서일까. 야트막한 화단 담벼락에 엉덩이를 붙이고 이등변삼각형처럼 한쪽 다리를 꼰 체 담배를 피우는 그녀가 문득 궁금하다. 화단은 구청 직원들이 심어놓은 봄꽃으로 요란하지만, 내 눈에 클로즈업 되는 건 그녀 하나뿐이다.

 

- 아시죠. 술 보다 담배가 더 해로운 거.

 

임플란트 시술을 마친 의사는 금연을 요구했다. 치과 의사의 명령이 없었다면 나 또한 그녀와 한편이 되어서 담배를 태워 물었을까. 저기, 죄송한데요. 뒤통수 긁적이며 다가가 그녀에게 담배 한 개비 적선할 수 있었을까. 주신 김에 라이터도 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궁둥이를 쑥 빼고, 담배 문 입술만 그녀의 라이터를 향해 전진시킬 수 있었을까. 착각은 자유지만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황이 일어나기에는 그녀가 물고 있는, 아니 그녀에게 물림을 당하고 있는, 담배의 물림 형태와 구조가 너무 도드라졌다.

 

- 뭐래, 관심 ‘1’도 없다니까.

 

흡연과 영상통화, 그녀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줄 아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접혔다 펴지는 신상 폴더폰 화면에 담배 연기를 뿜으며 까르르 그녀가 웃었다. 웃음은 하얗게 드러나는 앞니만큼이나 신선했다. 나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환자답게 그녀의 가지런한 치아를 보며 생각했다. 틀림없어. 신상 임플란트가 맞아. 영상통화를 하는 내내 그녀의 나머지 한손은 담배를 쥐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담배를 끼운 나무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삼십여 년 전, 육교 밑에 쪼그리고 앉아 나란히 담배를 피우던 그녀처럼.

 

- 끝나면 할매집으로 모여라.

 

강의실에 있는 시간보다 거리에 있는 시간이 많던 시절이었다. 시위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시위를 막는 백골단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밀고 밀리던 시위가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육교 밑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녀와 나는 꽁초클럽 멤버였다. 버려진 꽁초를 주워서 피울 때면, 그녀는 어김없이 나무젓가락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리곤 나무젓가락 다리를 벌려 꽁초를 끼우고 라이터로 필터를 그을린 뒤에야 불을 붙였다. 신빙성이라곤 제로에 가까운 꽁초 소독법이었지만 그녀를 따라 하는 녀석도 있었다.

 

- 뼈 안 삭으려면, 니들도 소독해라. 소독.

 

꽁초를 피울 때, 나무젓가락은 그녀의 손가락 역할을 대신했다.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알던 모르던 그녀와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막걸리를 위해 손목시계를 잡혔고, 시계가 없으면 책가방을 잡히고 막걸리를 마셨다. 잔뜩 취해 강의실에서 쫓겨나는 날이면, 다시 막걸리 주전자를 보듬고 노래를 불렀다. 낮술에 취할 때면 그녀의 십팔번은 어김없이 ‘시다의 꿈’이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면, 까닭도 없이 숨이 막혀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것도 사랑이었을까. 길을 가다 불쑥, 그녀를 닮은 또 다른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시다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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