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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자연이 경고하는 지구의 미래,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

경기도미술관, 기후 위기 특별전,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 개최
생태환경 활용한 사운드워크, 연탄재 재활용한 설치작품 신작 공개
AI 기반 시뮬레이션 게임 등 기후위기 이후 미래 상상하는 신작 소개

 

지난 몇 년간 지구는 유례없는 폭염과 홍수, 산불로 몸살을 앓아왔다. 과학자들은 더 이상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재앙 앞에서 예술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경기도미술관이 기후 위기의 현실을 예술의 언어로 마주하는 특별전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를 개최했다. 

 

전시는 고(故) 김형영 시인의 동명 시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 ‘기다림’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절망과 자연의 회복을 바라는 간절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인간 중심의 시각을 거꾸로 뒤집어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면 어떤 풍경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후위기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바람과 바다, 흙과 연탄 같은 구체적 소재를 통해 순환과 소멸, 회복과 기다림의 감각을 체험하게 한다.

 

신진 작가부터 해외 작가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했으며 각자의 작업에는 기후위기가 어떻게 개인의 삶과 창작에 스며들었는지가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이번 전시는 기후위기를 단일한 담론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이야기와 감각으로 풀어내며 관람객에게 ‘왜 지금 우리가 이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총 40여 점의 회화, 설치, 조각, 영상 작품이 전시장 안팎을 채운다. 김민정의 'Mountain'은 파도 소리를 먹의 층으로 표현하며 어린 시절 기억 속 고향 광주의 산 본질과 빅뱅 이론처럼 우주와 지구, 바다와 산의 본질적 통일성을 시각화 했다. 

 

장진승의 '에어로스트라타'는 기후 역사 기반 AI 실시간 시뮬레이션이다. 각 대륙 메타 휴먼이 기후 위기를 알리고 근본 원인과 인간 내 편견을 성찰하게 하며 관람객에게 미래 선택과 상호 이해를 고민하게 만든다. 

 

 

우주+림희영의 'Song from Plastic'과 '플라스틱 쓰레기' 시리즈는 일류 멸종 후 미래 생명체가 발견한 플라스틱 화석을 상상하게 만들며 인간 존재의 특별함과 남겨야 할 흔적, 인간의 가치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최가영의 '세르비아 산'은 세르비아 산의 실제 모습과 달리 작가가 상상한 풍경은 어디에도 없고 이는 미래 재앙으로 인해 우리가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장소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해외 작가들의 작업도 전시에 무게감을 더한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Methane matter'는 수채화와 먹물로 기후 위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인 메탄가스 확산과 이동을 표현했다. 

 

더그 에이트킨의 '수중 파빌리온'은 캘리포니아 카탈리나 섬 해저에 설치된 파빌리온과 해양 생물, 변화하는 바다 풍경을 기록한 영상으로 환경과 기후위기 문제로 주제를 확장해 지구의 힘과 연약함을 상기시키는 대화를 희망한 작품이다. 

 

 

대니 멜러의 '암흑별 폭포'는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 공동체의 책임과 연대를 제안하고, 아담 보이드는 미래의 풍경과 존재를 상상하는 작업을 통해 인류가 마주한 실존적 위기를 다룬다.

 

카롤리나 카이세도의 '이것은 물이 아니다'는 콜롬비아 라스 다마스 폭포를 왜곡된 영상과 원주민 피리 소리로 표현하며 주민들을 환경 분쟁의 주체로 내세워 땅과의 관계 재정립과 탈식민화를 촉구한다.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김수진, 임동식 등 1980~90년대 한국 생태미술의 초기 활동이 소개된다. 기후와 환경을 향한 예술적 응답이 꾸준히 이어져 왔음을 되새기게 한다.

 

 

모든 전시 공간을 지나면 관람객은 박선민의 '늪의 노래–사운드 드리프팅'과 마주하게 된다.

 

박선민은 전시장을 넘어 인도네시아 늪지대의 소리를 엮은 '늪의 노래 – 사운드 드리프팅'을 통해 관람객이 자연의 리듬을 감각하도록 한다.

 

박선민 작가는 “보이지 않는 작업인데다 하루 세 차례 소수만 참여할 수 있는 가이드 프로그램이라 설명이 쉽지 않지만, 결국 몸으로 경험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열대우림 리서치와 화랑호수의 풍경, 정글의 필드 사운드가 겹쳐지면서 관객이 걸으며 듣고 호흡하는 순간, 기후위기를 먼 뉴스가 아니라 자신의 몸 가까이에서 느끼게 하고 싶었다”며 “폭염과 폭우 같은 비정상적 기후가 이제 일상이 되어가는 지금 그 변화를 피부로 체감하는 것이 가장 깊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연의 '잿소리'는 버려진 연탄재를 수조와 모터 장치와 결합해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관람객에게 연탄 화분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도 함께 진행된다.

 

이지연 작가는 “연탄은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 한국인의 보편적 재료”라며 “죽은 물질에 물을 흘려 생명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업은 자연의 순환과 인간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 쓰레기는 자연에선 사라지고 또 되살아나는 순환의 일부인데, 인간만이 그것을 분리해내며 삶과 죽음을 나눈다”며 “연탄 화분을 집으로 가져가 돌보는 행위 자체가 자연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거대한 구호를 내세우기보다 작가 개인의 서사를 따라가며 왜 지금 이 작업이 나왔는지 맥락을 보여주는 데 방점을 뒀다. 전시장 동선도 여백을 두어 관람객이 산책하듯 걸으며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유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다 지금의 위기를 직시하고 기후 감수성이 일상의 화두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겼다.

 

또 기후변화센터와 협력한 오픈 특강과 영화 상영, FSC 인증 재생지를 활용한 책갈피 만들기, 작가와 함께하는 워크숍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준비돼 예술적 체험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한다.

 

정승보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30년 전 북유럽 작가들이 환경 문제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오늘 우리의 선택이 천년 후 지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기후위기는 신이 인류에게 허락한 소중한 유산인 자연을 인류가 만홀히 여긴 결과물이다. 많은 기후위기 학자들은 이미 인류는 파멸의 길에 들어서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고 지적한다. 죽음을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인류는 살아왔던 관성과 욕망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구덩이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

 

지금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고향 지구는 이제 한계치를 넘어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인류를 몰아넣고 있다. 만약 아직 늦지 않았다면 한계에 다다른 자연 앞에서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10월 26일까지 경기도미술관서 만날 수 있는 특별전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는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넘어, 우리의 노력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돼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깊게 되짚는 시간이 될 것이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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