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사안이 부딪히는 사회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자 이들의 욕망과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가 서로 엉켜 삶의 현장이 펼쳐지는 곳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욕망 속에 울고 웃는 삶의 현장은 종종 세속이란 말로 표현된다. 사회에서 이념이나 종교의 특정 가치를 위한 탈속적 삶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아무리 탈속적 가치를 추구한다 해도 그러한 가치의 최종적 구현은 결국 다시 세속 현장으로 돌아와 세상과 함께 하는 것이다. 세속이란 인간의 삶이 관념과 현실 속에 통합적으로 마무리되는 곳이다. 숭고한 이념이나 종교적 가치가 지식인의 엘리트주의나 종교인들의 비현실적 이상이 아니라 세속 현장에 구현되는 시도와 노력은 인간적 모습이다. 세속과 유사한 개념으로 통속이란 말이 있다, 간혹 탈속적 가치를 강조하는 종교 집단에서는 세속은 곧 통속이 되어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형태로 거론되지만, 통속은 세속의 자연스런 모습이자 흐름의 표현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은 세속적이지만, 동물적 욕망에 의해 펼쳐지는 것이 통속적이다. 예로부터 흔한 예를 든다면 배우자 선택에서 돈과 사랑 사이에서 돈을 선택한다면 통속적이다. 사랑이나 가치 보다는 편
요즘 여당에서는 친윤, 찐윤, 비윤, 반윤, 친윤감별사 등 다양한 용어가 등장했다. 특히 더욱 주목 끌게 된 것은 대통령 산하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장관급 부위원장인 나경원씨가 국민의힘당 당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중에 해임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당사자인 나경원씨는 해임에도 불구하고 애처로울 정도로 친윤 임을 강조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의 이런 상황과 여론의 집중도는 보며 씁쓸함을 금치 못한다. 2025년에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우리 사회의 절박한 문제로서 인구 절감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해당 의제가 국가 유지의 장기적 근간에 직결되기에 대통령 산하에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있고 장관급의 부위원장을 둔다. 그런데 개인 정치 활동을 위해 취임 몇 달 만에 그런 자리를 던져버리는 모습 속에 국가 중대사를 다루는 위원회가 여당 정치인들에게 배급되는 임시 싸구려 자리로 전락한 셈이다. 더욱이 언론도 나경원씨와 대통령실 간의 갈등에 주목할 뿐 그런 행태의 의미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개인 당대표 출마와 관련해 중요한 국가 위원회는 거추장스러운 자리가 되어 사직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우
행정 부재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형태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160명 가까운 희생의 사회 참사는 유족은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특히 참사를 흔적 없이 지워버리려는 정부의 의도적 참사 대처 방식은 사람들의 분노를 더욱 유발했다. 그런 방침은 참사 이튿날인 10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결정이었다. 희생자들에 대한 49재 시민 추모제가 지난 주 이태원역 앞에서 있었다. 정부의 방해 공작과 무책임한 변명 속에 분노한 국민 모두, 유족의 슬픔과 함께 하며 참사 희생자를 기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없기를 바라는 행사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굳이 그날 살던 아파트 주민들에게 감사 떡을 돌리고, 특정 행사에 참석해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환히 웃는 모습을 연출했다. 세상을 향해 눈물 흘리는 예수를 십자가에 올린 로마 권력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법대로’만이 진리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정치 검찰에 의한 검찰독재국이 되어, 이제 ‘민주’가 아닌 ‘법주공화국’이 되었다. 사람을 노예로 생각하며 법을 주인으로 모시는 나라다. 법주공화국에선 정치 검찰에 의한 정치 폭력이
