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어느유품정리사의 기록영상으로, 혼자 외로이 살다가 생을 마감한 한 청년의 방 풍경을 보게 되었다.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나는 좁은 공간에 배달음식을 시켜먹은 흔적들이 쌓여있었고 컵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들이 찬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먹을만한 음식들이 없었다. 죽음에 이르게 한 개인적 상황, 사회적 구조 등 많은 이야기에 앞서 누군가가 좋은 음식에 대해서 알려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으로 내원하는 이들에게서 많이 확인하는 풍경이기 때문이리라. 한의원에는 화병 신체화장애와 함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내원하는데 식단을 체크해보면 하루 세끼가 칼국수, 만두국, 컵라면 이런 식으로 밀가루 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우울증이 좋아지기 위해서 치료와 함께 식사습관, 영양이 중요한데 이유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널리알려진 사실로 뇌에서 감정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 그러니까 그 신경전달물질을 통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는데 그 물질을 만드는데 영양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히 중요한 영양소는 양질의 단백질과 탄수화물, 오메가 3 비타민 B군, 아연,
벌써 한의사로서 진료를 해온지가 20년이 넘어간다. 그 시간동안 의료인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반복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상세히 대답하기는 항상 진료시간이 짧다. 어떤 질문은 급격히 서구화된 문화로 인한 당연한 결과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정말 잘못 덧씌워진 이미지로 인한 질문도 있다. 한약과 간에 관한 질문도 그렇다. 지난 주말에 지인의 강력한 소개로 내원했다는 그는 한의원에서 치료받는게 처음이다. 애주가인 그는 불과 2개월여 전까지는 매일 술을 먹었는데, 최근에 너무 피로해져서 조금 줄였다고 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음주를 줄이고 식이요법을 권하며 에너지 회복을 위해 한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지지 않나요 괜찮나요" 하고 묻는다. 나는 술이 염려되는데 이분은 아닌가보다. 눈앞에 좋은 것이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드문일은 아니다. 이런 경우 한약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먼저 묻고 아는 범위를 바탕해서 대답한다. “한약이라고 하면 어떤게 떠오르세요. 한약이라고 생각되는걸 한 번 말해보세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도라지요” 한다. “맞아요. 도라지는 길경이라는 이름의 한약재예요. 또 어떤 것이
기립성 저혈압과 함께 발생하는 목 뒤의 두통을 치료하러 내원한 그는 사업을 한다. 혼자서 해외거래처를 담당하다보니까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거래처와 소통을 한다. 밤낮이 없다.직원을 고용해서 자신의 일을 나누면 해결될 일인데. 자신만큼 혹은 자신과 비슷하게 할수 있는 사람을 뽑기가 어렵다. 국제적인 의사소통, 물건의 발주 등은 자신이 다 해야하기에 수년간 쫓기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했고 쉴틈이 거의 없었다. 그런생활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피로감이나 건강의 이상신호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그러다가 1년여전 혈압이 200/120까지 올라가면서 두근거림, 목뒤의 두통 , 어지럼증의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혈압약을 먹어서 극도로 높아지는 혈압은 조금 조정이 되었다. 1년이 지나도록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진단받고 병원과 한의원을 다녔는데 일상생활이 어려운 증상이 계속 재발했다. 다른 방법을 찾고자 내원했다. 처음 마주한 그와 대화해보니 바쁜생활때문인지 자신의 몸에 왜 이런 증상이 있는지 몰랐다. 치료와 함께 자율신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자율신경계는 내분비계와 더불어 심혈관, 호흡, 소화, 비뇨기 및 생식기관, 체온조절계, 동공조절 등의 기능
