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라는 직업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교육 활동으로 상상했던 거의 모든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에서 미리 정한 각 교과의 시수를 크게 해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초등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광범위한 것도 다양한 활동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장점 덕분에 어떤 선생님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세금을 내며 금융 지식을 익히는 교육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고, 또 다른 선생님은 성인지 교육을 학급 특색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가르치는 게 가능하다. 올해 우리 반의 학급 특색을 꼽으라면 ‘신체 활동’을 들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간단하게 계획했던 내용인데 지난달 교육청에 프로젝트 수업 예산을 신청하면서 구체적인 윤곽이 잡혔다. 머릿속에서 파편적으로 떠돌던 교육 내용들을 사업 지원서에 구체화시키면서 오래간만에 재미를 느꼈다. 물론 활동을 계획할 때보다 구상했던 것들이 교실에서 잘 실현될 때 더 즐겁고 신이 난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운동화 신은 뇌’이다. 1교시 전 아침 활동 시간과 스포츠클럽 활동 시간, 체육 시간 등을 활용해서 매일 신체 활동을 하는 게 목표다. 1차시 이상의 신체 활동을 진행하면서 최대
초등학교 생활에서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학업보다는 친구 관계가 더 크다. 중,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초등학교는 친구와 사이가 좋으면 만사형통인 아이들이 많다. 학부모 상담을 했을 때 부모님의 걱정도 교우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친구가 없으면 아이 본인도, 부모님도 걱정이 크다. 인간관계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게 아니기에 친구 사귀는 법이라는 정답이 있는 메뉴얼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분명히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들은 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걸 어려워하는 소극적인 아이들에게 상담에서 하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아이는 상담 후에 정말 친구를 사귀는 데 성공했고, 또 다른 아이는 노력했지만 끝내 혼자인 채로 다음 학년에 올라갔다. 아이 노력과 부모님의 관심 및 협조가 함께 어우러진다면 성공 확률이 더 높다. 교우 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첫 번째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글자만 놓고 보면 얼핏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아니다. 대체로 아이들은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인지 확신이 없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중에 가장 난감할 때가 피해를 본 학생이 있는데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이다. 예를 들어 사촌이 외국에서 선물한 특이한 볼펜이 분명히 오전 수업시간에는 필통에 있었는데 점심시간 후에 없어졌다거나, 똑같은 스티커를 교실 안에 여러 명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스티커가 사라졌다거나.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거나.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문제의 난이도가 낮은 편이지만 이마저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일단 다른 아이들에게 물건이 저절로 어딘가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가방이나 책상 서랍, 사물함을 확인해 달라고 말한다. 이때 없어진 물건이 돌아오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이런 경우는 잘 없다. 아이들이 열심히 찾아도 물건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한 피해자를 달래면서 앞으로 학교에 소중한 물건은 가져오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끝난다. 이렇게 사건이 종결되는 줄 알았는데 한참 뒤에 잃어버렸던 물건이 다른 아이에게서 발견되면 더 난감해진다. 물건을 잃어버린 A는 네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볼펜은 한국에서 팔지 않는 것이므로 본인의 것이 틀림없으니 돌려달라고 말하지만, 물건을 사용한 B는
