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현장의 논쟁 중 하나는 교실 내 CCTV 설치다. 일부 학부모 단체와 정치권은 교사의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학부모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실마다 CCTV를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일부 정치권도 이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사로서 나는 이런 변화가 과연 교육을 위한 방향인지, 여전히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교실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감정과 관계가 오가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교사를 포함한 매일 수십 명의 아이들이 실수하고 질문하며, 울고 웃는 곳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고, 눈빛을 마주하며 수업의 흐름을 조율한다. 아이가 울먹일 때 조용히 옆에 앉아 어깨를 다독이기도 하고, 실수한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말없이 받아주는 순간도 있다. 교실에 카메라가 설치되는 순간, 교사는 더 이상 아이만 바라볼 수 없다. “지금 이 말투가 오해를 부르지는 않을까?”, “이 장면이 문제가 되진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수업은 점점 ‘기록을 위한 문제 없는 장면’으로 바뀌고,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 아닌 방어의 공간이 된다. 교사는 완벽하지 않다. 부모가 집에서 늘 최선일 수 없는 것처럼, 교
로스쿨이 생기기 직전 법대에 다녔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법을 처음 배울 때 개인의 감정과 부합하지 않는 법 조항들에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너무 과한 처벌이나 약한 처벌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행동에 동기 부여가 된다. 처벌 수위가 법 감정과 괴리를 보이는 경우는 이 때문이다. 예컨대 강도나 음주운전 하는 사람들을 왜 모두 사형시키지 않을까.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강력하게 규제하면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법이 범죄 사실을 쉽게 용서해주는 건 아닐까. 하지만 법이 강도나 음주운전 범죄자를 사형시킬 정도로 강력하면, 살인자가 될지 말지 기로에 선 사람들이 살인을 택하게 된다. 강도로 사형을 당한다면 강도 행위를 본 목격자를 살려두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듯 법 조항 하나하나와 판례에는 사람들의 행동을 뒤바꾸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다. 3년 전 초등교사에서 학생들과 체험학습을 갔다. 도착한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학생이 타고 온 버스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즐거워야 할 소풍이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운전했던 버스 기사는 이미 처벌이 확정됐고, 남은 건 담임교사와 보조교사로 온 사람들의 처벌 여부였다. 학교 활동 중
어린 시절 동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 방법을 만들어냈다. 놀이기구 하나에서 놀 수 있는 수십 가지 놀이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미끄럼틀에 원숭이처럼 매달려서 땅에 발이 닿지 않고 술래잡기를 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렇게 놀다가 질리면 미끄럼틀 손잡이에 구슬을 굴리는 구슬치기를 하거나, 미끄럼틀 지붕 아래에 잡동사니를 모아 집을 짓고 놀았다. 원하는 놀잇감이 없으면 상상으로라도 만들어서 하루를 재밌게 보냈다. 포유류의 공통적 특징 중에는 자유놀이가 있다. 어른의 개입 없이 아이들이 심판이 되어 규칙을 만들고 플레이어도 되는 놀이를 뜻한다. 다양한 동물들이 꼬마 시절에 아무렇게나 노는 것 같지만 자유놀이를 하며 사회화되어 간다. 놀면서 타이밍에 맞게 대화를 하거나,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기술을 익힌다.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어린이에게 자유놀이 시간이 부족해지면 말 그대로 사회성이 부족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요즘은 놀이터에 정글짐이나 높이가 긴 놀이기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매달려서 놀다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낙상을 막기 위해 놀이터 바닥이 모래에서 우레탄 재질의 탄성 고무
