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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쳇지피티와 그래스프 리플렉스


2022년 11월 30일은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이날 공개된 인공지능 채팅로봇인 쳇지피티는 바로 인간의 일상과 인간관계,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게임체인저로 등극했다. 출시된 지 단 두 달 만에 쳇지피티의 월 사용자수 1억을 돌파했다.

 

쳇지피티가 가장 먼저 판을 뒤흔들어놓고 있는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영역으로 여겼던 예술분야다. 화가와 음악가들은 경악하고 있다. 이미 AI가 그린 그림이 미국의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쳇지피티를 개발한 오픈AI가 내놓은 ‘달리2’와 미드저니AI연구소가 내놓은 ‘미드저니’에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를 고흐 화풍으로 그려줘’라고 요구하면 30초만에 그려준다. 음악AI에 ‘연인을 잃은 사람을 위한 슬픈 발라드풍 노래를 만들어 줘’라고 요구하면 그럴듯한 가사까지 붙인 노래를 작곡해준다.

 

당혹스럽기는 언어를 다루는 문예창작학과의 강의실도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쳇지피티라는 이 낯선 경쟁자가 어디까지 자신의 미래를 위협하게 될지 짐작하지 못한다. 교수들은 당장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의 어디서 얼마까지를 쳇지피티가 써준 것인지 알기 어렵다. 문학이 직면한 당혹스러움은 쳇지피티가 인간 고유의 문자언어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별해주는 특별한 능력이었다. 인간은 언어로 역사를 갱신해왔다. 언어로 만든 신화와 전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언어로 정한 법률로 질서를 유지하고, 언어로 과학과 기술을 개발하고 전승해왔다. 그런데 순식간에 세계의 수많은 언어를 모두 학습하고 사용하는 쳇지피티가 출현했다.

 

며칠 전에 내가 몸담은 학교에서 쳇지피티 특강을 연다는 공지가 떴다. 소설전공 학생들과 같이 들으려고 바로 신청했는데 어느새 마감이었다. 대형 강의실로 바꾸고 추가신청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공지가 뜨자마자 마감이었다. 쳇지피가 몰고 올 변화는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하던 상상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교육체계와 인간의 일상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류의 문명을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언어의 새로운 사용자의 출현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진 영혼의 집이라고 하는 말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세계가 새로운 언어사용자의 출현에 긴장하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언어 현실은 어떤가. 온갖 무논리와 혐오로 가득한 언어들이 크고 작은 언론을 도배한다. 가장 역동적인 청년들의 나라였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주춤거리고만 있다. 반면에 지나간 역동의 시대를 다 살아낸 노인들은 30년, 40년 전에나 통했던 비이성적인 언어에 기대어 기득권을 움켜쥐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스프 리플렉스』, 현직 내과의사인 소설가 김강이 쳇지피티3.5의 출시에 맞추어 내놓은 소설책의 제목이다. 그래스프 리플렉스는 신생아가 무엇이든 반사적으로 움켜쥐는 생존본능을 가리키는 의학용어다. 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는 모든 부를 움켜준 노인들이 노인들의 표로 권력을 획득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한국의 근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모든 장기를 인공으로 교체한 노인들은 130세가 되도록 살며 움켜쥔 부와 권력을 내놓지 않고, 청년들은 한탄한다.

 

- 노인들이 신 같아요.

그런 청년들에게 세상을 지배하는 노인들은 말한다.

- 자네들도 언젠가 늙을 거 아닌가.

아직은 쳇지피티가 쓰지 못할 이야기를 담은 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읽으며 쳇지피 시대를 거꾸로 가는 한국사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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