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공공성 강화와 투명 경영을 위해 마련된 ‘노동이사제’. 경기도는 2018년 조례 제정을 통해 2019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이사제 조례 해석의 모호성, 노동조합과의 갈등, 기관별 통합 운영 방안 부족 등으로 제도 정착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경기신문은 경기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허울뿐인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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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허울뿐인 경기도 노동이사제…도입 4년, ‘거수기’→‘한 표’ 권한 인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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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4년 차. 경기도내 공공기관에는 대부분 제2대 노동이사까지 선출됐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노동이사들은 사측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했다. 도입 초기만해도 거수기 역할로 봤지만, 이제는 이사회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받고 있다.
노동자 측은 노동이사를 통해 이사회 안건 등 그동안 비밀리에 부쳐졌던 사내 정보를 얻으면서 정보의 양·질적 향상이 이뤄진 점을 든다.
노사 양측 모두 노동이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커졌지만 갈 길은 멀다. 노동이사제 안착을 위해선 노동이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과 함께 제반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12월 경기도콘텐츠진흥원 1대 노동이사로 선출돼 2년 간 활동한 임이랑 매니저는 “1대 노동이사로 활동할 때만 해도 사측은 노동이사에게 ‘거수기’라는 표현을 썼다”며 “노동이사제도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매우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2대 노동이사까지 선출된 뒤 이사회 안건을 노동이사에게 설명해주는 등 사측에서 노동이사를 신경쓰기 시작했다. 작지만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노동이사는 ‘이사회 의결권’, ‘안건제출권’, ‘정보열람권’ 등의 권한을 갖는다. 임 매니저는 이사회 안건을 한 차례 부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노동이사 한 표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그는 “이사회 제출 안건이 직원들의 뜻과 맞지 않아 반대하며 의견 개진을 하고 설득했는데, 과반의 이사들이 제시한 의견에 찬성해 안건이 부결된 사례가 있었다”며 “사측에서도 노동이사가 힘 있는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조재웅 경기도일자리재단 2대 노동이사도 “노동이사가 이사회에서 배석하면서 임원들이 한 번 더 생각하고 질문한다거나 결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노동자 측도 인식 개선이 이뤄진 건 마찬가지다. 조 노동이사는 “초창기에는 혼란이 있었다. 노동이사와 노조위원장 모두 선출직이다 보니 헷갈려했는데 전 직원 대상으로 6개월마다 업무 보고회 등을 열고 노동이사 역할을 설명하면서 차츰 인식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 노동이사 역할 위한 여건 ‘부족’…자발적 협의체 꾸려 정체성 확립
노동이사제 도입이 사측과 노측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한 여건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대부분 노동이사는 본업과 겸직하는데 기관별로 다르지만 노동이사로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통상 200~300시간 정도다. 1년에 25일가량 되는 셈이다.
조 노동이사는 “노동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된 시간이나 역할에 대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며 “경기도 조례나 각 기관의 규정을 통해 노동이사의 활동을 보장하고 노동이사 임명 기간 동안 업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이사제 도입 초기에는 노동이사 역할에 대한 교육 부재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노동이사들도 많았다. 이에 따라 경기도 노동이사들은 ‘경기도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경노이협)’를 꾸려 노동이사제가 안착할 수 있도록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조 노동이사는 “초기에는 노동이사를 뽑아놓고 교육이나 업무 시간 등의 제도적 장치가 부족했다”며 “'경노이협'을 통해 노동이사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거나 교육을 받으면서 역할에 대한 개념이 잡혀갔다”고 설명했다.
임 매니저도 “각 기관에 1명씩 있는 노동이사들이 협의체를 마련해 역할을 고민하고 논의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됐다”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결과적으로 회사와 노동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