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을 위한 민형배 의원의 결단을 두고 말이 많다. 무소불위 권력을 지닌 검찰 정상화의 국회 입법 진행을 위해 탈당이라는 과감하고도 통 큰 선택이다. 개혁을 바라지 않는 이들은 꼼수, 무리수, 혹은 위장 탈당 등 각종 표현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반면 개혁을 원하는 이들은 얼마 남지 않는 국회 시간을 염두에 둔 결기 찬 결정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개혁은 늘 있었다. 대표적인 개혁인 종교개혁이나 미국 노예 해방운동을 보면, 전자는 당시 비리가 심했던 구교로부터 많은 희생 속에 기독교의 전면적 재구성을 통해 개신교가 등장한 과정이었고, 후자는 남북 간 첨예한 의견 대립 속에 전쟁 형태로 진행되었다. 국내의 130여 년 전에 있었던 동학 농민운동 역시 당시 혁명에 가까운 사회 개혁 운동이었다. 혁명은 특정 분야의 부분적 개혁으로는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발생한다. 혁명은 사회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며, 혁명 주체가 대중의 응축된 개혁 요구에 상응하는 개혁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실패로 끝난다. 무혈 정권 교체를 이뤄냄으로써 광화문 촛불은 혁명성을 인정받았지만, 아쉽게도 새 정권은 촛불이 요구한 개혁을 하지 못했다. 혁명 정부답게 적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란 주제는 매우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공공선 내지 공적 가치로서의 공정은 민주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 없고, 선진 사회일수록 공정한 사회임은 분명하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의 근거가 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만행이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이 표창장 하나에도 공정을 외치면서 검찰 난동을 묵인한 상황이 있다. 당시 공정을 외치면서 집회룰 한 이들은 노동 현장에 있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강남에서 학력 세습권에 있던 젊은이들이었다.반면 아빠 찬스로 대리 퇴직금이 50억이 되어도 누구도 공정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집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표창장 하나로 4년을 복역해도 여전히 당연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50억 퇴직금에 있어서는 조용했다.한편, 지난 2014년 4월 많은 어린 학생들이 눈 앞에서 세월호와 함께 수장되며 드러난 행정부의 무능에 대하여 누구나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으나 대규모 촛불 집회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광화문 촛불의 도화선은 그해 9월 최순실 딸 최유라의 이화대학교 특혜 부정 입학이 불을 당겼고, 결국 정권을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라떼’를 말하는 것처럼 꼰대는 없다고 한다. 그래, 서울에 살았지만 나 때는 자가용도 별로 없었고, 신촌에서 광화문 갈 때 문안 간다고 했었어. 바나나? 수입산으로 특별한 날 겨우 사먹었지. 음식 버리면 야단맞았고, 전기나 수돗물 절약은 당연했어... 이런 말하면 이제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는데 ‘역시 늙으면’이란 소리를 듣는다.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눈치 없는 꼰대로서 퇴출 대상이다. 맞아, 이번 정부에 들어서서 각종 경제 지표로 선진국이 되어 국제사회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선진국의 의미는 무엇일까? 배부르면 선진국? 여전히 지구 어딘 가엔 먹을 것이 없고 변변한 주거 시설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선진사회에서 풍요롭게 사는 이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다. 그들은 절약하려 해도 절약할 거리도 없다. 특정인이 선량한 사람인지는 그가 능력을 가졌을 때 나타난다. 권력과 재산을 가졌을 때, 주변에 갑질하지 않고 나누며 함께 하는 이가 진정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능력이 없는 이들 중엔 선량으로 포장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이들은 재산이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자신이 과거 겪었던 갑질이나 돈 자랑을 주변
