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 한 출판사와 음반회사 공동으로 한글날 맞이 ‘시인들이 뽑는 아름다운 우리 노랫말’ 행사를 했다. 가수의 목소리, 아름다운 음률도 덮어버리는 기막힌 노랫말들을 알게 되고 음미했다. 선정 가요 중에 나의 애창곡 ‘김광진의 편지’가 들어 있어 더욱 그 행사에 마음이 갔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선정 가요들을 모아 낭송하고 노래를 들려주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월드 뮤직 정의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고 그 ‘세상’에는 당연히 우리 노래도 들어있으니까. 영화 배경음악 중 시 같은 노랫말이 있다. 그럴 때는 정지화면을 누르고 음미한다. 샐리 포터(Sally Potter)가 부른 ‘I Am You’도 그랬다. 그 노래는 음반을 통해 먼저 만났다. ‘영화 속의 월드뮤직’이라는 타이틀로 나온 음반이었고 수록곡들은 모두 아는 음악이었는데 ‘영화 탱고 레슨의 I Am You’는 생경했다. 음악을 틀면 바로 혈관에 독한 기운을 주입하는 탱고리듬이 터진다. 그리고...... 뭐랄까. 초탈한, 인생을 한 바퀴 돌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듯한 목소리로 ‘Where did you come from?’이라고 나지막
“진실은 땅 속에 묻히면 점점 자라며 숨이 막혀서, 결국 그것이 터지는 날에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만한 폭발력을 얻게 된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 에밀 졸라(Emile Zola)의 고발문이다. 진실의 은폐로 간첩이 된 드레퓌스(Alfred Dreyfus) 대위. 유대인이었기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이에 분노한 정의의 기자 졸라. 펠릭스 포르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썼다. “자뀌즈(J'accuse: 나는 고발한다)!” 이는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마침내 지식인들의 선언문을 이끌어 냈다. 재판은 뒤집혔고 드레퓌스는 누명을 벗었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두 동강 나게 한 “드레퓌스 사건.” 이를 종식시킨 졸라. 프랑스 양심의 표상이 됐다. 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존경은 하늘을 찔렀다. 오죽했으면 사후 6년 만에 프랑스 위인들의 성전인 팡테옹에 그를 모셨을까. 하지만 졸라의 인생초년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모자라는 듯 말을 더듬고 국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타지에서 온 학생이 이처럼 꺼벙하니 프로방스 학생들은 그를 괴롭혔다. 이때 세잔이 나타나 구해줬고 그 둘의 우정은 시작됐다. 졸라는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도 연거푸 낙방했다. 대학을 결국 포기했고
선거는 끝났다. 그런데 선거보도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칼럼은 물론 스트레이트 보도조차 진영 논리로 춤을 췄다. 칼럼은 특정 캠프의 감독 명령으로 둔갑하고, 스트레이트 기사는 다른 언론이 검증하는 사안을 물타기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의 ‘윤석열은 안철수를 보쌈이라도 해오라’는 칼럼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학생이나 초년병 기자의 저널리즘 강의에 쓰면 더없이 좋을 사례가 됐다. 강의제목은 ‘버릴 관행’ 정도면 적절해 보인다. 보쌈이란 용어는 품격 있는 언론인이 입에 담아서는 안될 말이다. 그가 쓴 보쌈은 ‘삶은 돼지고기 편육을 절인 김치에 싸서 먹는다’는 뜻으로 쓰인 게 아니다. 투표용지 인쇄 마감일인 2월 28일을 혼인이 가능한 마지막 날로 보고, ‘혼기를 놓친 윤석열은 과부인 안철수를 납치해서 강간하고 같이 살라’는 교시였다. 후보나 선거 캠프의 일방적인 발언을 검증 없이 전달하는 관행도 여전해, 네거티브 선거전의 불쏘시개가 됐다. 클릭수를 높이는 데 혈안이 된 언론의 생리를 잘 아는 선거 진영에서는 더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 냈다. 언론은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 써 확성기 노릇을 자처했다. 유시민 작가는 3월 3일 MBC ‘100
인간은 누구나, 특히 그리스도교는 더더욱,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든 재물을 통해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전쟁과 그 준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전쟁과 그리스도교는 양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이는 것이고, 그리스도교는 내가 진정 살기 위해서는 너 또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헌정) 무장된 국가와 전쟁, 이 두 가지가 언젠가는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통치자들이나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의해서는 아닐 것이다. 전쟁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전쟁은,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운명은 자신들에게 달려 있음을 깨닫고, 자신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자, 자신들을 병사로 만들려고 하는 자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그만 둘 때,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하르두엔) 만약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평화를 지킨다면 우리는 권력자들에게 그들의 병사들이 가져다주는 이익보다 훨씬 많은 이익들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사람들이 온갖 번뇌로부터의 벗어나기 위한 사색과 수련까지 배운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인류의 복지를 위해 일하게 된다. 우리는 권력자의 행복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본 칼럼은 어제(9일) 오전 9시까지 보내야하는 글이다. 당연히 대선 투표결과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칼럼은 오늘(10일) 실린다. 어떻게 써야 엉뚱한 글이 되지않을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껏 대선을 염두에 두고 칼럼을 실어왔는데 딴소리할 수도 없고 틀리건 맞건 내가 생각한데로 적을 수밖에.. 어젯밤 늦게까지 동영상 중계로 후보들의 마지막유세를 봤다. 한사람은 여전히, 아니 더욱 격한 어조로 상대후보를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중엔 심지어 허위사실 논란이 일었던 여배우까지 무대에 세우며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다른 한 사람은 비난보다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니 홍대 앞 마지막 유세에서는 사람들과 즉문즉답을 주고받으며 마무리를 했다. 