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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톺아보기(상)

소설집 9종, 앤솔러지 시집 1종 출간
검은 고양이·김장·도메인·부표·산책 등

경기도 예술인과 예술단체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창작·발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지원하는 ‘경기예술지원’ 사업.

 

이 중에서도 기초예술 문학창작지원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등단 문인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지원, 그들의 작품을 시리즈로 출간하는 기획이다.

 

이는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예술인들에게 단비로 내려 신작 창작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2022년 선정된 작가 22명의 작품은 지난해 12월 23일 소설집 9권과 앤솔러지 시집 1권의 결실을 맺었다.

 

그  중 5편을 먼저 소개한다.

 

 

◇ 검은 고양이 / 백건우 / 84쪽 / 8800원

 

시골에서 이십 년째 생활하며 만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백건우 작가. 1988년 제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고,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가 경기예술지원을 통해 첫 소설집 ‘검은 고양이’로 돌아왔다. 이는 첫 장편 ‘사이버제국의 해커들’(1998) 이후 24년 만의 단행본 출간이다.

 

표제작 ‘검은 고양이’는 문헌학자로 보이는 작중 화자가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속 고양이의 비밀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역사가 교차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평소 고서적과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나’는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홍문원’이라는 문헌을 읽게 된다. 책에서 아편 밀매자들이 만주에서 조선으로 아편을 운반하기 위해 사용한 기상천외한 수법 중 하나, ‘편지나 액자 속에 마약을 넣어서 운반했다’는 기록을 접하고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느낀다.

 

얼마 뒤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어느 날 그림 속 고양이가 살아 있는 듯 ‘나’를 응시하는 느낌을 받은 것. 처음엔 원고 마감에 쫓겨 신경이 쇠약해진 탓이라 여겼지만, 이웃에게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뒤 ‘나’는 그것이 단순한 환영이 아님을 깨닫는다.

 

 

◇ 김장 / 송지현 / 88쪽 / 8800원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해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송지현의 소설집 ‘김장’은 겨울과 여름의 계절감을 입은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김장’,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 두 편이 수록됐다.

 

작가는 소설에서 유년으로의 퇴행을 경계한다. 그와 동시에 ‘대인’이 되는 것을 거부해온 청춘들이 어떠한 ‘소인’으로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유년’ 시절 미스터리로 남은 세계와 ‘성년’ 시절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세계 사이를 떠돌며, 기억 속에 가려진 진짜 ‘이야기’들을 추적해 나가는 방식이다.

 

표제작 ‘김장’은 도시에 살던 주인공이 김장철을 맞아 동생과 함께 시골집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할머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겨울맞이 연례행사를 돕기 위해서다.

 

물론 ‘외가를 통틀어 회사고 가게고 아무데도 안 가는’ 잉여인력이기에 김장에 차출된 셈이지만, 그로 인해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돌아보게 된다.

 

옆집 진수네 소는 진즉 사라졌고, 진수의 아빠도 오래전에 죽었다. 어릴 때 함께 놀았다는 옆옆집 손자 ‘성철’도 냇가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옛 친구의 부고를 ‘나’는 생존을 위한 음식들을 만들면서 전해 듣는다.

 

 

◇ 도메인 / 유재영 / 96쪽 / 8800원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집 ‘하바롭스크의 밤’, ‘우리가 주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출간한 유재영의 ‘도메인’은 ‘영’, ‘역’ 두 작품을 묶었다. 장르적 상상력이 주는 쾌감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이다. 익숙한 소재는 순식간에 변주되고 이야기의 주체는 수시로 바뀐다. 하나의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며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

 

표제작 ‘영’은 독자들의 불길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부부가 캠핑을 떠나는 길에 일어난 영문 모를 사고부터 어딘가 수상쩍은 캠핑장 관리인, 캠핑장을 서성거리는 개와 고양이, 모닥불에 둘러앉은 지인들 사이 오가는 무서운 이야기, 여러 구의 자살한 시체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보석의 발견 등 불안감을 조성하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전말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한 의문 또한 해소되지 않은 채, 이야기는 계속해서 촉발된다.

 

 

◇ 부표 / 이대연 / 84쪽 / 8800원

 

2014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검란’이 당선돼 등단한 이대연의 두번째 소설집 ‘부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써내려 온 듯한 두 소설 ‘부표’와 ‘전(傳)’이 담겨 있다. 몇 백 년의 시공간을 사이에 둔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한 문장 한 문장 틈새를 들춰내고 파문을 만든다.

 

표제작 ‘부표’는 바다에 띄운 부표를 교체하는 작업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맞닥뜨린 주인공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인양선 크레인이 낡은 부표를 끌어올리는 현장감 넘치는 장면 묘사로 시작한다. 크레인이 끌어올린 낡은 부표는 이제 소용이 다해 새 부표로 교체돼야 한다. 주인공인 ‘나’는 얼마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고 삼우제를 앞두고 있다. 이후 작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조명한다.

 

일확천금을 꿈꿨던 ‘나’의 아버지. 원양어선을 타기도 하고 화물선을 타기도 했던 그는 ‘제법 바닷사람 같은 목돈’을 가져오곤 했지만 그 돈은 그가 돌봐야 할 가족들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남긴 통장을 보며 ‘인생역전’을 바랐던 그의 덧없었던 삶을 씁쓸하게 되돌아본다.

 

 

◇ 산책 / 김이은 / 80쪽 / 8800원

 

200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소외된 사람들의 내밀한 고통을 예리하게 비췄던 김이은의 소설집 ‘산책’은 ‘산책’과 ‘경유지에서’라는 두 단편을 통해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우리 안의 뒤틀린 욕망을 다룬다.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표제작 ‘산책’은 서울 강남에 사는 언니 ‘윤경’이 수도권 변두리 신도시로 이주한 동생 ‘여경’의 집을 방문해 단지 내를 함께 산책하는 이야기이다.

 

작품이 전개될수록 산책의 여유는 온 데 간 데 없고 불안감이 스며든다. 여경은 강남구 역삼동 브랜드 아파트로 이주한 언니 윤경의 이십이 평 집에 대해 ‘강남 하꼬방 같은 데’라고 힐난하고, 윤경은 신도시 삼십사 평짜리 여경의 집에 대해 ‘변두리 싸구려 집’이라고 폄하한다.

 

두 자매의 신경전은 ‘가난’의 기억 때문이다. 태흥사라는 사찰에서 공양주 노릇을 한 할머니와 접선하듯 만났던 유년 시절은 두 자매에게 망각하고 싶은 상처이다.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으로 그들이 가진 가난의 트라우마가 나타난다. 윤경과 여경은 ‘편안한 미래’를 마주할 수 있을까.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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