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좋으신 분들이다. 늘 젠틀하시고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도 많이 해주신다. 그분들로 인해 힘과 위로를 얻는다. 올해 나는 운이 좋아서 좋은 학부모님들만 만났다. 문제는 운이 나쁘면 죽음을 결심할 수 있을 정도로 괴로워진다는 거다. 일당백을 하는 진상을 만나면 버틸 수가 없다. 진상 학부모 감별기 같은 건 없지만 아래 사례 정도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진상 축에 들어갈 수 있다. 그저 한 통의 메시지와 전화를 했을 뿐인데 수십 명에게 연락받는 교사는 정신과 약을 삼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 ‘선생님 시간되실 때 전화 주세요.’ 별거 아닌 내용이지만, 이 내용을 받는 순간 심장이 덜커덕거린다는 교사가 많다. 교사와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일은 대체로 부정적인 사건이 생겼을 때다. 역으로 교사가 학부모에게 시간 있을 때 전화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해보자. 메시지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지 않겠는가? 용건을 구체적으로 써서 메시지를 보내는 게 좋다. 2) 애가 친구한테 맞았는데 / 욕을 먹었는데 / 싸웠는데 선생님은 알고 계시나요? 이런 멘트까지 문제가 되는 건가 싶을 수 있다. 멘트 자체가 문제라기
지난 5월 말부터 6월 초에는 여자야구 아시안컵 대회가 있었다. 아시아 12개 나라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국 야구 여자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덕분에 월드컵 그룹 예선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남자 프로야구의 엄청난 인기를 생각하면, 야구 국가대표 대항전이라 꽤 화제가 될 법했다. 예상 외로 조용하게 지나갔다. 여자야구 아시안컵 1위는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인 일본이었다. 세계 랭킹 1위의 벽은 높았다. 일본의 야구 수준이 한국보다 높은 걸로 정평이 나 있으니 이 정도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아쉬웠다. 언젠가부터 일본은 야구를 포함해서 다른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모든 종목에서 말이다. 축구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진출을 목표로 할 때, 일본은 16강은 기본이고 8강을 목표로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남자배구는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일본은 올림픽 8강에 진출했다. 많은 종목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량 차이가 보인다. 우리는 옆 나라와 이렇게까지 차이 나게 된 이유를 알고 있다. 일본은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이 잘 구성되어 있다. 일본 중학생의 64%가, 고등학생
미래는 알 수 없다. 천억 원을 넘게 들여 만든 슈퍼컴퓨터로 몇 시간 뒤의 날씨 예측하는 것을 자주 틀리고,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몇 분 뒤에 영영 이별하는 일이 생기는 걸 알지 못한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앞날이 정해져 있다면 지금보다 삶의 재미가 덜 할 거다. 몇 초 뒤 일어날 일조차 모르지만, 미래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는 분야가 존재한다. 바로 ‘인구’다. 작년에 아이가 몇 명 태어났는지는 10년, 20년 뒤 한국의 모습을 정확하게 말해준다. 최근 출생률이 1 아래였으니 당연한 수순으로 미래에는 인구가 줄어든다. 청년 비중이 적고 노인이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초고령화 사회 돌입은 필연적이다. 지구상에 이렇게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는 한국뿐이라 미래 모습을 참고할 나라도 없다. 대치동에서 사교육 시장을 개척했던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사교육 시장의 붕괴를 예측했다. 시기는 머지않아 10여 년 뒤쯤이다. 아이가 점차 사라져서 36년 즈음부터는 서울권 대학도 미달이 난다고 말했다. 손주은 회장이 대치동에서 이름을 날렸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전략적 대입 지원이었다. 당시 서울