매년 새해가 밝아오면 한 해 동안 실천할 계획과 목표를 세운다. 1년 동안 달성하고 싶은 목표들로 리스트를 채우는데 코로나가 심해지고 나서는 학교에 하고 싶은 수업들도 목표 리스트에 포함한다. 2년째 목록에 올라 있지만 달성 완료 쪽으로 넘어가지 못한 수업들은 대체로 거리 두기와 관련이 되어 있다. 올해는 2021년을 시작할 때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니 전면등교도 폭넓게 가능해질 거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오면 하고 싶은 수업은 스포츠 클럽 활동이다. 스포츠 클럽을 운영하려면 시정표가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서 40분 중간 놀이 시간이 있어야 한다. 평소에 점심시간이 길게 있지만 밥을 먹고 뒷정리하고 나면 20분 남짓한 시간만 남기 때문에 꼭 중간놀이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 때문에 쉬는 시간까지 줄이는 단축 수업을 하는 상황에서 스포츠 클럽 활동은 어불성설이었다. 스포츠 클럽을 하고 싶은 이유는 오랜 기간 같은 운동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즐거워서다. 반 인원 모두 참여하면서 퇴장이 없는 스포츠를 1년 동안 하면 처음에 운동에 시큰둥하던 아이들도 마지막에는 열정을 불사르면서 뛰어다닌다. 올해는 넷볼이나 풋살 같은 모두가 참여할 수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 교실의 아침은 학부모님들에게 받는 연락으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당일 결석과 관련된 연락이 주를 이루고, 사정이 생겨서 일찍 조퇴시켜달라는 내용이 그다음을 차지한다. 가끔은 아이의 몸이 안 좋지만, 등교시킬 테니 상태가 나빠지면 집으로 보내 달라는 내용도 있다. 며칠 전에는 조금 특별한 연락을 받았다. 우리 반 친구 A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해서 다음 날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었다. 나에게도 이미 결석하겠다고 말해둔 상태였다. 막상 당일이 되자 A가 부모님께 학교에 가서 재미있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우겨서 하는 수 없이 등교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접종 후 증상이 걱정되니 잘 지켜봐 달라는 당부가 함께 왔다. A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참여하고 싶어 했던 수업은 햄스터 로봇을 활용한 코딩 수업이었다. 태블릿이나 컴퓨터에서 코딩 블록 명령어를 채워 넣으면 햄스터만큼 작은 로봇이 빛과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로봇을 활용하면 미로 탈출, 술래잡기, 축구 경기나 보드게임과 비슷한 미션 수행까지 가능하다. 장난감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이들의 수업 몰입도가 최상이다. 사실 처음부터 아이들이 처음부터 코딩을 좋아했던 건
전직이든 현직이든 교사가 모이면 두 집단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학교는 참 변하지 않는다’이다. 몇십 년 전과 지금의 교실의 풍경을 사진 찍어서 놓고 비교해보면 전자제품들이 들어와 있는 것 빼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는 칠판 앞에 서 있고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펴 놓고 앉아있다. 수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별 활동이나 학생 중심 활동 같은 게 생겨서 예전처럼 책상에 앉아만 있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선 달라진 게 없다. 학교의 모습 중 정말 한치의 변화도 없는 것 중의 한 가지가 교과서와 관련된 풍경들이다. 교과서 배부 및 수령 방식은 1970년대나 2000년대나 2021년이나 똑같다. 학생들은 학기 말이나 학기 초에 열 권이 넘는 교과서를 한꺼번에 지급받고, 그걸 가방에 미어져라 쑤셔 넣은 채 집에 간다. 교과서 지급받는 날 부모님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고, 며칠에 걸쳐서 교과서 나눠 들고 가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왜인지 어린이들은 한꺼번에 가방에 넣고 집에 가는 걸 택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교과서 받는 날이면 무거운 가방에 어깨가 한껏 처진 채 집으로 걸어갔었다. 이런 교과서 지급 방식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중, 고등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조례, 종례 시간과 특정 과목 수업 시간에만 만나는 것과 다르게 초등은 전담 과목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지낸다. 단순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종일 소통을 해야 하기에 아이들과 담임교사의 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가 한 해 교육 농사의 관건이다. 담임교사가 반을 정하는 방식은 매년 2월 중순쯤 교사들의 학년 구성이 끝나면 반 아이들 명부를 앞에 놓고 랜덤으로 뽑는다. 특별한 이유로 먼저 명부를 확인하고 반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하면 명부 봉투를 앞에 놓고 선택한다. 한 해의 명운이 반 아이들 명부 뽑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하게 좋은 반, 나쁜 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와 잘 맞는 아이들이 뽑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명부 봉투를 열어보곤 한다. 작년까지는 딱히 뽑기 운이 좋거나 나빴던 적이 없다. 무난한 아이들이 무난하게 사고를 치는 와중에, 교실은 대체로 분란과 다툼의 도가니 속에서, 가끔은 행복이 넘실대는 분위기에서 간신히 간신히 굴러갔다. 우리 반이 사건 사고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