코로나19에 대한 인류의 대응 양상은 오미크론 변이주 등장에 의해 다시 한번 흔들리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처음 보고된 이후 각국의 치열한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오미크론 변이주는 벌써 전 세계에 퍼진 것으로 본다는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의 발언도 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확산세의 급증이 보고됨에 따라 사적모임 허용 인원을 줄이고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을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병상 부족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포함해 지난달부터 시행돼 온 위드코로나 조치는 한 달 반 만에 멈추는 셈이다. 비대면 강화 조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고통의 연장이기도 하다. 조만간 코로나가 감기처럼 인류 일상의 전염병으로 자리 잡음으로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 이후 변화될 새로운 일상의 생활양식이나 기준을 의미하는 뉴노멀의 포스트코로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과거와 달리 비대면 만남과 소통 방식이 강조되고, 재택근무가 보다 확대되고 이를 위한 맞춤형 사물인터넷 등의 확산 역시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로 잠시 잊혀진 듯한 4차 산업 혁명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면 코로나19는 비대면과 맞춤형 등의 여러 생활 변화를 촉발할
문재인 대통령의 ‘개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라는 언급은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란거리를 다시 한번 들췄다. 이에 따라 이런 논란의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찬반 양측의 논란’ 식의 보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상투적 표현이 등장한다. 관련 부처 역시 굳이 임기 말 대통령 언급에 찬반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 할 것이고,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있는 남북평화 문제나 한반도 종전선언, 내지 검찰개혁 사안마저 여당과 정부 관련 부처의 적극적 호응이 없어 흐지부지 되는 상황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식용에 대한 대통령 언급이 있다 보니 여야 대선후보들의 입장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는 개고기 금지를 분명히 하면서 육견협회 등 찬성 측과의 대타협을 통해 개식용 종식을 정리할 것을 공언하였고, 야당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반려견과 식용견은 따로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후자의 발언은 개고기 식용을 찬성하는 이들이 종종 취하는 논리로서,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서 K-Pop과 오징어게임 등 국제사회를 이끌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왜곡된 견해다. 이미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면서 세상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강조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이뤄지며 고정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고 설파한 인도의 싯달타와 대략 비슷한 시기의 인물이다. 대선을 앞둔 국내 상황에서 이들 말처럼 새삼 재확인하게 되는 것은 없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혼재와 갈등 속에 다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는 시기다. 앞선 촛불정부를 계승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판을 바꿔 여야를 바꿀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적절한 중간 어디선가 새롭게 모색할 것인지 선택 기준이 필요하다. 현 촛불정부의 다양한 개선 시도와 코로나 방역 성공을 인정한다 해도 서민들 생활에 직결되는 청년 일자리 부족과 부동산 문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전자는 세계적 추세이고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악화된 것이라는 변명이 가능하나, 후자에 있어서 이번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며 누구라도 특별한 해결책이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20-30대의 청년층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기득권자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 친일 기득권 속에 군사독재를 경유해서 여전히 사회전반의 특권층을 이루고
