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치미션재단이 ‘억만년 보관소(Billion Year Archive)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습니다. 혹시 닥칠지 모르는 지구 최후의 날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담긴 백업자료를 달에 보관하려고 했습니다. 그 백업자료를 통해서, 살아남은 후손들로 하여금 인류의 문명을 다시 복원시키겠다는 취지였습니다. 2019년 아치미션재단은 3천만 페이지 분량의 저장장치 25개를 탐사선에 실어 달로 보냈습니다. 이 때 실어 보낸 저장장치를 ‘달 도서관(Lunar Library)’이라고 부릅니다. 달 도서관에는 위키백과 영어판과 5000가지 언어로 제작된 번역샘플 15억 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탐사선은 무사히 달 표면에 착륙하지 못했습니다. 달의 표면 어딘가에는 지금도 부서진 달 도서관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달 도서관과 함께 나뒹굴고 있는 위키백과는 온라인 백과사전입니다. 위키백과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웹 기반의 백과사전입니다. 위키백과는 누구나 참여하여 문서를 수정하고 배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상업적인 목적으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종이로 만든 백과사전은 경쟁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244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조차 더 이상 종이책을 찍지 않습니다. 현재 위키백과에는 307개 언어로 5000만 개 이상의 지식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달 순수 방문자 숫자는 17억 명에 달합니다. 말 그대로 집단지성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식정보의 품질과 신뢰도인데, 위키백과의 지식 생성과정에는 그 어떤 검증절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위키백과는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위험은 지식정보의 편향과 독점입니다. 위키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위키백과 지식정보를 편집하는 사람의 85%가 남성이고, 영어판의 경우에는 80%의 백인남성이 지식정보를 편집하였습니다.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 역시 극소수여서, 1%의 사용자가 전체 정보의 절반을 생산하였습니다. 두 번째 위험은 악의적인 편집과 왜곡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짜정보는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에 악용되기도 합니다. 2008년 영국의 BBC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일본 궁내청과 미국 중앙정보국, 로마 교황청과 한국 국정원 등도 위키백과 문서를 조작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공동창업자였던 래리 싱어가 위키백과를 떠난 것도 그 두 가지 위험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위키백과의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서구에서 개발된 인공지능(AI)의 대부분이 위키백과를 지식 베이스로 삼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사유(思惟)의 반대편입니다. 편리를 쫓아 사유를 버려선 곤란합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일수록 ‘기묘한 물고기’로 살 필요가 있습니다. 350년 전, 영국의 왕 찰스2세는 물고기가 죽으면 무게가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왕립학회 학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왕의 생각이 틀린 걸 알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행여 불경죄로 처벌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 젊은 학자가 왕에게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실험 결과 살아있는 물고기가 들어있는 어항과 죽은 물고기가 들어있는 어항의 무게는 같았습니다. 그제야 왕이 짧게 말했습니다. “기묘한 물고기로군.”
이후, 기묘한 물고기는 ‘남과 같지 않은 특별한 사람’을 의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