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매년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은 약 6만명으로 그 중 경기도내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은 1만7천587명에 이른다. 이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는 전체 학생의 1% 이상(재적 학생수 대비)이 매년 학업을 중단하고 있으며 이런 학생을 누적해보면 약 28만 명이 현재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청소년들은 부모의 동의서 없이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일을 구한다 하더라도 머무를 곳이 없다보니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성매매, 절도, 강도 등 범죄에 내몰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다행히 지난달 29일부터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많은 청소년들이 정기적인 건강검진, 취업지원, 심리상담 등의 지원을 받을 수가 있게 됐다. 경기도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인 ‘꿈드림’을 지난달 29일 31개소에 설치 운영하고 있다. ‘꿈드림’은 만 9세 이상 만 24세 이하인 도내 학교 밖 청소년은 물론 그 부모와 이들을 지도하는 청소년 지도자들도 이용할 수 있으며, 지원이 필요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 심리 상담, 멘토링, 학업 복귀, 취업,…
매일 아침이면 산더미처럼 배달되는 신문 가운데 ‘살구빛 고운 종이’를 만나게 된다. 이 종이를 사용하는 일간지는 경기 인천지역에서는 경기신문이 유일하다. 천연펄프가 20% 더 들어가 눈의 피로도 덜하다. 살구빛 종이에 어울리는 독특한 색채감의 경기신문이 오늘로써 창간 13주년을 맞았다. 소년기를 뛰어넘어 청년기에 접어들었다. 점차 열악해지는 언론환경에서 열 세 살의 나이를 먹기까지는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다. 그러나 특유의 젊음과 패기로 지역사회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며 이 자리에까지 우뚝 섰다. 이는 그동안 아껴주신 독자와 경기 인천시민 여러분의 덕택임은 물론이다. 최근 언론계는 점차 열악해지는 취재환경과 경영환경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특히 우리 지역 언론의 위기는 뿌리가 깊은 만큼 뚜렷한 해결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의 난립과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신문의 폭이 좁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지역 언론에도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에도 그래왔듯이 경기신문은 어떠한 어려움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비판과 사회감
메르스 발병은 우리나라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여러 부문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단 국민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기피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정성껏 준비한 각종 공공·민간행사가 취소되고 있으며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지역 학교와 유치원은 휴업에 들어갔다. 대부분 노인정도 한산하다. 사람들로 붐비던 영화관과 시장통, 음식점, 목욕탕 등도 손님이 급감해 울상을 짓고 있다. 실제로 저녁나절이면 번호표를 받아 줄까지 서야 했던 수원시 행궁동 통닭거리나 그 옆의 지동순대타운 등은 눈에 띨 정도로 손님이 줄었다. 예식장이나 장례식장도 축의금이나 부의금만 전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반면 반사적인 호황을 누리는 업종도 있다. 손 소독제를 만드는 회사나 마스크 업체는 물건을 미처 대지 못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 있다. 메르스 등 질병 면역력을 높인다는 약품이나 식품은 판매량이 늘었다. 홍삼이나 인삼, 비타민이 많은 토마토, 사과 등 채소와 과일 판매상과 비타민음료 등 건강음료 제조회사는 호황을 누리고 있단다. 생강, 고구마, 연어, 김치 등 면역력 강화에 효과가 있는 식품들도 매출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극히 일부분의 예외일…
궁중문학의 백미로 알려진 한중록(閑中錄)은 사도세자의 부인이며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惠慶宮, 1735~1815)이 쓴 작품이다. 혜경궁은 오랜 기간의 궁중생활과 사도세자의 죽음, 큰 뜻을 위해 어린 아들 정조를 시아버지인 영조(英祖)에게 보내는 결단과 정조의 즉위 후 정적(政敵)의 모함으로 친정이 화를 입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근래에 사도세자가 부인이 쓴 한중록의 내용처럼 정신병자인지 아니면 아들이 쓴 사도세자의 행장의 내용처럼 총명하고 똑똑한지에 대한 진정성 논쟁이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각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한쪽으로 치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조는 즉위(1776)하자 바로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을 거대하게 개건한다. 또 혜경궁의 거처를 다음해(1777)에 새로 마련하는데, 당호(堂號)는 자경당(慈慶堂, 자경전)으로 뜻은 ‘자(慈)란 자비로운 은혜이고, 경(慶)이란 경사스런 일이 바란다’로, 위치는 창경궁 통명전 뒤 언덕에 있는 위치에 건축되는데 창경궁과 경모궁등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자경전의 건축 관련 자료는 3가지로서 동궐도(1824~?)와 자경전진찬의궤(1827~29년)가 있으며 내용
‘지역의 관료가 바뀌어야 지역이 바로 선다’라는 ‘촌철살인’을 그동안 오산시민들은 왜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기(放棄)했던가. 이는 현재 오산시의 일부 국장들의 ‘무영혼론 업무’에 대해 함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기관은 근본적으로 똑똑하고 유능하다. 그런데 그 유능한 간부 중 극히 일부가 시민이 맡겨 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거나 자리때우기식의 행정을 펼치고 있다면 큰 문제다. 밀실행정만 펼치며 민원인을 거부하고 언론과의 소통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범이 돼야 할 간부가 오히려 불만을 속출하며 수동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하 직원들까지 자질론에 대한 평가를 쏟아내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인사권자인 시장의 결단이다. 그같은 근무행태를 방치하고서 공직개혁을 외치는 것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공직 DNA가 바뀌지 않는 한 공직개혁은 요원하다. 이와 반대로 시정을 위해 몸을 바치는 간부도 있다. 늦게 퇴근하고, 이튿날 아침 새벽같이 출근하고, 토요일 일요일 구분도 없이 나오고, 휴가도 반납하는…. 공직도 떠날 시기가 중