몇 년 사이에 스포츠 팬들이 자주 사용하게 된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워크에식’이다. 직업에 대해 성실한 정도를 의미하는데 한국어로는 직업 윤리로 번역될 수 있다. 유명한 스포츠 선수 중에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술, 담배를 비롯한 각종 몸을 해치는 일들을 꾸준히 해오지만 성적이 좋은 선수들이 있다. 팬들이 이런 선수를 비판할 때 워크에식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대로 늘 몸 관리를 하고, 팀에 헌신하는 자세를 가진 스포츠 스타에게 워크에식이 좋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며 더그아웃의 쓰레기를 줍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직업 윤리가 좋은 대표적인 선수다. 특정 종목에서 슈퍼스타라고 해서 꼭 직업에 대한 자세가 좋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공무원에 속하는 교사의 워크에식은 어떨까. 교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도는 이야기가 있다. 업무분장을 할 때 눈물을 잘 흘린다면 일을 맡지 않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학교는 오는 업무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일을 많이 가져가는 구조라는 거다. 공무원이기에 일을 더 한다고 돈을 더 받는 게 아니니 일단 업무를 피하고 보는 게 유리하다. 이러다 보니 똑같은 연차이지만 누구는 업무에서 모르는 게 없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현재 12학급의 작은 학급이다. 지금도 작은데 내년에는 9학급 수준으로 줄어들 게 확정적이다. 학교 위치가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있고 3호선 지하철역이 바로 근처에 있지만 저출생의 직격타를 인근에서 제일 빠르게 맞았다. 5년 안에 근처 초등학교들도 우리 학교와 비슷한 비율로 학생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대부분 학교의 학급수가 작아지는 데에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먼저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곳보다는 신도시라고 불리는 곳에 신혼부부와 아이들이 많다. 여기서 차로 25분 정도 걸리는 신도시에는 한 학년에 10반씩 있는 학교들이 몇 개나 된다. 그곳은 입주를 앞둔 아파트들이 있어서 학생들이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우리 학교에서 그곳으로 전학 간 아이들도 꽤 있다. 학급 규모 축소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출생률이 낮아진 탓이다. 특히 출생 절벽이라고 불리는 18년생부터 22년생 아이들이 순차적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25년부터 29년까지가 큰 문제다. 5년 동안 대부분의 학교가 현재 학생 수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게 확정이다. 지금도 작은 우리 학교가 5년 뒤에 학생 수가 절반이 된다면 그땐 폐교되거나, 학년 통합반을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
몇 년 전 인상 깊게 봤던 동영상이 있다. 성인이 된 제자가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내용이었는데 꽤 감동적이었다. 어린 시절 제자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데다가 반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방과 후에 매일 담임 선생님과 루미큐브라는 게임을 하는 거였는데, 선생님과 같이 논다는 사실이 학생의 마음에 안정을 줬다고 했다. 제자는 지금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별 거 아닌 놀이가 학생에게 위안을 준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나도 학생과 함께 놀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과 같이 논다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은데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몇 가지 장점 중에 가장 좋았던 점은 교사가 놀이에 참여하면서 교실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어졌다는 거다. 이것만으로도 함께 놀기를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 앉아 있는 아이들이 한, 두 명씩 있다. 왜 함께 놀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다고 말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마음속으로는 어울리고 싶은데 친구들에게 거절 당할까봐 용기가 안 나서 가만히 있는 거다. 이런 아이들은 교사가 주도
