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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1. 한의원 옆 호실은 이태쯤 전에 산부인과로 바뀌었다. 가끔 직원들이 침을 맞으러 왔다. 지난 월요일, 아침 8시쯤 출근하는데 불이 환하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라 무슨 일이지? 싶었다. 한의원 청소 중에 환자분이 산부인과 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문은 열리지 않았고, 환자는 십여 분 넘게 문을 두드렸다.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바라만 보는데,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이른 시간에 병원을 찾은 건 간밤에 몹시 아팠거나, 사정이 급해서일 터다.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한데, 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걸까. 원장님 안 계셔도 어지간하면 좀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하지. 반갑게 인사하던 직원이 얄밉게 느껴졌다.

 

수요일, 오늘. 출근해서 청소하는 중, 월요일에 왜 그랬는지 알게 됐다. 의료기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 남자 둘이 비싼 진단장비를 무겁게 밀고 오는 것. 그러니까 월요일에 불이 켜져 있던 이유는,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사전 준비 중이었던 모양이다. 의료기 회사 직원들로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고 직원도 없는데 함부로 문을 열어줄 수 없었으리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속으로 직원을 나무란 내 성급함이 부끄러웠다.

 

2. 공자가 채나라로 가던 도중 쌀이 떨어져 일주일 동안이나 채소로 연명했다. 제자 중 안회가 나가 쌀을 구해 밥을 지었다. 공자가 밥 냄새에 눈을 떴는데, 안회가 밥솥을 열고 밥을 한 주먹 몰래 먹는 걸 보게 되었다. 스승이 먼저 식사하지 않았는데 제자가 몰래 밥을 훔쳐 먹다니. 공자가 안회를 깨우치려고 이렇게 말했다.

 

이밥으로 조상들께 제사를 올리자꾸나.

 

안회가 답했다. 안 됩니다. 제가 밥이 다 됐는지 보려고 밥솥을 열었는데, 그 순간 흙덩이가 밥 위로 떨어졌습니다. 버리자니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을 꺼내 먹었습니다. 부정 탔으니 제사에 올릴 수 없습니다. 새로 밥을 해서 제사 지내시지요.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 두거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3.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 그저 좁은 소견으로 시비를 가리고 이게 진실이라 우긴다. 맹인이 코끼리를 더듬듯,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듯 살아가면서 제 딴엔 눈 밝은 이처럼 굴고, 세상 이치를 훤히 아는 듯 행세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20대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보며 이런 바람을 빌었다. 부디 사람들 말을 널리, 많이, 자주 들으십시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더군요. 윤 대통령이 다른 이 말을 듣지 않고 혼자만 말하는 자가 아니길 바란다. 멀쩡한 청와대 버리고 용산을 고집하는 거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장관 임명을 강행하려는 걸 보면 기대난망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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