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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초등 공부 어디까지 시켜야 할까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 공부를 어디까지 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직 놀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음악이나, 미술, 체육 같은 활동을 주로하다가, 초등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공부 걱정이 많아지는 걸 종종 목격한다. 옆집 아이는 어려운 영어, 수학 문제를 척척 푼다는데 이제 우리 아이도 자기 주도 학습보다는 학원에 다녀야 하는 건지, 학원에 다니기에 이미 늦은 건 아닌지가 주된 걱정거리다.

 

걱정의 결론은 선행학습을 해야 하느냐, 현재 배우고 있는 과정에 충실해야 하느냐로 귀결된다. 대화 속에서 이미 부모님이 고민의 정답을 내려놓은 걸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보통 학부모님이 결정한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대답한다. 교사의 조언으로 학부모의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괜히 불안감을 심어줄까 봐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려는 일종의 배려다. 그래서 어떤 분에게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시라고 강력하게 말하다가, 다른 분에게는 아직 혼자 공부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때는 영어, 수학 선행학습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폭넓은 독서와 수학 연산 연습, 여기에 기초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 이 세 가지를 부지런히 해두면 중학교에 가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모든 과목에서 따라잡기 어려운데 독서가 탄탄하면 문제없고, 수학은 공식을 암기하면 풀이 연산 과정에서 결판이 나기 때문에 연산 시간을 줄이는 게 핵심인 과목이고, 운동으로 체력을 길러두면 고등학교에 가서 엉덩이로 결판이 나는 순간에 빛을 발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지금은 특정 과목을 공부하는 것보다 매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수학 연산을 연습하고, 운동하면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하자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조금 더 격렬한 어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많은 책을 읽고, 했을 때 즐거운 운동을 하고, 수학 연산 학습지를 꾸준히 풀어라.’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교과서 공부 그만하고 운동장으로 나가자는 혁명적인 외침도 들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이에게 돌아온 피드백은 웃기면서도 슬펐다. 엄마에게 담임선생님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라고 말했더니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은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되셨는걸?”이라고 답하셨다고 했다. 다시 정정해서 초등학생이니까 스트레스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 말고, 나중에 중학교 가서 하라고 말해줬다.

 

많은 연구에서 선행학습은 그 과목의 성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행학습이나 예습은 나만 선행을 안 해서 뒤처진다는 불안을 해소하는 데 주로 도움을 준다.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중 하나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해주는 ‘복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목을 공부한 ‘절대적인 시간’이다. 복습으로 학습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성적을 올리는데 수월하다.

 

선행 학습은 성적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걸까. 한 과목을 공부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과목 성취도가 올라가니 선행학습을 하는 것도 성적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효율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성장 단계에 맞는 학습이 아닌 내용을 미리 배우는 건 200km로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스포츠카를 타고서 50km의 속도로 비포장도로를 뱅글뱅글 도는 것과 비슷하다. 초등에서는 훗날 스포츠카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엔진에 예열하고, 타이어를 정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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