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겨울은 과연 봄이 오기는 할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너무 혹독했다. 그러나 봄이 오긴 왔나보다. 겨울을 이겨내고 마른 가지마다 연한 녹색의 새순이 돋아나고 벚꽃 꽃망울이 터지려고 한다. 벤치에 앉아서 아파트 놀이터에 나와서 깔깔대며 노는 아이들을 보니 이게 바로 봄이구나 싶다. 한 아이와 엄마가 시소를 타고 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리듬감이 보는 나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시소타는 모습을 한참 보고있자니 아,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헌법처럼 너무나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시소타기를 시작하는 순간 나의 의무는 앞에 앉은 이를 높여주는 것이고, 나의 권리는 앞에 앉은 이로 인하여 내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시소를 재미있게 타려면 대충하지 말고 내 몸무게를 실어 내 있는 힘을 다해서 상대방을 높여줘야 한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들은 남을 높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칭찬할 일이 있을 때에도 그다지 상대방을 높여주지 못한다. 상대방을 높여주었을 때에 나 또한 내 앞의 상대로 인해 높아질 수 있는 것인데. 높이 올랐을 때의 환희, 상쾌함, 짜릿함은 누구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지난 연휴에 나는 네일 아트샵에 갔다. 아직도 네일 아트를 여성의 사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지나치게 긴 손톱을 붙여서 일상생활조차 불편하게 하는 네일 아트를 항상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제 나는 한 시간 동안 손톱관리를 받는 동안 손톱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손톱은 우리 신체 중 최말단에 있어서 등한히 여기기 쉽다. 그러나 손톱의 색상, 모양, 강도 등은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손톱이 잘 부러지거나 갈라지면 노화나 영양결핍을, 흰 반점이 생기면 손톱 무좀을 의심할 수 있다.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생기면 피부암의 가능성이 있고, 둥글게 파임이 보이면 철분 부족이나 심장병 또는 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가로로 파임이 생기면 당뇨병이나 순환기 질환이 의심된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손톱이 닳도록 일을 하시느라 번번히 손톱을 돌아보지 못하며 살았지만, 손톱도 명색이 톱 중의 하나라서 때로는 앙큼한 자존심을 세울 줄 안다. 딱히 위협하려는 요량은 아니지만 얕보았다가는 날카로운 톱에 할퀴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즉, 손톱의 존재는 우리 신체
사람이 태어나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끝까지 헤어지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된다는 것, 부모와 자식이 되고 친구가 된다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만남을 이루고도 많은 사람들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해야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며칠 전 짜장면을 먹었다. 나무젓가락을 쫘악 자르면서 이번에는 힘조절이 잘되어 나무젓가락이 똑같이 이등분으로 잘라졌구나 하면서 그 시시한 만족을 느끼다가 문득 젓가락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듣고야 말았다. 나무젓가락의 입장에서 만들어지고 쓸모있게 사용된 후 버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니 거기에 진리가 있었다. 한몸으로 붙어있던 젓가락은 본디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 뿔뿔이 가지가 갈라져도 서로를 놓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젓가락으로 만들어지기 위하여 나무의 몸이 깎일 때 젓가락 두짝은 똑같은 이름으로 태어나기 위해 생사이별의 위기마다 잡은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완성된 젓가락은 하얀 종이 옷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쫘악 하고 뼈를 껶는 고통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 중에 하나는 멸치볶음이다. 멸치는 통째로 먹는 생선이라서 칼슘과 비타민D 뿐만 아니라 비타민A, 마그네슘, 기타 무기질이 풍부해서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뼈 건강과 두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최고의 음식이다. 한국 음식 중 국물이 있는 요리의 맛을 내려면 멸치를 우려내는 것은 기본,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로 쓰이니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멸치의 생태와 일생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떼를 지어 다니며 동물성 플랑크톤을 주 먹이로 삼는 멸치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낮은 층에 속하지만 개체수는 가장 많은 어종이다. 그래서 멸치잡이 배에서 그물을 한번 던지면 한가득 멸치가 잡히기 때문에 “일망타진”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가 보는 멸치는 말린 멸치로 큰 생선에 비해 누렇고 볼품없지만 바다에서 갓잡은 멸치는 비록 아주 작은 체구라도 은빛 찬란하다. 주로 수심 20미터 내외에서 살지만 빛을 좋아하는 본성 탓에 멸치잡이 배의 집어등 불빛에도 그만 유혹되고 만다. 멸치의 입장에서 보면 제 아무리 뼈대있는 물고기라고 해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비루한 삶을 이겨내려
제주도에는 사철을 대표하는 식물의 색이 있다. 봄에는 유채꽃의 노랑, 여름에는 수국의 분홍, 가을에는 억새의 갈색, 겨울에는 동백의 빨강. 그 중에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보면 시련 속에서 헤치며 절개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동백꽃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꽃이다. 꽃이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 더욱 멋진 꽃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팔랑팔랑 꽃잎을 떨어뜨리며 지지만 동백은 꽃송이 째로 뚝 떨어진다. 마치 목이 베어 죽을지언정 절개를 지키겠다는 애국자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동백은 대략 11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2~3월까지 만발하는 겨울 꽃이다. 추운 환경을 이기는 것도 힘든데 이 시기에는 기온이 낮아서 수정을 해주는 나비나 벌들이 없어서 사실 동백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야 맞다. 그런데 나비나 벌 대신 동백의 수정 작업을 돕는 존재가 있는데 그게 바로 동박새이다. 이렇게 새가 수정을 돕는 식물을 조매화라고 한다. 동백꽃은 나비나 벌과 같은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한 향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동박새가 빨아먹을 만큼 충분한 꿀을 가지고 있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는 많은 새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지만 연초록색 자그마한 동박새는