사회참사로 인한 희생자 이름 공개로 사회가 시끄럽다. 일부 언론매체가 희생자 이름을 공개했고, 정의구현사제단은 공식집회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한분 한분 불러 애도의 뜻을 기렸다. 예로부터 일반 사건사고나 참사와 달리 사회참사에 있어서는 유족의 특별 요청이 있지 않는 한 공개된 합동추모장에서 애도된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국민들도 자원봉사 형태로 참사를 겪은 유족들 아픔에 동참한다. 이는 참사의 슬픔을 공유하는 유족들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과정을 갖게 하고, 충격 속에 함께 슬픔을 공유하며 마음에 상처 입었던 사회구성원들에게도 치유 경험을 준다.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인 경우, 필수적 원인 규명과 함께 참사와의 관련 여부를 떠나 행정상의 총괄책임자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 역시 사회적 치유 과정의 하나다. 이처럼 사회참사는 개인을 넘어 사회적이다. 유족이 겪은 일과 고통은 유족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사회 참사를 통해 상처 입은 사회구성원들 역시 유족과 다를 바 없이 집단 치유가 필요하며, 이는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각자의 슬픔과 분노를 구체적으로 충분히 표현하고 나눌 수 있을 때
자본주의 상징인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OWS)’는 시민 시위가 있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2011년 9월 ‘고학력 저임금’ 세대가 시작한 일종의 계층 투쟁이었던 OWS는 그 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6년 10월 시작된 광화문 촛불 집회는 누적 참여 인원 1600만을 넘어서면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내었다. 세계 최초로 평화 시위에 의한 정권 ㅛ체의 무혈혁명이다. 군사정권의 맥을 이어온 새누리당은 적폐 정당으로서 와해 되었고, 19대 대선 패배를 통해 민주당 정권이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21대 총선까지 이어져 민주당의 역대급 국회 의석 확보로 나타나, 사회개혁을 위한 행정부 및 의회 권력을 확보했다.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1%는 기득권을 이용해 배를 불리고, 코로나19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되었다. 심지어 촛불 시민은 지난 대선에서 쫓아냈던 적폐정당의 재집권마저 목격하게 된다. 적폐 정당에 기반한 검찰 독재정권의 출범이었다. 그동안 힘들게 전국에서 서울로 집결했던 촛불시민들의 열망과
선진국인 대한민국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에 의한 먼지털이식 수사 현실이 여전하다. 야당 대표와 가족에게는 선거 기간 중의 말 한마디나 관행에 가까운 소액 사용에도 압수수색과 소환은 당연하고,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해서는 여러 불법 의혹에도 압수수색은커녕 소환에 응하지 않아도 그만이다.이런 상황과 대통령 가족의 초법적 태도는 김건희 여사의 학위논문 표절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누가 보아도 표절이 분명한 김건희 여사의 석사와 박사 학위 논문 및 관련 논문들에 대한 14개 교수·연구자 단체의 검증은 건강한 학문 사회의 기본 틀을 유지하기 위한 자정 노력이다. 사회 건강성을 유지하는 기본 틀은 법이나 규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병들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고,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암묵적 합의에 근거하는 각 분야의 윤리와 도덕이야말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동료 연구자들의 앞선 연구 결과에 기반해 후속 학문 연구와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 대학이다.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구성원들 간의 상호 신뢰와 존중이다. 이것에 기반하여 사회 발전에 직결되는 학문 연구가 가능하며, 건전한 학문 후속세대 교육과 양성이 가능하다. 이런 신뢰와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에 대한 실감은 해외에서 더욱 느낀다고들 한다. 이런 국격의 변화는 최근 한국이 ‘국제 학계의 많이 인용된 상위 10% 논문 보유 국가 순위’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앞질렀다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과학기술지표 2022’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2018-2020년 기간 중에 해당 분야에서 한국이 11위를 함으로써 12위의 일본을 넘어섰다. 선진국다운 면모가 학문 연구 분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학문 분야의 도약은 국내 고등교육 및 연구 현장에서의 충실한 학문 활동과 함께, 학문 후속세대인 석사 및 박사 학위 수여자들을 충실한 배출도 의미한다. 연구자의 독자적 연구 능력을 인정하는 박사 학위는 연구자 고유의 독창적 아이디어와 함께 이를 스스로 입증한 학위 논문을 통해 취득하게 된다. 박사 학위에 경중은 없으며, 박사 학위 취득자는 독자적 연구자로서 고등교육 현장의 구성원이 되어 대학 강단에도 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연구자 집단 내의 상호 신뢰를 무너트리는 3대 연구윤리 위반 행위인, 연구 자료의 위조나 변조 그리고 표절이다. 