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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고대 철학자들은 시와 조각의 이미지로 무장한 판타지와 싸웠다. 근대의 합리주의자들은 허구적 표상을 이용한 주술적 상상력과 싸웠다. 그런데 그들이 쫓아내려 했던 것이 지금 다시 삶으로 복귀하고 있다. 상상력의 부활은 논리 이전으로 복귀하자는 것이 아니다.(중략)
상상력 혁명은 논리적 추론적 선형적 사유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전제하고 한계를 뛰어넘을 뿐이다, 그것은 합리성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아니다. 합리성이 창의성을 억누르는 지점에서 행하는 즐거운 반역이다."
미학자 진중권이 유쾌하게 놀이하듯 상상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인 책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휴머니스트 刊)을 펴냈다.
그의 신간은 '탈근대'로 접어든 오늘날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근대적 사유의 패러다임이 그 시효를 다하고 21세기에는 '상상하는 것이 힘'이 되는 시대라는 데서 출발한다.
책 서문 격의 '상상력 혁명'에서 밝히고 있듯 저자는 최근 소설이나 영화 인터넷 상에서 범람하는 신화적 주술적 판타지 열풍에 주목하면서 그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이 문자에서 영상매체로 이전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들고 이제 새로운 세대는 문자적 사유가 아닌 이미지적 사유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은 놀라운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상상력과 맥을 잇는 환상이나 공상이 더 이상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닌 현실의 조건이 된 '상상력의 혁명'이 도래한 시대다.
가령 최근 전 세계를 열광시킨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은 중세의 주술적 상상력에 기반해 있으며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현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논리를 뒤집는 역설의 환상이고, '매트릭스'류의 할리우드 영화 속에 구현된 판타지는 150년 전 공상소설가 쥘 베른에서 시작된 과학적 판타지의 맥을 잇고 있다는 것.
미래의 세기가 '상상력'이 생산력이 될 것임을 전제한 저자는 이 책에서 상상력에 기초한 20개의 놀이를 등장시켜 상상의 역사를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가로로 읽어도 뜻이 통하고, 새로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아크로스티콘 놀이, 알파벳 철자의 순서를 바꿔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애너그램 놀이, 왜곡의 진리를 선물하는 아나몰포시스 놀이, 주사위, 체스, 카드 등의 게임과 물구나무, 인형놀이, 불꽃놀이 등등.
이 책의 장점은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 곳곳에 3백여 컷의 그림과 곳곳에 감추어져 있는 크로스워드 텍스트를 담아 독자들이 마치 놀이하듯 책을 읽도록 유도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단순히 상상의 세계를 놀이와 흥미거리로 펼쳐보이는 데 그치지않고 저자의 해박한 사유를 들여다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가령 사물을 뒤트는 놀이인 '아나몰포시스(왜상)' 장을 살펴보자.
이 장에는 요나를 토해내는 고래 그림 속에서 변을 보는 사내의 그림이 숨겨 있고, 항구의 풍경에서 자결하는 사울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으며 바위의 풍경이 사람의 얼굴을 이루는 등 흥미로운 그림들이 등장한다.
또 보통 책을 읽을 때 독자의 눈의 높이와 각도는 일정하기 마련인데 이 장의 그림들을 보면 시선의 각도를 바꾸어 눈을 책 옆에 바싹 붙이거나 책을 90 혹은 180도로 돌려봐야 한다.
이렇듯 두개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각도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나타나는 다양한 왜상 기법을 제시하면서 저자는 알아보기 힘든 형체 속에 종교적 진리나 정치적 풍자를 할 수 있었던 작가들의 함의를 드러내는 한편 최근 왜상이 다시 각광을 받는 이유로 중의적 표현을 선호하는 '포스트 모던'의 철학적 분위기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창조적 인간이 되고 싶으면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한다.
'어린이-되기'라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어 과거 어린 시절의 놀이 정신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마치 5백년 전 호기심에 한계가 없고 상상력에 구속이 없었던 '영원한 소년' 다빈치처럼.
37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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