코로나 사태가 델타 변이 등의 등장으로 장기화 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 지고 있다.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편, 오히려 이 시기에 부유한 이들은 더욱 부유해졌다는 뉴스도 있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고, 각 개인의 다양한 삶이 인정되는 시대지만, 이런 식으로 특정 계층 사람이 죽음을 쉽게 겪는 사회적 다양함이란 공정한 것 같지 않다. 아니 인간이 평등한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인간 사회가 결코 평등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공정한 과정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그녀가 고액을 지불해 비행기 일등석에 타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불공정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는 인간 사회에서 평등함이 자리 잡으려면 공정해야 한다. 일등석과 일반석을 인정하듯이 이때의 공정이란 다양성의 존중이다. 한편 서로 다른 차이로 생겨나는 다양성의 존중은 무엇에 기반하는가 생각해 본다면 각 존재의 존엄성이다. 서로 다른 우리 모두 존엄한 존재로서 존중될 때 평등하고, 공정함이 자리잡는다. 공정이란 말이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은 채 단지 표피적으로 똑같이 취급받는 것을 의미한다면 오히려 진정한 그 뜻을 잃는 셈
긴 진화의 상호 적응과정이 생략된 채 인간 문명에 의해 발생한 코로나 19는 창궐한 지 20개월 정도 되는 지금, 변이를 계속하며 전세계적으로 2억 이상의 사람을 감염시켜 사망자는 4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바이러스가 만든 지옥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경제 활동은 물론 생활양식마저 바꾸며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상황 속에 우리는 부동산 투기라는 또 다른 전염병을 경험한다. 통계청이 지난 7월 말 내놓은 ‘2020년 국민대차대조표’만 보아도 주택 시가총액은 현 정부 출범 이전인 2016년 말 4000조 원 정도에서 4년 만에 1700조 원 넘게 불어나 폭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희생자가 고령층인 코로나 19와는 달리 2030대 계층이 주요 대상이다. 살아남기 위해 2030대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 영끌로 버텨야 했고, 이마저 어려운 부동산 난민들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빚투라는 처절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런 생물학적, 문화적 전염병 창궐 속에 놓쳤던 전염병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재용 재벌 총수의 가석방. 그는 박근혜와 함께 국정 농단에 관여했던 기업인이다. 국정 농단은 물론 각종 범죄 혐의로 재판 중인 그의 가석방이란 탄핵된
사회개혁을 통한 원칙과 공정을 요구하는 촛불 시민에 의해 탄생한 것이 현 정부다. 또한 요즘 MZ세대도 원칙과 그에 따른 공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여러 조사로부터도 잘 나타난다. 그런 MZ세대가 사회 적폐 청산의 시도로서 검찰 개혁을 하려던 정부와 인권 말살의 추태마저 보이며 저항한 검찰 권력 간의 갈등을 보면서 오히려 현 정부를 원칙과 공정을 지키지 않는 내로남불 정부라고 말한다. 이렇게 서로 원칙과 공정을 말하고 있음에도 전혀 같이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MZ 세대와 촛불 정부 간의 공정과 원칙의 차이는, 촛불혁명으로 인해 야당으로 전락해 20대 총선에서마저 대패한 국민의힘당과 조중동이라고 하는 주류언론이 앞장서서 왜곡 조장하는 면이 있지만, 단지 그런 외부 선동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것은 서로 요구하는 공정과 원칙의 역사 인식 차이에 기인한다. 사회의 주어진 규칙이나 틀을 강요받으며 당장 사회 기존 체제에 안착해야 할 MZ 세대에게 사회 규칙이나 틀을 지켜달라는 요구는 자연스럽고 또한 절박하다. 한편, 해방 이후 미군 점령군의 치안 유지 목적에 의해 청산되지 못하고 면면히 내려온 일제 부역자 집단이 형성해온 사회 기득권
대선을 위한 향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촛불 무혈혁명의 지지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후임으로 어느 당에서 누가 선출되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것인지는 자연스레 모든 국민의 주요 관심사다. 현재 여론 조사상 야당의 유력 후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그는 촛불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자신의 검찰조직을 믿고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들이대며 심지어 상급자인 법무부 장관 대상으로 행정 소송까지 진행한 이다. 무엇보다 그는 대통령 및 촛불 시민이 요구한 검찰개혁 시도를 분쇄했다. 또 개혁에 앞장선 이들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적폐 언론을 배경으로 합법을 가장한 악랄한 기획 수사를 통해 인권 말살 행위를 태연히 진행했다. ‘검찰 쿠테타’라고 불린 그의 행보 뒤에는 검-언-정 기득 적폐세력의 막강한 지지가 있었다. 촛불 개혁 정신이 대선 이후에도 이어지려면 그가 야당 후보 1위라는 현실로부터 생각할 것이 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적폐 기득권을 상징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군 실력자가 자연스레 대통령 취임으로 이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적폐 기득권의 구조와 인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안다. 사회 민주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