벌써 20년 전이다. 내과수련의로 근무하던 때 지도교수님의 진료실은 화병환자가 많이 내원했다. 진료실과 입원실이 붐볐다. 그런데 화병을 치료해야지 하고 오지는 않았다. 대부분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고 아프거나 혹은 잠을 못자서였다. 손발이 저리고 얼굴로 열이 오르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기도 했다. 이런 증상들과 함께 많은 경우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를 진단받아 양약 복용 중에 중풍증상을 나타내어 입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교수님은 그들에게서 화병을 진단해 내셨다. 화병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기혼 50-70대 여성이었다. 화병의 제일 큰 원인인 남편, 시댁과의 관계에서의 상처. 경제적 곤란을 콕 찝어 질문하면 대부분 맞았다. 다음에 올 때 반드시 남편을 같이 오라고 하셨다. 부부상담을 하며 호통과 넉살을 섞은 상담에 환자들이 한바탕 울음을 쏟고 나서 미소를 띈 얼굴이 환해져서 진찰실을 나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교수님의 진료실에서 많은 환자들을 경험하였다. 자연스레 화병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논문을 여러편 썼다. 시간이 흘러 필자는 중견의 한의사가 되었다. 여전히 꼭 화병을 치료하려고 오지는 않는 20년전보다 더 다채로운 양상의 화병환자를 만나고 진
마약에 관한 기사가 심심찮게 보도되는 연말이다. 대중에게 큰 인기와 신뢰를 얻었던 연예인들의 이름이 마약과 함께 뉴스에 오르내렸다. 유아인은 프로포폴의 상습투여로 수사가 의뢰되었고 그의 모발에서는 포로포폴뿐만 아니라 4종류의 약이 확인되었다, 이선균은 유흥업소 여실장 자택에서 수차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수사 중이다. 여실장의 진술로만 수사선상에 올랐고 연일 언론에 보도되었던 지드래곤은 최근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이 되었다. 그는 누명을 벗자마자 사회적인 약자를 돕는 재단을 설립을 발표했다. 의료인으로서 약물에 중독되어 있는 환자분들을 종종 만나며 마약성 약물의 심각성을 경험한다. 수년간 섬유근통을 앓고 있던 한 환자는 중추감작의 통증인 섬유근통에 마약성진통제인 옥시코돈을 3년째 복용하고 있었다. 그는 일시적인 진통 외에 남아있는 여전히 극심한 통증으로 내원했다. 15년 이상의 장기간의 스테로이드와 진통제 투여로 신장기능이 11%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던 75세의 한 여성환자분은 발가락의 괴저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독성에도 불구하고 10가지의 약물과 함께 마약성 진통제 패치를 사용했다. 지난한 병력을 말하면서 의사가 처방한 약이니까 복용해도 괜찮을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연인’은 배우들의 열연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역사를 실감 나게 재현해 내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재미있게 보던 중 인상적인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여인들만이 피난하던 중 은애는 만주 군에게 겁탈을 당할 뻔하는데 이 찰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길채는 가지고 있던 은장도로 만주군을 찔러 죽인다. “여인이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면 죽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잠시 적과 얼굴을 마주했다 해도 살 수가 있겠느냐”라고 받은 교육을 떠올리며 죽는 게 낫다고 절망하는 은애에게 길채는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라고 결연하게 말한다. 전쟁이 끝나고 정혼자인 연준이 은애에게 청혼하니 “나는 연준도련님의 각시가 될 자격이 없어,더럽혀진 몸이잖아”라며 한번 더 주저하는 은애를 설득하며 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그 당시의 유교사회의 시선과 달리 혼인을 응원한다. 그 후 길채는 은애보다 더 심한 일을 당했지만 죽으려고 하지 않고 생명을 택하고 오히려 오랑캐에게 욕을 당했다고 치욕으로 우물에 빠져 죽으려는 여인도 구해낸다. 수치심은 거부되고, 조롱당하고, 노출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고통스러운 정서를 가
한 강의에서 강사가 물었다. “수용한다는 것과 포기한다는 것이 마음의 상태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어느 수강생이 답한다. “수용은 끌어안고 품는 것이고 포기는 밀쳐내는 느낌이에요.” “그렇죠. 수용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는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상태예요. 포기는, 아 모르겠다. 신경 안 쓸란다. 그런 느낌이고요. 수용과 포기는 의식의 상태가 매우 달라요. 수용은 수행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예요.” 머릿속으로는 익숙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수용이라는 개념. 실제로는, 수용했다고 용서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포기했던 건 아닐까. 강사가 말을 잇는다. “저희 클리닉을 방문하는 여성의 70%가 크고 작은 성폭력을 경험했어요. 오랫동안 아버지나 친척 등에게 어렸을 때부터 당했던 내담자들도 있고요. 그들에게 수용하라고 하면 잘 되겠어요. 어떻게 이야기해도 공감이 안 되고. 치유를 위한 철저한 수용은 수용하려고 끊임없는 수행하는 노력하는 과정이에요. 할 수 있는 가능한 것들을 다 해봤을 때 그래도 잘 안될 때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철저한 수용’의 개념을 대중화한 타라 브랙은 이 개념을 두 개 날개로 설명한다. 한쪽 날개는 마