선진국에서 연구 윤리 위반행위는 학계 영구 퇴출 대상이며, 교수는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의 인권 말살 수사 속에 진행된 지난 21대 총선이었다. 압승 결과에도 불구하고 개혁은커녕 이를 수행했어야 할 민주당은 2년 후 치러진 올해 대선에서 정권을 야당에 넘겨주었고, 참담한 지선 성적표마저 받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지난 2년의 몰락을 성찰하기보다는 곧 있을 전당대회의 당권 싸움으로 여전히 소란스럽다. 한편, 대표적 진보 정당으로 여겨졌던 정의당은 궤멸이라 부를 정도의 초라한 성적과 함께 정당 존립 위기마저 거론될 정도로 그 존재감은 사라졌다. 하지만 각 당의 선거 패인 분석은 국민 눈에서는 너무도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엉뚱한 원인을 거론한다. 대표적으로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추진해서, 정의당이 조국사태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민주당이 21대 총선의 높은 지지 이후 신속한 개혁 완수에 이어 국민 눈높이 정책을 실시했고, 대선을 맞이해 보기 좋은 경선을 치렀어도 정권이 교체 되었을까?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개혁 열망에 부응은커녕, 당 강령에 개혁이란 단어가 있는 정당으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검찰, 언론, 재벌 개혁 등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21대 총선부터 무너진 정의당이 대표적 정책
태어난 자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태어나 이름을 부여받고 열심히 살다가 늙어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삶의 과정을 보면, ‘생명체’와 ‘삶’이란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 표현의 차이에 불과하며, 또한 생명체의 삶이란 ‘생로병사’라는 말 안에 모두 담겨있음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은 개체의 소멸이라는 죽음 자체가 생명 현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개인이 겪는 죽음이 생명 현상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면, 유한한 존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의문은 개인 차원 내지 층위를 달리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록 나라는 개체는 특정일에 태어나 일정 기간 살다가 특정일에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이지만, 나를 있게 한 부모로부터의 생명의 힘이 있었듯이, 내 부모 또한 그 부모에 의해 존재할 수 있었다. 거꾸로 개인의 존재를 유지했던 생명의 힘은 당사자는 죽음으로 소멸되어도 자식을 통해 이어져 간다. 여성과 남성이란 성의 분화 형태는 있을지언정, 생명은 개체의 죽음 넘어 또 다른 탄생으로 끊임없이 지속되어 후손의 형태로 그 숫자를 늘려가며 다양하게 번창하는 모습이 있다. 아름다운 지구 생태계는 그 결과물이다. 이렇게 죽음과 탄생이
지금도 안방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미드(미국에서 제작된 TV 연속 드라마) 중에는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병원에서 의사들의 인간적 고뇌를 다룬 내용이 꽤 있다. 그런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이 우리라면 너무도 간단한 부탁이나 청탁에 접한 의사가 의사의 기본 윤리를 언급하면서 면허 취소를 걱정하는 장면이다. 개인 권리를 존중하지만,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 공적 역할이나 책임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인 미다졸람과 전신마취제 등을 섞어 불법 투여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고, 더욱이 그 시신을 유기한 의사에게 취소된 면허를 되찾아 준 최근 판결이 논란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비록 중대한 과오를 범했지만 개전의 정이 뚜렷한 의료인에게 한 번 더 재기의 기회를 줘 자신의 의료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의료법 취지와 공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인용했다.사람을 죽인 해당 범죄로 인해 의사가 받았던 형량은 고작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300만원에 불과했다. 그에 따라 면허 담당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그의 의사 면허를 취소했는데, 판사가 면허를 되살려준 것이다. 의사가 받은 형량의 경중을 넘어,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