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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온 책 읽기의 익숙함을 넘어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업시간에 책 한 권을 느리게 읽는 슬로리딩, 혹은 온 책 읽기라는 교육 방식이 꽤 혁신적이었다. 정해진 교과 시간에 교과서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교사와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전적인 수업 방식이었다. 처음 우리 반에서 온 책 읽기를 진행할 때 학년 부장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수업하면 학습 결손 생긴다.”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온 책 읽기의 정확한 기원이 어디인지,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있고, 한국의 몇몇 선생님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초기에 드문드문 퍼지던 온 책 읽기는 교육과정 재구성과 결합해서 몇 년 동안 각종 교사 연수에 필수코스처럼 등장했다. 그러다 국어 교과 단원에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1년에 정해진 시간 이상은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국가 공인 교육과정이 되었다.

 

책을 함께 읽는 활동이 국어 교과의 필수 과정이 되면서 교사의 집단 지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온 책 읽기를 위한 책 선정에서부터, 교육과정에 맞게 재구성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드는데 앞서 수업을 진행한 분들이 수업 자료나 피드백을 남겨 준 덕분에 수업을 준비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새로운 교육 방식에 부담을 갖는 분들도 집단 지성의 산물 덕분에 쉽게 온 책 읽기에 적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온 책 읽기에 모두 다 참여해야 하는 환경이 좋으면서 싫다. 이전에는 책 선정부터 수업 활동을 짜는 시간에 머리를 맞대서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씩 발굴해내는 재미가 있었다. 수업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기에 이런 과정이 싫은 교사는 수업시간에 온 책 읽기를 안 하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강제로 온 책 읽기를 해야 하니 수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게 우선순위에 올라있다. 새로운 책으로 머리를 짜내서 수업을 준비하다가 막히면 고난의 시작이니 파행적 운영보다는 이미 있는 자료를 활용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런 이유로 활동 자료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준비된 책을 수업 자료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도서는 모든 학교에서 매년 한 학년 정도는 온 책 읽기 수업에서 반드시 다루는 필수 도서가 되었다. 그 책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교사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수업 자료가 많아서 그렇다. 좋은 책들이 많지만 수업 자료가 쌓이기 전까지는 추천 목록에서 제외된다. 선의로 시작한 일을 강제로 시키면 어떻게 변질되는지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거 같아서 안타깝다.

 

올해 우리 학년에서는 처음에 수업 자료가 많은 책으로 선정해서 수업을 진행했다가 전반적으로 실망하고 앞으로 수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이유로 책을 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읽는 중인데 국어, 사회 과목과 연계해 재구성을 했다. 아이들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주의를 민주주의와 연결해서 의미를 추론하는 과정을 보면서 의도대로 수업이 흘러갈 때 느끼는 짜릿함을 얻는다. 몇 년 만에 느끼는 온 책 읽기 수업의 즐거움에 다음엔 어떤 책으로 수업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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