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0 (일)

  • 흐림동두천 23.0℃
  • 흐림강릉 20.8℃
  • 서울 27.9℃
  • 구름많음대전 28.0℃
  • 흐림대구 27.6℃
  • 구름많음울산 25.5℃
  • 구름조금광주 28.6℃
  • 구름조금부산 28.2℃
  • 구름조금고창 28.4℃
  • 구름많음제주 29.8℃
  • 흐림강화 26.6℃
  • 구름많음보은 23.2℃
  • 구름많음금산 27.2℃
  • 구름많음강진군 29.6℃
  • 구름많음경주시 26.8℃
  • 맑음거제 28.6℃
기상청 제공

[누가 교실을 흔드는가 上] 정권마다 바뀌는 교실…실험대에 놓인 아이들

문재인-윤석열-이재명 정부, 변화하는 교육기조
기술 도입 속도보다 빠른 '정치적 우선순위' 변화
"변화하는 정책, 가르치는 것보다 적응하기 바빠"
학부모들 "신기술 도입도 교육감 성향 따라가나"

'정권이 바뀌면 교실도 바뀐다.' 교육 현장에서 흔히 들리는 말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라지만, 우리 교육정책은 5년마다 흔들리고 있다. 교육의 주체가 아닌 정치적 도구가 된 대한민국 교실. '누가 교실을 흔드는가' 기획에서는 정권 교체에 따라 출렁이는 교육정책과 피로감에 지친 교실의 오늘을 기록하며 공교육 책무성 강화라는 본질적 과제가 정쟁 속에서 잊혀지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을 던진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정권마다 바뀌는 교실…실험대에 놓인 아이들

 

 

"정책이 바뀔 때마다 교실은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해요. 아이들은 실험대에 놓이고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고교학점제, 늘봄학교. 최근 교육 현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새로운 교육정책이 정권에 따라 쏟아지는 가운데 그 실행의 전면에는 교사와 학생들이 서 있다. 

 

정책은 빠르게 변하지만 교실은 따라가기 버겁고, 현장 곳곳에서는 피로감이 터져 나온다. 학교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뒤집히는 한국 교육의 병폐가 이미 익숙하다는 반응이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을 기조로 삼고 고교학점제와 기초학력 보장, 교육복지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사교육 의존을 해소하기 위해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학생 개개인의 선택권 확대, 교사 중심 수업 혁신 등 교육의 기술화보다 '사람 중심 교육'을 핵심 방향으로 삼았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디지털 전환'을 앞세웠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이끄는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2025년 전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디지털 인재 양성과 늘봄학교도 함께 추진됐다. 

 

하지만 모든 정책에 '졸속 추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으며 속도에 비해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현장 교사들은 매 정책마다 "정책은 매일 쏟아지는데 현장 지원은 부족하다"며 혼란을 호소했다.

 

여기에 더해 이재명 대통령은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삼겠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공공 플랫폼' 개발을 중점 정책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위해 이미 2조 원 가량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후다. 

 

더불어민주당도 디지털교과서를 정규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하며 꾸준히 정규 교과서로의 채택에 반대했다. 기술 중심 정책에 신중한 접근을 취하겠다는 기조였다.

 

같은 주제, 다른 해법. 그리고 그때마다 교실은 '리셋'된다.

 

결국 이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급선회하면서, 현장 교사들과 학생들만 반복되는 적응의 시간에 내몰리고 있다. 기술 도입 속도보다 빠르게 바뀌는 '정치적 우선순위'가 교실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수원 지역의 교사 김모 씨(46)는 "교육 정책이 아니라 정권 정책이라는 말이 학교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농담이 됐다"며 "어느 정부든 '성과'를 위해 교육을 이용하는 건 똑같다"고 꼬집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AI 디지털교과서는 현장의 혼란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전국 시도교육청은 교육감 성향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실이 공개한 '전국 시도교육청 AI교과서 선정현황' 자료에 따르면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있는 서울, 인천, 대전 등 지역에서 디지털 교과서 채택 학교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반면 전북, 광주 등 지역은 채택률이 저조했다.

 

경기도의 디지털 교과서 도입률은 약 40%로 전국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치를 보였다. 보수 성향의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학교 자율에 맡기되 사용하고자 하는 학교는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재는 "디지털 교과서 플랫폼에 아쉬움이 있다"며 확대를 반대하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교육감 성향에 따라 교육 정책의 채택률 차이가 분명하다는 사실은 교육 정책이 효과가 아닌 정치적 목적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는 증거다. 교육감의 정치적 색깔이 곧 교실 풍경을 좌우한 셈이다.

 

 

늘봄학교와 리박스쿨 역시 정치적 판단이 교육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예산, 인력, 시설 준비 없이 시작돼 졸속 추진 논란이 끊이지 않던 늘봄학교는 결국 정치적 영향이 공교육의 탈을 쓰고 교실까지 침투한 '리박스쿨 사태'를 일으켜 교육 현장에 충격을 안겼다.  

 

AI 디지털 교과서부터 늘봄학교까지 이어지는 무리한 속도전은 결국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정책 하나하나가 교육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적 지지율과 여론몰이를 위한 '성과 전시'였는지 되묻게 된다. 특히 디지털교과서처럼 대기업과 민간 사업자가 얽힌 경우엔 그 의도가 더 강하게 의심받는다.

 

경기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번엔 또 뭘 바꾸는 거냐'는 말이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토로했다. 그는 "교육 정책은 안착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아이들의 발달 속도에 맞춰가야 하는데,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니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보다 적응하는 데 에너지를 더 쓴다"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격차가 장기적으로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빠르게 디지털 수업과 인공지능 기반 평가가 도입되는데,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종이 교과서 수업에 머무른다. 

 

수원의 한 학부모는 "어느 지역 교육감이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우리 아이 교육환경이 달라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교육마저 정치 싸움에 갇힌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히 AI 디지털 교과서와 같이 그 효과나 부작용이 아직 입증되지 않은 정책의 경우 우려가 더 크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대학입시와 연계됐을 경우 이 격차는 입시 경쟁에서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교육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교사들은 '정치와 교육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시도교육청이 자율성을 갖는 건 필요하지만, 교육이 정치 논리에 따라 휘둘리면 결국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며 "정책이 아니라 아이들을 기준으로 한 교육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