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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마스크 속 해사한 얼굴들

 

3년 만에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우리 반은 3월 20일에 마스크가 해제된 이후에 바로 독감이 유행해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싶으면 벗어도 된다고 했지만, 독감에 걸려 학교를 못 나오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인지 다들 꿋꿋하게 벗지 않았다.

 

그러다 비가 많이 와서 교실이 눅눅해진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신나게 놀고 들어 왔다. 샤워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열기와 바깥의 습기가 합쳐지니 교실 안이 금세 끈적해졌다. 창문을 활짝 열기에는 비가 들이치는 상황이라 조금만 열어뒀고, 에어컨을 틀기에는 추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몸도 마음도 꿉꿉한 채로 수업을 진행했다.

 

창문에 김이 서릴 정도로 습기와 끈적함이 몰아치던 그때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선생님 마스크 벗어도 돼요?”라고 외쳤다. “당연하지!”라는 나의 대답과 함께 아이들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마스크를 집어 던졌다. 동시에 ‘마스크 벗으니까 너무 좋다’, ‘완전 시원해’, ‘마스크 너무 답답했어!’ 라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9살 어린이들의 쫑알거리는 목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3월 20일에 다 같이 한꺼번에 마스크를 벗었으면 모를까, 한번 타이밍을 놓치니까 관성처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언제쯤 벗어야 하나 고민하던 즈음에 내가 목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마스크 뒤에 꼭꼭 숨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봄비 덕분에 아이들의 맨 얼굴을 대면했다. 밥 먹을 때 마스크를 벗긴 하지만 급식지도 하는 데 급급해서 밥 먹는 아이들의 얼굴을 꼼꼼하게 살펴볼 일이 잘 없었다.

 

마스크 벗은 꼬맹이들이 씩 웃는 데 해사함을 인간화한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다들 앞니가 몇 개씩 빠져있어 말할 때마다 이 사이로 새는 발음 덕분에 귀여움이 배가 됐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빼꼼하게 내밀고 있을 때는 작은 인간 특유의 귀여움이 컸다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명 한명이 사랑스러움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스크의 해악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마스크가 감염병 예방에 도움을 줬지만, 교실에 마스크가 등장하고 몇 년이 지난 시점부터 부작용이 컸다. 단적인 예로 마스크 벗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밥 먹을 때 부르카를 쓴 것처럼 음식을 마스크 아래로 넣거나 마스크를 벗어야 해서 밥을 안 먹는 아이들이 종종 보였다. 졸업앨범 찍을 때 마스크를 쓰고 찍는 친구도 있었다. 마스크 벗은 자신의 얼굴을 어색해하는 아이들은 코로나 시대가 낳은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영유아 친구들이 어른들의 발음을 보지 못해 언어 지연이 되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당장은 마스크와 작별하며 이런 부작용들과도 안녕했지만, 주기적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탄생할 거라는 예측이 많다.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얼어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날 거란 전망이 있고, 인간이 가지 못하는 지역, 하지 못하는 행동이 없는 한 언제든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몰려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의 민낯이 소중해진다. 어린이들의 해사한 얼굴을 열심히 봐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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