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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어른들의 욕망을 욕망하는 아이들

 

한 주를 월요일 시작하는 아침마다 서클 대화 시간을 갖는다. 거창한 활동은 아니고 아이들과 동그랗게 앉아 주제 2~3가지를 골라 이야기를 나누는 친교 시간이다. 주말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를 말할 때도 있고, 이전 일주일 동안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떠드는데 굳이 대화 시간까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렇게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일상적인 이야기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공간만 공유하는 친구들이 반에 의외로 많다.

 

얼마 전 서클 시간에 뽑힌 주제는 ‘가장 갖고 싶은 것 5가지 말하기’였다. 어린이와 청소년 중간에 서 있는 6학년 아이들이니 다양한 품목이나 종목들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 어른은 모르는 아이들의 유행 아이템 같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십여 명의 친구 중에서 한두 명만을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비슷한 대답을 했다.

 

‘롯데월드타워, 빌딩, 강남 아파트, 목 좋은 곳의 땅, 삼성전자나 테슬라 주식. 등등’

 

부동산이나 주식을 말하지 않은 소수는 건담이나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물품을 말했다. 모두 초등학생이 갖기에 결코 저렴한 물건들은 아니었는데, 앞서 이야기 나왔던 품목들이 너무 비싸서 상대적으로 싸고 저렴해 보였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누가 뭐라 해도 재테크임을 우리 반 아이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옆 학교도 분위기가 비슷한 듯하다. 교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6학년 아이가 쓰고 그린 '주식'이란 제목의 시화가 한 점 올라왔다. 시의 제목에서부터 예상할 수 있듯이 자신이 주식에 들어가면 주식 가격이 내리막길처럼 내려가고, 주식을 팔면 주식 가격이 비행기처럼 올라간다는 내용이었다. 친절하게 우하향 그래프를 그려주고 옆에 –20%라는 수치도 써준 멋진 시화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어린 시절부터 금융 지식을 공부하고 재테크에 관심을 두는 일은 바람직하고 훌륭하다. 공교육 과정에 금융 교육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금융이나 재테크 관련된 지식은 생존에 필수가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고금리 불법 대출에 참여하거나 불법 토토나 사다리 타기 같은 도박에 노출되어 문제라는 기사를 보면 금융 지식을 학교 차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당위성마저 느껴진다.

 

생존을 위한 금융 교육이 시급한 것과는 별개로 13살 아이들이 웃으면서 강남의 아파트나 땅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건 낯설다. 강남이라는 지역이나 아파트, 땅은 아이들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어른들의 욕망처럼 보인다. ‘가장 갖고 싶은 5가지’라는 주제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 아이들과 말했던 것과 똑같은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나이에 맞는 욕망이라는 건 없다. 우리 반 아이들은 진심으로 부동산과 주식을 욕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른인 나는 재테크하려고 공부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아직 돈에 관심 갖기엔 이르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도 여러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교과서에는 뻥튀기가 튀겨지는 모습인 ‘뻥이요’ 같은 동시와 봄을 맞는 동요들이 아이들의 동심을 키워준다고 애쓰고 있다. 뻥이요와 강남 아파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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