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살면서 분단국가의 일원임을 체감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본인이나 가족이 군에 입대하거나, 중남미 국가를 여행 중에 “Corea del Sur o Corea del Norte?” 라는 질문을 받는 정도가 아닐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이 내려보낸 오물풍선이 서울, 경기지역에서 멀리는 경남 거창의 하늘까지 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학생으로부터 학교 인근 보건소에서 대남 오물풍선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북한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도 북한이라는 실체가 아주 가까이에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뉴스로 소식을 접하던 필자도 스스로가 감정적이고 불확실한 주체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한반도 상공을 유유히 떠도는 괴기스러운(grotesque) 풍선의 자태들은 신체적 매스꺼움과 같은 몸의 상태 변화를 유발하면서 기존의 남북관계에 대해 품고 있던 열정에의 부정적 감응(感應)을 이끌어냈다. 스피노자가 이야기한 몸과 정신적 차원에서 정동(affect)의 변화가 일었던 셈이다.
AI 첨단기술이 우리 삶의 질서를 전환하는 21세기에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북한은 지난 5월 28일부터 9월 8일까지 열일곱 차례 오물풍선을 내려보냈다. 수도권 지역의 차량, 주택 지붕 파손 등 1억 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확인되었고 항공기 이착륙이 지연되거나 회항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민간영역의 피해보상을 위해 민방위기본법 개정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사후약방문식 조치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북한은 남한의 탈북 민간단체 등에서 올려보낸 대북 풍선(K-콘텐츠 USB, 달러, 선전물 등)이 오물과 같다며 최근 사태의 책임을 남쪽으로 떠넘기고 있다. 북한의 대응에 맞서 우리는 대북 확성기 방송과 군사분계선 훈련을 재개하였고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탈북 민간단체들은 북한주민의 알 권리와 인권 차원에서 전단 살포를 계속한다는 입장이어서 ‘풍선전쟁’으로 인한 수도권 주민들의 안보 불안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남과 북은 현재 정전상태이다. 작은 충돌의 불씨 하나로 국지전이 전면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대치 상황이 7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국방과학원 무인기연구소의 자폭 무인 공격기 성능시험 현장을 공개했다. 한반도 상공을 활보하는 것이 언제까지나 풍선일 거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내년도 국방예산은 역대 최고액인 61조 6천억 원, 전 국민이 일상을 옥죄어가며 천문학적인 분단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단 하루도 ‘당연한 평화는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도발을 관리하고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단체의 표현의 자유도 실효적 국민의 안전을 저해할 만큼 긴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10년 전 남북한 총격전을 초래한 이 사안에 대한 법적 제한수단도 존재한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대북 전단에 필요시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1항을 활용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으며 올해 국토부는 항공안전법, 문체부는 저작권법에 위배된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지금 한반도에는 숨 고르기(Power of Pause)가 필요하다. 1948년 1월, 미소 양군의 철수 이후 한국인들은 그들이 배태한 유산 즉, 상대를 향한 호전성과 증오를 떠안고 38선상의 작은 전쟁들을 이어갔다. 한국전쟁 이후 상호인식은 불신과 혐오의 시선으로 전환되어, 이제는 ‘착한 풍선’과 ‘나쁜 풍선’을 띄우며 적대적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동서독은 어땠을까? 체제경쟁의 종식을 알린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서독은 정부 차원의 대동독 전단 살포가 발각되어 서독연방의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남북한의 체제경쟁은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선언(1988.7.7)으로 막을 내렸다. 민주주의와 독재주의 대결의 종식이었고 북방정책의 기점이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여전히 한국정부의 정책기조라면 북중러를 향한 신 북방정책은 민간의 전단 살포보다 유효한 분단 관리책이 될 수 있다.
지난 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 북한발 오물풍선의 낙하가 예상되어 군·경·소방 당국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필자가 응원하는 경기도 유일의 프로야구팀인 KT위즈의 가을야구 도중 오물풍선과 맞닥뜨리는 장면은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