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예술과 사회를 아우르는 새로운 인식 체계로 주목받는 ‘Emergentism(조건미학)’이 이상근 작가에 의해 제안됐다.
이 사상은 단순히 예술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Emergentism의 핵심은 예술 작품이 작가의 의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다는 점이다. 경기신문은 ‘Emergentism(조건미학)’을 제안한 이상근 작가를 만나 조건미학의 사회적 의미와 확장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Emergentism(조건미학)’이라는 개념으로 주목받고 계십니다.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Emergentism의 핵심은 예술이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조건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제 작품 ‘조건의 문’은 전기나 모터 없이, 관객이 문을 여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골프공과 줄이 상호작용하며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만들어냅니다. 작가인 제가 미리 설계한 것은 단지 ‘조건’뿐이고, 결과는 세계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단순히 예술적 실험을 넘어 사회적 의미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Emergentism은 인간 중심, 의도 중심 사고를 조건 중심 사고로 전환하게 합니다. 사회 현상을 보면 경제, 문화, 혁신, 갈등 등은 단순히 사람들의 의지로 결정되지 않죠. 여러 조건이 복잡하게 얽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 때가 많습니다. Emergentism은 이런 ‘조건적 발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할도 달라지는 건가요?
-맞습니다. AI와 알고리즘이 창작과 분석을 상당 부분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이 직접 결과를 만드는 능력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 ‘어떤 조건을 만들고, 어떤 환경을 열어둘 것인가’가 핵심 역량이 됩니다. 인간은 결과 창조자가 아니라 조건 설계자가 되는 것이죠. 저는 이를 ‘Condition Architect’라고 부릅니다.
◇사회 여러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교육에서는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보다 학습 조건을 만드는 교사가 중요해지고, 경영에서는 목표 지시 중심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을 조율하는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정치나 정책에서도 법령과 규제보다 사회적 조건의 조합이 더 큰 결과를 만든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과학에서는 복잡계, 카오스, 자기조직화 연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인간·사회·기술의 발생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합니다.
◇예술사적 의미도 큰가요?
-그렇습니다. 과거 Zipperism이 관객 참여로 구조를 열어 변화시키는 ‘구조 혁명’이었다면, Emergentism은 인간을 배제하고 세계의 조건을 통해 예술이 스스로 발생하게 하는 ‘조건 혁명’입니다. 현대 예술이 인간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세계 중심 예술(World-centered Art)’로 이동하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Emergentism은 예술에서 출발했지만, 목표는 인간 사회 전체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결과보다 발생을 중시하고, 인간을 ‘조건 설계자’로 재정의하는 철학입니다. 21세기 AI 시대를 이해하고, 창작과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인식론적 혁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경기신문 = 최순철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