며칠 전 충남 당진에 있는 ㈜선진정공이라는 기업에 다녀왔다. 마침 현장에서 굴삭기 부품 용접 품질검사를 위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요일마다 생산품질을 평가하고 개선점을 도출하는 행사란다. 굴삭기, 각종 캠핑카, 레미콘, 특장차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설립자인 박성수 회장의 피와 땀이 결집된 기술집약적 우수기업이다. 박성수 회장의 삶은 한편의 휴먼드라마와 같다. 그는 60년대 말 재건중학교(5.16 이후 재건국민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학력무인정 중학과정)를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상경했다. 20대까지 구두닦이, 화물차 조수, 운전기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모은 돈으로 화물차 한 대를 구입해 운수업을 시작했다. 때마침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운수업은 호황을 누렸다. 국가경제를 일으키는 길은 제조업에 있다고 판단한 그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국내에 전무했던 레미콘 등 특장차 제조에 뛰어들었다. 30년간 한 우물을 판 덕분에 지금은 8개의 계열사, 연 매출 2천억 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의 인생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을 닮아있다. 박성수 회장은 취업난으로 힘들어 하는 청년들에게 “요즘 청년
무예 수련은 자신의 몸과 끊임없는 투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무예 자세라도 그것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수천 번 혹은 수만 번의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몸에 새겨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몸과 일체화 되면서 자신만의 몸짓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똑같은 자세를 배운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몸이 다르기에 그 움직임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제조건은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과는 다른 형태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일체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바로 나와는 다른 몸짓이지만, 그 다른 몸짓을 내 몸에 맞도록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 수련이라는 것이다. 고된 과정을 거치면서 무예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진화한다. 그런 이유로 무예는 과정은 있지만, 완벽한 정답이나 결론이 없다. 이는 복식이나 음식과 같은 생활문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더 아름답거나 혹은 더 맛있는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또한 시류 혹은 유행 속에서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통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예의 문화적 속성으로 인하여 무예를 배우는 목적과 의미에 따라 자세나 운동형태가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들이 수련하는 무예는…
경기신문이 창간한 2002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해 였다. 그리고 뜨거웠다.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가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말 있었던 대통령 선거도 뜨거운 월드컵의 열정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경기도 경기지만 그 중심에는 응원의 열기가 있었다. 지금 다시한번 응원에 참여한 국민 숫자를 헤아려도 대단하다. 앞으로 또다시 이런 모습이 재연될수 있을까상상이 어렵다. 폴란드와의 1차전 전국 81곳에서 66만명이 길거리에서 태극전사들을 응원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응원단은 늘어만 갔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포르투갈전에는, 전국 223곳에서 278만명이 길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탈리아전에는 전국 311곳 350만명이 길거리 응원에 동참하며 골든골 승리의 감격을 맛봤다. 태극전사들이 승리를 거듭함에 따라 거리 응원의 규모는 커져만 갔다. 스페인전에서 전국에서 500만여명을 기록한 데 이어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는 무려 650만여명이 거리 응원에 나서는 기록을 세웠다. 대표팀의 선전과 함께 전국으로 확산된 붉은 악마의 이같은 함성은 세계속에 한국의 힘을 각인 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하는 응원 구
길, 긴 길 /황학주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 서 나의 속도는 몇 년째 잘 자라지 않았다. 삶의 불이 밋밋한 배에 지피는 중일까 날이 새는 길 위에서 당기는 창자를 가만히 참아보았다.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서 장작불에 정숙을 피우며 긴 길, 푸릇푸릇한 잡풀의 무엇을 줍고 싶은 긴 길이었다. 몸이 몸의 희망을 버렸는지 모르지만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서 쓸쓸하게 손이 떨리는 저녁이 홀로 필요했다. 나 이대로 연년이 많은 비를 맞은 이 가슴의 옷을 주워 안고 서향의 길가에 조용히 꽃그늘을 세워놓고만 싶다. 시가 슬픈 것은 삶의 반영일지 모르지만 함축된 그늘에서 외로움들이 찾아든다. 집 밖에서 보고 싶은 햇빛이 병상에 누운 어떤 환기를 고뇌하고 있다. 다들 혼자서 갈 수 없어서 누구와 동행을 삼아 앞날을 개척해 가는 구도자의 길이다. 어떤 길이든 갈 수가 없다는 이 형언하기 어려운 고독감에 비하면 인간의 의지란 대체로 무엇인가. 간다는 것은 무엇이고, 길을 만들어가는 일들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진보, 변화, 화해, 자아라고도 할 수 없는데 마음의 통일을 이루긴 어렵다. 시간은 길고 세월은 읽을 수 없을 만치 빠르게 지나간다. 한줌의 빛과 기억, 그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