내년부터 AI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고 한다. 당장 5개월 뒤인 25년도 신학기부터 바뀐다는데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작은 학교라 이미 학생당 하나씩 태블릿이 보급된 상태인데 거기에 앱으로 교과서가 들어오는 건지, 다른 기계가 들어오는 건지 정확히 모른다. 당연히 AI 교과서로 뭘 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대로라면 큰 예산을 들여 만든 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도 썩 좋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2학기 상담 때 학부모 한 명이 꺼낸 이야기를 보면 그렇다. 우리 반 아이의 중학생 형 공개수업 때 태블릿을 활용한 수업을 봤는데 굉장히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실망한 이유를 묻자 그 수업에서 아이가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업 중 교사가 올린 링크에 학생들이 접속하고 자신의 닉네임을 정하는데 수업 시간의 반이 지나간 것부터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수업 내용은 아이들이 올린 미술 작품에 서로 댓글을 다는 활동이었는데 학생들이 각자 자기 태블릿만 쳐다보며 웃는 게 학부모 눈에 굉장히 이상해 보인 듯했
졸업앨범은 1학기 중반인 5~6월에 촬영한다. 봄 배경을 바탕으로 야외 사진을 찍으면 자연광의 화사함과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게 나오고, 너무 덥지 않아서 좋다. 대부분의 학교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 시즌에 졸업앨범 촬영을 마친다. 사진을 찍는 몇 시간 동안은 수업을 할 수 없으니 대다수 아이 모두가 행복해하는 날이기도 하다. 촬영 당일에는 아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특이한 소품을 준비해온다. 최근에는 장래 희망과 관련된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다. 축구 유니폼과 축구공, 판사복과 법봉, 컴퓨터 키보드와 방송 마이크처럼 직업이 연상되는 물품을 많이 들고 왔다. 수의사가 꿈인 친구는 의사 가운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데려와서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경력 많은 사진 작가님을 만나면 평소 경직된 표정이 대부분이던 아이들의 다채로운 얼굴을 볼 수 있다. 작가님이 처음에는 친구야 웃어~ 웃자!를 외치다가 아이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데 그치면, 그때부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아이를 웃기려고 노력하신다. 그러다 아이가 폭소하면 그때 연신 셔터를 누른다. 결과물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 한 명이 서 있다. 나이스 정보란에는 아이들 사진이 들어간다
필자는 야구를 좋아해서 특정 팀을 오랜 기간 응원했다.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홈구장에 경기를 구경하러 갔다. 저녁 경기임에도 점심쯤에 도착해서 사고 싶었던 유니폼을 1시간 동안 줄 서서 구입했다. 지치지 않고 또 다른 이벤트를 위해 기꺼이 줄을 섰다. 이날 대략 2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평소였다면 바로 포기했을 텐데 멀리까지 왔으니 계획했던 일들을 다 해치울 심산이었다. 7월 마지막 날 여름 날씨는 그늘에 앉아 있어도 곧 땀이 흐를 정도였다. 야구단 직원이 연신 돌아다니며 몸에 이상 증세가 있으면 바로 알려 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공놀이가 뭐라고 땡볕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웃겼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대단하고 저 사람들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푹푹 찌고 습한 날씨에도 경기가 시작할 무렵이 되자 금세 관중석이 들어찼다. 오늘 경기는 매진이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뜨고, 투수가 공을 던지기 시작하자 설레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기분 좋은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날은 응원하는 팀이 KBO 최다 실점 신기록을 낸 날이었다. 무려 30실점을 했다. 경기 초부터 대량 실점하는 등 조짐이 좋지 않아서
1박 2일 야영은 오래간만이었다. 중학교 때 반장, 부반장들을 대상으로 야영을 떠났던 게 마지막이니 까마득한 옛날이다. 가서 뭘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얼기설기 설치된 그물을 타고, 산 타고, 높은 곳에 있는 평행봉을 걷기도 하고, 뭘 자꾸 탔었던 잔상들만 남아있다. 평행봉에서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장면처럼 고소공포증과 관련된 기억들만 남아있는 걸 보니 야영 자체가 썩 재밌진 않았던 것 같다. 이후에는 야영을 간 적이 없다. 야영은 다른 숙박형 활동보다 안전사고 확률이 높고, 1일형 체험학습들도 없어지는 상황이라, 직접 밥을 해 먹고 잠자리도 불편한 야영이 살아남을 리 만무했다. 중, 고등학교면 모를까 주변에 야영하러 갔다는 초등학교를 찾는 게 흔치는 않았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라 다양한 활동을 하는 와중에 숙박형 야영이 들어왔다. 부모님과 놀러 다닐 때 주로 호텔과 펜션을 다니는 어린이들이 경험하기에 야영장은 너무 힘든 환경일 것 같았다. 산 주변이라 벌레가 많고, 샤워장과 화장실이 불편하고, 다닥다닥 붙어서 단체로 잠을 자야 한다. 수학여행 다녀와서도 숙소와 교통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세대인데 애초에 고생이 목적인 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