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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톺아보기(하)

소설집 9종, 앤솔러지 시집 1종 출간
세리의 크레이터·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등

경기도 예술인과 예술단체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창작·발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지원하는 ‘경기예술지원’ 사업.

 

이 중에서도 기초예술 문학창작지원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등단 문인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지원, 그들의 작품을 시리즈로 출간하는 기획이다.

 

이는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예술인들에게 단비로 내려 신작 창작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2022년 선정된 작가 22명의 작품은 지난해 12월 23일 소설집 9권과 앤솔러지 시집 1권의 결실을 맺었다.

 

앞서 검은 고양이, 김장, 도메인, 부표, 산책에 이은 소설집 4권과 앤솔러지 시집 1권을 소개한다.

 

 

◇ 세리의 크레이터 / 정남일 / 92쪽 / 8800원

 

2017년 영남일보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정남일의 첫 소설집 ‘세리의 크레이터’는 운석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한 ‘세리의 크레이터’와 밀도감 있는 문장으로 쓰인 ‘옆집에 행크가 산다’가 수록됐다.

 

두 작품의 중심에는 ‘관계’가 있다. 작가는 우연을 필연으로, 나아가 기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연인들과 환대와 혐오, 구별 짓기의 논리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의 갈등을 통해 함께 살아가기의 문제, 관계에 대한 성찰을 그려냈다.

 

표제작 ‘세리의 크레이터’는 계속된 우연을 안고 가는 연인들의 이야기이다. 친구의 전 여자친구 ‘세리’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그녀의 오피스텔에 들어가 살게 된 ‘나’는, 한 달쯤 됐을 무렵 세리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배 속의 그 아이가 친구와의 사이에서 잉태된 아이임을 확인한 두 사람은 곤혹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린다.

 

세리는 미혼모였던 어머니가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 것을 보고서 자신을 낳기로 결심했음을 거듭 상기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나’는 네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세리의 말에 오만 년 전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던 초계분지로 함께 향한다.

 

 

◇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박초이 / 96쪽 / 8800원

 

2016년 문학나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초이의 소설집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에는 고립과 소외의 감각을 공통분모로 한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와 ‘사소한 사실들’ 두 편의 소설이 담겼다. 연작소설이 아님에도 두 작품은 미래를 공통분모로 나눠가진 반쪽처럼 서로를 되비춘다.

 

표제작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는 주인공 ‘나’가 옛 연인 ‘구’가 돌보던 고양이 ‘미래’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미래를 애도하고 과거를 추억하는 이야기이다. 역 매표소에서 일하던 ‘나’는 열차 기관사인 구와 사귀었다가 지금은 헤어진 상태다.

 

그녀는 결혼을 약속했던 한 남자에게 배신당해 파혼을 하고,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한 채로 지내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길고양이 밥을 주는 구를 만나게 됐고, 온전한 믿음이 비로소 회복되려는 찰나 짧은 연애 끝에 헤어진다.

 

시간이 흘러 구는 고양이 미래를 보내는 마지막 자리에 그동안 미래를 돌봐줬던 그녀와 구의 새 여자친구 ‘지안’을 초대한다. 미래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위태위태하게 포개진다.

 

 

◇ 십분 이해하는 사이 / 김주원 / 92쪽 / 8800원

 

제28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주원의 두 번째 소설집 ‘십분 이해하는 사이’는 표제작과 ‘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 두 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책은 자살, 학교 폭력, 왕따 등 청소년 사회 문제와 오늘날 청년 세대가 당면한 취업난, 불안, 소외감 등 작가의 고민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표제작 ‘십분 이해하는 사이’는 제목처럼 십 분 동안 이뤄지는 선의와 교감, 이해에 대한 단편으로 학교 폭력과 청소년 자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봄날 오후, ‘나’는 학교 5층 옥상에서 투신하려는 동년배 고교생을 보고 조심스레 다가가 설득한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교정을 내려다보며 삶과 죽음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는 너 이해한다’고 반복해 말하는 ‘나’, 그 말에 큰 거부감 없이 상황에 젖어드는 ‘너’로 지칭되는 아이. 사실 두 사람은 이미 ‘왕따’로 인해 그야말로 고독하게 자살한 지 오래다. 단지 죽음의 순간을 반복하고 있는 유령일 뿐이었다. 이러한 반전이 드러나면서 이 소설은 서두에서부터 다시, 즉 두 번 읽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정은영 / 84쪽 / 8800원

 

우리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SF라는 프레임에 담아 즐거움을 전파하는 정은영의 신작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경쾌한 상상력으로 쓰인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와 ‘소년과 소년’ 두 작품이 실렸다. 이 소설들은 현재 작가가 집필 중인 부모 연작 시리즈의 첫번째,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 사이사이에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물음들이 던져지고,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성에 대한 애틋한 연민, ‘버그’의 발생, 서사의 충돌이 있다.

 

표제작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기술이 포화한 사회의 미래 모습을 제시한다. 2050년경의 세상은 ‘혐오 없는 도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장애아 출산율 0%에 도달’한다는 목표 아래 인구관리국이 준비한 각종 출산 프로그램으로 실행된다.

 

주인공 임산부 로봇 ‘헐스(HERS)’와 그녀의 동료들이 캡슐형 인공자궁 대신 인간의 아이를 출산하는 프로그램은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로봇 일원칙의 준수로 무난히 성공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어느 날 ‘행복이’를 임신한 헐스는 기형아 검사를 위해 고물상이 관리하는 태아보호센터로 이동하는데, 행복이가 안면장애를 지닌 것으로 판정난다. 헐스는 다른 임산부 로봇들의 도움을 받아 행복이 지키기에 나선다.

 

 

◇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공광규, 권민경, 김상혁, 김안, 김이듬, 김철, 서춘희, 유종인, 이병철, 전영관, 정민식, 조성국, 한연희 / 92쪽 / 1만 4500원

 

‘나는 오늘 메모를 지우다 내 미래를 지울 뻔했다/ 네가 갈겨놓은 그림 속에서 네 무의식을 읽을 수 있구나/ 불안과 트라우마가 가득하구나/ 스트레스를 줄이라니 가혹하지/ 이따위 쉬운 말’ (권민경 시 ‘낙서 금지’에서)

 

‘이 사각은 너무 부드럽고 탄력적이다/ 그로기상태의 상대 같은 구석은 아늑하다/ 몰리는 일, 한없이 쓰러지고 싶은 곳/ 얼굴에 빗방울을 받고 싶은 그곳’ (김철 시 ‘링’에서)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는 우리 시단의 경향과 세대를 아우르는 신작 시집이다. 등단 연도 1986년부터 2021년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13명의 시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양한 시인들 만큼이나 일상, 노동, 역사적 상상력 등 다채로운 시각들로 바라본 세상이 담겨 있다. 이는 다시 저마다의 사연과 감성을 가진 독자들에게 또다른 울림으로 전달된다.

 

시는 언제나 현재성의 언어로 쓰이고, 동시대 그 사회의 가장 젊은 목소리를 대변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장르 자체의 ‘젊음’이 책의 제목처럼 싱싱한 시를 태어나게 했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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