지난 10월 한 달 동안 필자는 뉴욕을 다녀왔다. 뉴욕을 처음 방문한 것은 약 20년 전 미국의 한인회사의 의뢰로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개발을 위하여 파견근무를 할 때였다. 이미 20년 전에도 IT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두각을 나타냈지만 한국의 인지도는 무척 낮았다. 20년 동안 K-POP을 시작으로 K-Drama, K-Movie, K-Food 등 K-Culture가 세계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된 지금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괜히 친한 척하는 미국인들이 많아졌다. 뉴욕에 있는 동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로제와 브로노 마스가 부른 '아파트' 열풍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니 과연 K-컬쳐의 존재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곡은 뮤직비디오가 유투브에 공개된 지 12일만에 2억뷰를 달성하고 여러 나라의 음원 차트의 1위를 석권하더니 드디어 빌보드 싱글 핫 100의 8위와 글로벌 1위를 이루었다. 들어보니 과연 중독성이 있고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린다. 영어 Apartment가 아니라 ‘아파트’는 각 음절을 명확하게 발음해야 하는 단어로 이제는 완전히 한국어가 되어버린 외래어이다. 그것을 좋은 영어발음으로 읽지 않고 그냥 한국발음으로 부른 소절들은 한번
지난 추석에 받은 선물 중에서 아주 맛있게 먹은 것이 바로 곶감이다. 곶감을 만들어 먹는 식문화는 우리 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널리 퍼져서 한국 음식이 되었다. 곶감의 어원 중에서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할머니가 꼬챙이에서 곶감을 빼서 주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의 곶감의 역사는 고려시대인 12~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은 완전히 말린 건시보다 반쯤 말려서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한 반건시가 인기가 있다. 곶감의 효능을 찾아보니 의외로 칼로리가 낮아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기침이나 가래를 낫게 하고 목소리를 윤택하게 하는 데에 좋으며, 어린이들 설사에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식이 섬유가 많아서 변비를 예방하며, 포도당과 당분이 풍부하여 빠른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며,철분이 많아서 빈혈을 예방하며, 타닌 성분은 알코올 해독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유익한 곶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곶감 입장에서 살펴보니 참 재미있고 유익한 교훈을 얻었다. 모든 감이 다 곶감이 되는 게 아닌고 감이 곶감이 되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
한때 나는 전원주택단지에 몇 년간 산 적이 있다. 단지 안에는 아주 작은 가게가 하나 있을 뿐, 식당이나 마켓이나 문화시설을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지만 주변이 모두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공원마다 운동기구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끊임없이 내 공간을 침입하는 벌레들 때문에 방심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레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한다. 특히 집을 비운 사이에 내 영역을 활보하거나 점유하고 있었던 벌레들이 인기척에 놀라 쏜살같이 도망가거나 딱 버티고 있을 때에는 머릿속이 뒤엉키고 몸이 얼어붙는다. 그때에는 휴지로 벌레를 눌러 잡는 사람, 책이나 그릇 같은 것으로 살짝 눌러 놓는 사람, 그냥 못 본 체 뒷걸음질치는 사람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소파 밑으로 숨어들어간 벌레는 내가 이렇게 망설이는 동안 안보이는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 몸을 숨긴 후 어디로 매복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나는 소파에 앉는 것을 두려워한다. 벌레들의 전략은 일단 삼십육계, 그들은 진정성 없이 물러서서 일단 나를 안심시킨다. 저리 작은 체구로 지능적인 술수도 없이
아직은 오리지널 그림을 사기 힘든 우리 나라 유럽과 미주의 선진국 가정과 신흥 선진국인 우리나라 가정을 방문하여 보면 다른 점이 많다. 생활방식과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결과이다 . 그러나 필자가 주목한 차이점 한 가지는 유럽과 미주의 선진국의 대부분 가정에는 벽에 원화 그림이 걸려 있고 우리나라의 가정에는 대부분 그림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도 인테리어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한국 가정이나 사무실 인테리어 항목에는 예술작품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대개 그림 구매는 투자 목적이거나 부유층의 사치 정도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아픈 이에게 위로를 주는 그림 치료’라는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림은 사람을 위로해 주고 개인의 기호에 맞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림을 구입하는 것이 비용면에서나 선택면에서도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한번 구입해 본 사람은 그림이 주는 힘에 대하여 경험하게 되고, 조금씩 소장하는 작품들이 많아지게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몇 년 전 그리스의 아트페어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그리스는 국가 부도의 위기와 구제금융을받고 있던 때였다. 곧 망할 것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아트페어에
2년전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짐을 분류하여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많이도 버렸다. 그런데도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몇 박스가 되었다. 리모델링이 끝난 이후 그곳에서 살려고 했던 나의 계획과는 달리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친구가 임대한 비닐하우스에 임시보관하였던 짐은 예상외로 오래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사람이 계획을 하여도 뜻대로 안되는 일이 많아서 곧 가져와야지 하는 마음과는 달리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그러다 몇 주 전 비닐하우스의 주인이 그 땅을 매매하게 되어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동안 강렬한 햇빛과 비와 바람에 견디지 못한 짐들은 상하여 엉망이 되었다. 친구는 그 짐들을 모두 정리해주었는데 건진 것이 별로 없다고 했다. 짐들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삶을 정리하며 살아왔는지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순간 나는 나 대신 짐을 정리해주는 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빈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늘려간다.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