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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이 전하는 인간의 존엄과 사랑…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정치사상범과 성소수자의 사랑 이야기…왕가위 영화 ‘해피투게더’로 영화화
박제영 연출 “2024 현재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도전, 개인의 존엄과 위로 전해”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마누엘 푸익(1932~1990)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1997년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76년 소설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1983년 희곡으로 만들어졌으며, 1993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토니어워즈 베스트 뮤지컬상을 받았다.

 

주인공은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정치사상범 ‘발렌틴’과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 ‘몰리나’다. 둘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빌라 데보토 감옥에 갇혀 있는데, ‘발렌틴’은 정치, 사상, 이념에는 관심이 없고 소극적이고 현실도피적인 ‘몰리나’를 적대시한다. ‘몰리나’ 역시 차갑고 이성적이며 냉혈한 같은 ‘발렌틴’을 이해할 수 없다.

 

둘은 따분한 감옥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영화 얘기로 시간을 보낸다. ‘발렌틴’은 ‘몰리나’의 영화 얘기에 언짢아하지만 점점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발렌틴’은 ‘몰리나’가 좋아하는 죽을 챙겨주고 ‘몰리나’는 배가 아픈 ‘발렌틴’을 간호한다.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은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사랑하게 된다.

 

 

1976년 출간 당시 정치사상범 얘기를 다루고 있어 모국인 아르헨티나에서 판매 금지를 당한 이 작품은 스페인에서 출간돼 큰 인기를 끌었다. 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아르헨티나 정치 상황에 환멸을 느껴 망명길에 오르기도 한 작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성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간애와 존엄을 말한다.

 

동성애라는 사회적 금기를 다루며 여성과 남성을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비로 가두는 기존 관념에 대항하기도 한다. ‘발렌틴’과 ‘몰리나’가 성적 합일에 이르는 부분에선 관념의 허구성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이를 위해 정신분석학자들의 성에 대한 이론과 반론들을 각주형태로 제시했는데 독자들은 각주와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극을 이해하게 된다.

 

극은 ‘네가 좋아하는 옷이잖아’, ‘너의 여자 친구엔 관심이 없어’ 등 섬세한 대사에 집중하도록 구성돼 있다. 연극, 뮤지컬로 만들었을 때 유리한 극문학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상호텍스트성과 이야기 안에 6개의 이야기가 있는 중층적인 구조를 띤다. 개성과 자율성, 대중성 등을 중시한 문화 사조인 라틴아메리카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을 따라간다.

 

 

2일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제영 연출은 “극은 2024년 현재에도 적용돼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도전한다”며 “다수의 의견에 억눌리는 소수의 의견, 사회에 억압받는 개인의 존엄성들을 감옥이라는 상징적인 공간과 함께 전달하고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가 서로에 대한 위안이 되며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두 인물이 대척점에 있는데,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부분에서 좋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돕고 싶다는 마음과 자신의 이상을 주입해가려고 하는 충돌 지점이 서로를 좀 더 존중하게 하는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또 “제일 처음 고민했던 부분이 ‘‘몰리나’가 어떻게 여성으로서 받아들여질까‘였다”며 “다리를 벌리든 털털하게 움직이든 ’내가 여자‘라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도록 조언해 배우들도 여자처럼 행동하기보단 자유롭게 움직여 각자의 매력이 더 도드라지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몰리나’ 역을 맡은 전박찬 배우는 “관객분들이 ‘거미여인의 키스’를 단순히 성소수자와 정치사상범의 로맨스가 아닌 현대사회, 특히 2024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와 차별, 억압 그리고 역사에 있었던 운동과 관련된 작품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좀 더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몰리나’ 역을 맡은 정일우 배우는 “정일우가 갖고 있는 색깔들이 ‘몰리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배역을 맡았고, ‘몰리나’의 유리알처럼 건들면 깨질 것 같은 약해 보이면서도 자기의 감정이나 마음에 솔직한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노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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