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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의 공동선(共同善)] 변절자들이 잘 나가는 세상

 

박정희는 남로당 군사담당 책임자였다. 한국전쟁 직전 발생한 여순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됐으나 곧바로 전향했다. 자신의 ‘세포’ 전원을 밀고해 조직을 일망타진한 공을 인정받아 군으로 복귀했다. 황국신민이 될 것임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 만주군 장교가 되었던 그는 일제 패망으로 세상이 바뀌자 남로당 간부로 변신했고, 여순사건 후에는 다시 전향해 국군 장교로 둔갑했다. 그가 시현한 전향과 변절 과정은 일반의 상상을 절한다. 쿠데타로 최고 권력자가 된 뒤에는 북에서 특사로 보낸 자신의 맏형 박상희의 절친 황태성까지 잡아 죽였다. 황은 그가 친형처럼 따르던 한 고향 출신의 ‘이념적 형님’이었다.

 

정신의학자들은 변절한 인간은 쉽게 저열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주지육림에 빠져드는 특성을 지닌다고 진단한다. 가치와 신념을 내던지고 변절할 경우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잃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 부끄러운 과거를 잊으려고 했는지 모르나 박정희는 살아 있을 때 술을 엄청 마셔댔다. 심복의 총탄에 맞아 죽은 마지막 순간에도 여자들을 곁에 두고 술판을 벌였다.

 

우리는 뜻이 맞은 친구를 ‘동지’라고 부른다. 옳은 일에 대한 변치 않는 신념과 실천을 공유하는 동반자를 뜻하는 이 말이 아무한테나 붙여지진 않는다. 독재에 저항한 사람들의 강한 동지애는 엄혹한 시절에 비밀경찰과 공안검찰의 감시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그 극한의 역경을 이겨낸 큰 힘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구타와 몽둥이질은 기본이고 물고문과 전기고문, 통닭구이를 비롯한 별의별 지독한 고문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인간백정’으로 불린 고문 기술자들은 사람을 짐승 다루듯 했다. 최고의 ‘기술자’ 이근안이 고위직까지 출세한 것도 민주 인사들을 상대로 갖은 악랄한 고문 수법을 구사해 정권의 입맛대로 허위 자백을 잘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민청련 활동가인 김근태, 이을호 뿐 아니라 언론인 송건호, 김태홍 등도 그들의 무자비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일찍 세상과 작별해야 했다. 고문자들은 심지어 참고인으로 끌고 간 박종철을 물고문하다 숨지게도 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어둠의 시대에도 불의를 이기는 힘은 동지에 대한 강한 믿음과, 역사가 진보하리라는 굳은 신념에서 나왔다. 부정의하고 부패한 세력은 필경 인간의 선한 의지로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곳이 변절자와 동지의 행로가 갈리는 지점이다.

 

한번이라도 배신한 적이 있는 자는 반드시 또 배신하게 돼 있다.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되풀이되는 까닭은 이들이 이미 인격분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너진 자들은 사익을 위해 한 순간 서로 돕다가 배신하기도 하는데, 결국 다툼 끝에 공멸하는 법이다. 정부가 신임 경찰국장으로 노동운동 프락치 출신으로 특채된 의혹이 있는 인물을 발탁했다. 그가 과거 무슨 짓을 얼마나 했는지는 공직 수행에 앞선 필수 검증대상이 돼야 한다. 검찰개혁을 철썩 같이 믿게 하고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에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윤석열 대통령의 선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위 공직자의 공적 마인드는 전체 공직사회의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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