덧보태 상대후보에게 “고생 많으셨다”고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거에 임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선거결과에 따라 판이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나는 감히 예상하건데 이재명후보가 상당한 차이로 이길 것이라 본다. 왜냐? 대한민국 국민들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아요? 더 가릴 음식은 없는가요?’ 그녀가 물었다. 마흔 넘어 결혼을 하고 임신을 위해 한 시험관시술에 다섯번 실패한 후 빠른 회복이 절실한 마음이리라, 열심히 했는데 심신이 지쳐버린 그녀다. 나는 “돼지고기와 밀가루, 튀김, 인스턴트, 화학첨가물이 든 음식을 피하고 한식위주로 담백하게 골고루 식사하라는 큰 원칙만 지키면 되어요.” 하고 대답하니 그녀는 자세히 알려달라고 재차 졸랐다. 마지못해 나는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한약을 복용하면서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던 어느날 그녀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원장님. 회를 조금 먹어도 괜찮나요.” 바닷가 동네인 고향 부모님댁에 갈 때면 비추천 음식인 회종류를 많이 차려주시는데 안먹는 게 스트레스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참는 것보다 신선하고 좋은걸로 조금씩 먹는게 나아요. 먹을 때 마늘이나 생강, 된장 등을 같이 먹으면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했다. 폐경이후에 기운이 너무 없어 내원한 그녀다. 오랫동안 갑상선기능저하증이었다가 작년에 폐경이 된 이후 홍조, 두근거림, 불면, 질의 건조감과 통증뿐만 아니라 소화도 잘 안되고 너무 불안하고 두근거린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
이롱증 앓던 고막 찬바람에 걸어놓고 당신 발소리 새긴다 각혈하듯 꽃 피는 소리 귀가 열릴 때, 오시라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릴 수 없듯 스스로 칭찬함으로써 평판을 높일 수는 없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사람들의 평가는 내려가는 법이다. 남들한테서 좋은 말을 듣고 싶거든 스스로 자신의 좋은 점을 늘어놓지 말라. (파스칼) 사상과 그 표현, 즉 언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상과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은 좋지 않다. 속된 사람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현명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가려지도록, 언어는 그렇게 주어진 것이다. (로버트 사우디) 자신에 관해 남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결코 마음이 평화로울 때가 없다. 페르시아 사람 사디는 언젠가 아버지 옆에서, 집안 식구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밤새도록 자지 않고 코란을 읽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밤중이 되어, 나는 코란에서 눈을 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코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죽은 것처럼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어서 가서 자도록 해라.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바에는.’” 아첨을 하는 것은, 말하는 자신을 낫
백주 대낮. 지난 7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촌서 선거운동 중에 70대 남성 유튜버에게서 피습을 당했다. 또 지난달 24일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충남 홍성 유세 중에 ‘선제타격, 사드 배치 반대’를 표명하며 1인 시위를 하던 젊은 여성이 정당 지지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소위 ‘태극기부대’ 중장년·노년층 일부의 막무가내 ‘폭력’이 유야무야 용인되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정치 폭력의 씨앗’은 이 지경으로 자랐다. 선거를 일종의 전쟁이라고 쳐도, 유권자의 축제에 폭력이 용납되어선 안 된다. 정치적 견해차에 따른 폭력은 아마도 2014년 봄, ‘국가의 무능’으로 인해 세월호가 침몰하는 속에서 꽃 같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은 후, 희생자 가족을 조롱하던 ‘일베’들의 ‘혐오’와 궤를 같이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국가 폭력 범죄자인 전두환을 옹호하는 발언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철학자들은 “좋은 정치란 평화와 번영을 이루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며, 나쁜 정치란 나라를 전쟁 상태에 몰아넣고 국민을 갈등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로크, 루소 등의 공통된 주장이다. 또한 좋은 정치란 ‘
영화와 예술은 공교롭게도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먹고 자란다. 영화는 밝은 시대보다는 어두운 시대에 더 잘 되는 경향이 있다. 아니 그보다는 어두운 상황에 대한 얘기를 더 잘하는 경향이 있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그랬다. 한국사회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심하게 곪아 있고 또 그렇게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줬다. 그건 신자유주의가 심화된 때문이고 한국 자본주의가 극도의 천민화, 양극화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은 문재인 이전 이미 9년 동안 진행돼 왔었다. '기생충’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 모두 이러다가 비극적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 드라마로 등극한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극중 인물인 1번 노인을 통해 이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 영화가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은 그러나, 한 템포 정도 약간 늦는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3년이나 4년, 늦으면 5~6년 전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러니까 ‘기생충’은 박근혜 시절이 계속됐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가를 보여줬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