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을 가득 채운 한 송이 장미꽃. 순백의 백장미는 ‘사랑’, ‘평화’, ‘순결’, ‘존경’의 꽃말을 지녔다. 그런데, 시든 백장미에도 꽃말이 존재한다. 바로 ‘당신과 영원을 맹세하다’이다.
유한한 인간의 시간 앞에 사진은 어쩌면 일평생 변치 않고 자신이 정한 뜻을 지켜내겠다는 맹세의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광주 닻미술관이 오는 6월 18일까지 선보이는 전시 ‘풍경, 저 너머’는 기록 사진으로 시작해 예술로서 사진의 확장을 보여 주는 주명덕 작가의 후반기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21년 닻미술관에서 열린 주명덕의 사진전 ‘집’에 이어 열리는 두 번째 전시이다. ▲잃어버린 풍경 ▲장미 ▲사진 속의 추상 등 세 가지 연작을 함께 엮었다.
관람객은 한국의 옛 삶과 그 속의 사람들을 담았던 작가의 기록 사진에서 출발해,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자연의 풍경으로 그의 시선을 따라가고, 일상 속 대상을 빛으로써 마주하게 된다.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순백의 장미와 하나로 만나지는 검은 풍경, 선명하고도 모호한 질감의 추상 사진이 함께 전시장에 있다. 이는 생기가 찾아온 봄과 그것들이 떠나버린 겨울 사이에 남겨진 허공과도 같다. 사라지는 것과 남겨진 것들 사이에 작가의 사진이 있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땅의 겨울나무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모습이다. 작가는 개념과 논리의 구조로 표면을 채우는 현대 사진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담백한 풍경을 전한다.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가볍게 찍어낸 단색의 추상 사진에도 그 어떤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빛이 닿았던 물질의 얇은 표면을 걷어내면 아무것도 없다. 필요한 것은 말보다는 침묵, 지식보다는 감각과 직관으로 다가가야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사진가로서 필요 이상을 설명하지 않고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며, 작위적인 개입을 피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한마음을 품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 작가는 사진의 고유한 원형을 지키며 사진으로 저 너머 풍경을 담아낸다.
전시 관계자는 “기록의 프레임을 넘어 예술사진으로 확장되는 작품 속에서 생명과 시간 그리고 빛을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