크리스마스 이틀 전인 12월 23일에 올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체험학습을 가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학교 밖 활동은 꿈도 꾸지 못했던 6학년 친구들인데 졸업하기 전에 문화 공연 관람으로 한 해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바라던 수학여행과는 거리가 먼 클래식 공연 관람이지만 이것만으로도 학교 밖 활동에 대한 아이들이 갈망이 조금은 사그라들 것 같다. 작년에 처음 코로나를 맞닥뜨렸을 땐 이렇게 오래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멈춰있을 줄 몰랐다. 다들 평소처럼 이런저런 체험학습 계획을 잡아뒀다가 모두 취소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코로나 2년 차에는 우리 학년을 제외한 전체 학년에서 체험학습을 안 가기로 결정했다. 학교 운영 위원회에서도 올해 체험학습은 없는 걸로 동의했다. 내가 속한 6학년은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문화 사업 예산을 받을 기회가 생겨서 2학기 말쯤에 문화 공연을 관람하기로 계획했었다. 연말 정도면 코로나가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기대하면서 받은 예산이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2학기 중반 넘어서까지도 코로나가 기승이라 정확한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 다른 소규모 학교는 이미 올해 초부터 전면 등교를 하고 있고 어떤 학교는 체험학습까지 간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하고 놀란 점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사실이었다. 첫 미술 수업 때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에게 이미 선생님이 그림을 얼마나 못 그리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약간의 부담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반 아이들의 대다수가 잘 그린다면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리는 방법과 순서를 정확히 알려준다면 아이들이 찰떡처럼 완성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가진 주지 교과 관련 지식이나 체육, 음악의 실기 기능은 교사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 임용고시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보장한다. 다만 미술 실기만큼은 도무지 자신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초, 중, 고, 대학 내내 미술 실기에서 낙제점을 겨우 면한 상태로 졸업했다. 사실 낙제인 적도 있었을 거다. 초등학교 때는 찰흙으로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 제출했는데 찰흙에 장난을 쳤다고 선생님이 혼내셨다. 중학교 때는 미술 선생님이 내 수묵화를 친히 찢어버리시고는 본인이 직접 그려서 하사하셨다. 고등학교 때는 미술이 선택과목이라 빼버렸고, 대학에서는 몇 시간 내내 그린 풍경화를 보고 교수님께서 “나무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요”라고 말
환경교육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재활용이다. 우리가 평소에 분리수거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다시 사용되는지 알면 분리수거를 귀찮아하던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면서 참여한다. 환경 수업에서 페트병을 모아서 새롭게 만든 의자나 소파처럼 큰 가죽을 잘라 지갑이나 가방으로 재창조하는 건 너무 자주 해 온 이야기였다. 새로운 수업 아이템을 찾던 중에 ‘양말목’을 알게 되었다. 처음 ‘양말목’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무의 한 종류인 줄 알았다. 이름 끝에 ‘목’이 들어가는 행운목처럼 양말처럼 생긴 작고 귀여운 식물을 떠올렸다. 다른 선생님들도 단어를 듣더니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목재의 종류냐고 되물었을 정도로 생소했다. 글자 자체를 처음 들어보는데 이 아이템으로 어떤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아리송했다. 양말목은 양말을 만들고 남는 천을 말한다. 공장에서 양말을 제작할 때 뚫려있는 앞코를 꿰매고 윗부분을 잘라내면 머리끈 모양의 천이 남는데 이게 양말목이다. 양말 한 켤레에는 양말목 하나가 반드시 탄생하고 대부분 그대로 버려진다. 끈 하나가 얼마나 많은 양이 될까 싶지만 하루에 몇천, 몇만 켤레의 양말이 만들어지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버려지는 양말목 천 조각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