오래 전 일이다. 강남 8학군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학부모 상담을 하고 나서 초등학교가 머지않은 시일 내에 보육기관으로 바뀔 것 같다고 했다. 그곳의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질 좋은 교육을 기대하지 않고 보육과 사회성 기르기만을 원한다고 했다. 필요한 교육적 부분들은 사교육에서 채우고 있으니, 그저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원만하게 지내면 족하다고 했다고. 상담의 내용들이 학교에서 교육은 필요 없고 보육이나 잘 해주면 장땡이라는 식이어서 친구가 상담 내내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친구가 말했던 게 다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초등학교가 보육기관이 될 것 같다는 예언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 되었다. 내년부터 초등학교는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 아이를 데리고 있는 보육기관이 되었다. 공공기관 사업 특성상 한번 들어오기는 쉬워도 빼기는 어렵다. 특히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그렇다. 일단 시작되면 돌이키기 쉽지 않을 거다. 돌봄 교실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교사가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다. 새로운 사업도 아니고 이미 돌봄이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마감이 몇 시간 연장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다. 돌봄은 자리 잡은 사업이고 시간이 늘어나며 발생하는
3년 만에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우리 반은 3월 20일에 마스크가 해제된 이후에 바로 독감이 유행해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싶으면 벗어도 된다고 했지만, 독감에 걸려 학교를 못 나오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인지 다들 꿋꿋하게 벗지 않았다. 그러다 비가 많이 와서 교실이 눅눅해진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신나게 놀고 들어 왔다. 샤워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열기와 바깥의 습기가 합쳐지니 교실 안이 금세 끈적해졌다. 창문을 활짝 열기에는 비가 들이치는 상황이라 조금만 열어뒀고, 에어컨을 틀기에는 추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몸도 마음도 꿉꿉한 채로 수업을 진행했다. 창문에 김이 서릴 정도로 습기와 끈적함이 몰아치던 그때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선생님 마스크 벗어도 돼요?”라고 외쳤다. “당연하지!”라는 나의 대답과 함께 아이들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마스크를 집어 던졌다. 동시에 ‘마스크 벗으니까 너무 좋다’, ‘완전 시원해’, ‘마스크 너무 답답했어!’ 라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9살 어린이들의 쫑알거리는 목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3월 20일에 다 같이 한꺼번
얼마 전 MBC 프로그램 《PD수첩》에서 교사와 관련된 방송이 하나 송출되었다. 제목은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제목처럼 아동학대범이 된 교사들의 이야기였다. 방영 직후 교사 커뮤니티가 술렁거렸다. 초반 내용을 보고 심장이 떨려서 차마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었고, 교사가 아동학대범이 되는 건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과 비슷하게 운 나쁘면 생기는 일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침통 그 자체였다. 파급력이 예전만 못하다지만 공중파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평소에 교직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적 없던 친구들이 먼저 연락해왔다. “정말 요즘 교사는 방송에 나온 것처럼 서비스 받으시는 분들 기분 나쁘면 아동학대범 되는 거야?” “응, 저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단다.” “나는 나중에 애 낳으면 안 저럴게.” “좋은 자세다. 그 마음 잊지 않도록.” 처음으로 교사 아닌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공감을 받는 순간이었다. 가뜩이나 학교를 생각하면 힘이 빠지는 일만 잔뜩 있는 시기였다. 여기에 인터넷에 교사 관련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넘실대는 걸 자꾸 보니 마음이 돌덩이를 매단 듯 무거워지며 머리가 아파졌다. 새 학기에 어린이들과 어
2023학년도 정시 모집에서 전국 13개 교육대학교(이하 교대)와 초등교육과 중 11곳이 미달 됐다. 정시 모집 때 대학 세 곳을 접수할 수 있기에 모집인원의 3배가 지원하지 않으면 미달됐다고 본다. 전국 대부분의 교대가 미달 되었고, 이는 입학 점수의 추락을 가져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년에 이후에 교대 입결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방대 인기 하락과 교사 인기 하락이 맞물려서 상위권 학생들이 교대를 선택할 요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대 자퇴생의 비율도 10년 전보다 20% 늘었다. 수치로 보면 2016년 102명이었던 교대 자퇴생이 2021년 426명으로 급증했다. 교대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몇 년 전까지 한 과에 1~2명 있던 자퇴생이 요즘은 3~4명씩 생겼다고 한다. 교대에는 편입이 없으므로 중도 탈락자가 생기면 그대로 졸업생 수가 줄어든다. 교사라는 직업의 인기 하락을 입시생과 재학생이 보여주는 상황이다. 교대의 인기가 떨어지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인기 하락에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 이유로 교사의 급여를 꼽을 수 있다. 처음 교사가 되고 나서 놀랐던 점은 월급이 200만 원이 채 안 된다는 점이었다. 지금