처음 내원한 그녀가 기록한 예진 설문지를 보고 살짝 놀랐다. 복용하고 있는 약이 종류가 12가지로 약의 개수가 많기도 했지만 조목조목 모두 적었기 때문이다. 드문일이다. 성인병 2가지, 자가면역질환 2가지, 만성통증과 여성호르몬제까지 복용하고 있는 그녀는 다리가 너무 저리고 아파서 내원했다. 심박변이도검사의 자율신경의 에너지 저하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녀에게 몸과 함께 마음을 잘 돌봐야 좋아진다고 하니 그녀는 “제가 스트레스가 좀 많아요” 하며 눈물을 울컥 흘린다. “남편사업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크게 실패했어요. 제가 일해서 빚갚고 생활비하고 하느라 힘들었는데 요즘도 남편이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벌려요. 그것도 모자라 집에 들어오면 힘들다고 저에게 짜증을 내니 너무 화가 나요, 왠만하면 참는데 어제도 남편이 그래서 그만하라고 참다참다 화를 냈더니 또 남편이 화내고 삐지고 해서 또 힘드네요.” 그녀가 낫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극심한 만성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뿐만아니라 면역내분비 계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다양한 병으로 이환된다. 분노와 억울등의 감정을 계속 억누르고 내면화하면 화병으로 발전해 우울, 불안 혹은 신체화 증상이 나타난
4년 만에 그녀가 한의원을 방문했다. 이전에는 혈압과 당뇨로 인해 내원했었는데 이번에는 팔목이 아프다. 몇 달 전에 우연히 넘어졌는데 팔목에 금이 갔고 한 달 가까이 깁스를 하고 얼마 전에 풀고 나서 일상에서 사용했더니 다시 붓는다. 시간이 지난 것에 비해 치료가 느려서 몸의 진단을 해보니 자율신경의 에너지와 심장 기능이 모두 저하되어 있다. 단지 팔이 다친 것이라고 하기는 4년 전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던 그녀를 떠올리니 의아하다. 그동안 좀 힘든 일이 있으셨어요 하고 물어보니 과연 최근 몇 년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물으니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원하시면 말씀하셔도 되어요 하니 남편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갔다는 말을 하면서 울먹이신다. 얼마 전 은퇴해서 시골에 집도 사놓고 가꾸면서 살자고 먼저 내려가 준비하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3년 전 쓰러졌다. 이제 애들도 다 키워놓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일만 남았는데 먼저 가버린 남편이다. 워낙에 잘 웃고 밝은 표정의 그녀의 얼굴 속에 누구도 눈치채기 어려운 외로움과 쓸쓸함이 숨어있었다. 3년이 지났는데 최근까지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가 얼마 전부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아직 정말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는 불철주야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의 다섯 가지 감정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자연 속의 좋은 집과 좋은 부모님, 절친과 하키팀 동료들에 둘러싸여 부족한 것 없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라일리는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도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오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지며 뜻대로 안 되게 된다.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를 위해서 어느 때보다 바쁘게 감정들이 신호를 보내지만 우연한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되고 되돌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본부로 돌아오고 라일리는 회복되는데 다섯 가지 감정들은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각자의 위치에서 라일리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라일리처럼 감정은 인생의 순간들과 함께한다. 슬픔과 절망감을 견디며 한 노력이 쌓여 기쁨과 환희의 순간으로 변한다.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의 기쁨은 시간이 지나 실망과 권태 혹은 날카로운 증오로 바뀌기도 한다. 감정은 환경에 반응하여 발생하는 느낌과 기분을 말한다. 감정을 통해서 인간은 태어난 후 외부환경에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나는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