몇 달 전에 출시된 ‘ChatGPT’라는 앱이 있다. Open AI라는 회사가 만든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인데 나오자마자 전 세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 앱이야 기존에 한국에서 알려진 ‘심심이’나 ‘이루다’ 외에 수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ChatGPT는 다르다. 간단한 일상대화 이외에 학문적 영역에서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고 에세이부터 논문 초록까지 이용하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영어를 사용할 줄 안다면 글 쓸 때 참고할 수 있는 초안을 키워드에 맞게 무한대로 생성할 수 있고, 질문자가 AI에게 특정 내용을 학습시킬 수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의 모든 주제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I가 여러 분야에서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건 이미 오래전이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패배하던 날 충격과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AI 기자가 쓴 기사는 중립성, 신뢰성, 가독성, 심층성 등 모든 면에서 인간 기자를 앞섰고, 사람이 그리면 몇 시간은 걸릴 그림이 클릭 후 몇 초면 완성되며, AI가 만든 인간의 모습과 닮은 인물이 인플루언서가 되어서 TV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법조계, 의학계처럼 보수
교사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들 중에 하나가 ‘철밥통’이다. 교사는 공무원이라 어떤 비위를 저질러도 잘리지 않는다는 멸칭, 혹은 경기가 어려울 때는 고용 안정성의 부러움을 담은 칭찬을 담은 말이다. 여러 가지로 사용되는 거 같지만 용례를 떠올리면 대체로 멸칭에 가깝다. ‘나 때는 교사가 애들을 두드려 패도 잘리지 않았어. 그놈의 철밥통들.’ ‘교사는 철밥통이라 아무것도 안 하고 자리만 지키고 있지.’ 등등. 철밥통이란 말을 들어도 고용 안정성은 교사를 선택하는 큰 장점 중 하나였다. ‘였다’, 라는 과거형을 쓴 건 더 이상 교사는 철밥통이 아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위가 사라진 건 아닌데 더 이상 고용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유는 수업 중에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돼서 1원 이상의 벌금형 이상을 받게 되면 10년 동안 교사직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사가 아동 관련해서 법적 처벌을 받으면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건 이미 정해져 있던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철밥통이 부서질 정도인가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교사가 범죄를 저지르면 교단을 떠나야 하는 게 맞다.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때리거나, 정서적 학대를 한 사람이 아이를 가르친다는 건
저학년 친구들은 수업 시간에 모르는 게 있어도 힘차게 손을 들고 발표한다. 발표할 때 친구들이 나를 주목하는 그 순간이 기분 좋으니까 신나서 손을 든다. 정답과 전혀 상관없이 엉뚱하게 틀린 답을 말할지라도, 그게 맞는지 틀린 지 나도 모르고 옆에 애들도 모르니까 부끄러울 게 전혀 없다. 저학년 친구들은 모두가 발표시켜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발사한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발표를 안 시켜줬을 때 기분이 상하지, 틀린 답을 말했다고 주눅 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 지 4~5년이 지나고 고학년이 되면 상황이 급변한다. 이제 아이들은 친구들이 발표하는 나를 주목하는 게 부담스럽고, 모두 앞에서 틀린 답을 말할까 봐 걱정스럽다. 나보다 공부 잘하고 많이 아는 친구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답을 말해도 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학생이 발표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교사만 떠드는 조용한 교실이 되어간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발표 시간에 눈치를 보다가 결국 포기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두 과목이 있다. 범인은 영어, 수학이다. 둘 다 선행학습이 만연하기로 유명한 과목들이다. 미취학 시기에 영어 유치원이라고 이름 붙어있는 영어 학원에 다니는 건 흔한 일이고,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