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하지 않은 청년이었다. 일상처럼 불안정한 성장기와 무엇 하나 수월하지 않은 위태로운 날들을 거치며 선택보다 포기를, 패기보다 허무를 배웠다.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고 살아가는 게 행복하지 않은데 치열한 삶을 강요하는 사회가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살아내기가 죽기보다 고통스러웠던 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PC통신 채팅이 유행했다. 얼굴도 모른 채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세상이 신기했다. 자존심은 세고 자존감은 낮은 나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사이버 공간에 갇혔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현실의 고통을 피하고자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누군가 지나가며 이 말을 툭 던졌다. "가짜를 추구하지 마" 살다보면 그렇게 다가오는 말들이 있다. 무심한 언어는 가슴에 내리꽂혀 의식을 흔들어 인식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심장에 비문(祕文)처럼 새겨진다. 통찰과 자각으로 연결되어 사물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가짜를 추구하지 말라는 충고는 예리하고 정확하게 가슴에 박혀 시퍼런 칼날처럼 번득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준거가 되었다. 진짜는 무엇인가. 나는 진짜인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선은 향후 펼쳐질 국정의 주요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총선 이상으로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이다. 우리 민족은 해방 이후 모두 3차례나 민주정부를 출범시킨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민족 분단의 열악한 정치지형, 반공 극우언론이 압도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친일 반민주 무리들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민주주의의 세계적 모범 국가로 만들었다. 지난 2017년 박근혜 탄핵으로 권력과 부의 양지에서 밀려난 특권 반칙세력들은 외세와 재벌에 빌붙어 누려온 권세와 부를 잃고 한동안 지리멸렬했다가 지금은 전열을 가다듬고 권토중래를 노린다. 마치 이번 대선이 정권을 탈환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도 되는 양 총궐기하는 기새이다. 이들은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정부의 개혁조처도 자신들이 장악한 검찰과 재벌, 편파적 제도언론을 총동원해 사사건건 흠집을 내 좌초시키려 애를 쓴다. ‘민주개혁이 우리만의 기득권을 줄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마음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하다. 개혁을 노골적으로 반대할 때 나타날 국민적 역풍을 우려해 ‘정권교체 플래카드’로 검은 속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콩브레(Combray) 역에 도착한 꼬마 푸르스트. 마중 나온 고모 부부를 따라 꽃향기 그윽한 산사나무와 오래된 장미나무가 찬란한 예쁜 정원의 오베핀(Aubépines)호텔로 갔다. 목가적인 전원 속에서 꼬마 푸르스트는 하룻밤을 자고 조개 모양의 마들렌느 빵을 먹었다. 거장 마르셀 푸르스트의 유년의 추억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한 콩브레 마을. 파리 남서쪽 90킬로 지점에 있는 외르-에-르아르(Eure-et-Loir) 지방의 일리에(Illiers) 시가 모태다. 이곳은 푸르스트의 보물 창고이자 뮤즈였다. 푸르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간의 소실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시간 낭비를 중지하고 음미할 수 있는 삶을 시작할 것인가. 이 해답을 찾고자 그는 시간 여행을 떠났다. 그가 찾은 곳은 일리에. 그리곤 1913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1권을 발행했다. 그의 처녀작이었다. 푸르스트는 이 책으로 프랑스의 셰익스피어란 찬사를 받았고, 스탕달에 버금가는 스타로 등극했다. 한 오스트리아 공작부인은 푸르스트에게 결혼을 신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푸르스트는 독신으로 지냈고 스스로를 벼룩으로 자신의 저술을 소화 불가능한 누가(nougat)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 있다. 그러한 지식을 자기 것으로 하지 않는 한 다른 모든 지식은 오히려 유해하다.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자신의 제자들에게 어떤 학문이든 그것을 올바르게 배우기 위해서는 일정한 한도를 지키고 그것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학문에 너무 열중하면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도덕적 자기완성에 써야 할 시간과 정력을 잃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식을 수집하고 다니는 학자는 불쌍한 사람이다. 끝없는 지식욕에 쫓겨 스스로를 높이는 철학자들 또한 불쌍한 사람이다. 이 나쁜 부자들은, 옆에서 나자로가 계속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을 때, 날마다 그 지적 유희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들은 모두 헛된 지식으로 배가 터질 지경이 되어 있다. 그들의 쓸모없는 지식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적 완성이나 사회의 향상과 진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페늘롱) 경험적 과학이 그 자체만을 위해 연구되고, 지도원리로써의 철학적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마치 눈이 없는 얼굴과 같다. 그것은 중간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런 세세한 연구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최고의 자질이 결여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학문이다.
쓸 때는 ‘국민’이지만 읽을 때는 ‘궁민’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모릅니다. 국민(國民)을 가르치는 학교에 궁민(窮民)들만 가득했습니다. 학생들은 궁민인데 학교는 국민이어서, 우리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는 국민과 궁민을 따로 분류하였습니다.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조사를 맡은 담임선생이 질문을 하면 해당하는 아이들은 손을 들어야 했습니다. 담임선생의 질문은 늘 “고아원에 사는 사람 손들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첫 질문에 손을 들던 몇몇 아이들의 하얀 눈동자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가정환경조사 항목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최종학력도 들어있었습니다. 담임선생이 대졸부터 국졸까지 차례로 읊으면, 해당하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나는 고졸과 중졸에서 한 번씩 손을 들어야 했는데 이유 없이 주눅이 들었습니다. 한 번 들기 시작한 주눅은 질문이 거듭될수록 깊어졌습니다. 담임선생은, 부모의 직업과 사는 동네와 집의 소유와 방의 개수와 승용차와 전화와 TV와 냉장고와 세탁기의 유무에 대해 차례로 물었습니다. 나는, 회사원과 두 칸짜리 셋방살이 말고는 손을 들 기회가 없었습니다. 라디오는 있었지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쓸 때는 ‘
자신의 내적인 사명을 수행하며 영혼을 위해 사는 가장 효과적인 삶은 사회생활의 개선에 봉사하는 길이다. 사람들을, 그 내적 생활에서 해방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외적 생활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다. (지르첸) 공상가는 종종 정확하게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그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앞당기려고 한다. 자연에 있어서도 천년의 세월이 필요한 일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성취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레싱) 너희는 몇몇 폭군이라고 파멸시켰지만, 곧 전보다 훨씬 더 악랄한 폭군이 나타났다. 너희는 노예제도를 타도했으나, 곧 새로운 피의 제도, 자유라는 이름 하에 욕망성취라는 더욱 새로운 노예제도가 너희에게 주어졌다. 지배자가 누가 되느냐에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만이 지배자로 있을 때 자유가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정의와 인애가 지배하는 나라이며, 그 기초는 그리스도가 정한 계율에 의한 신앙, 즉 인애와 정의의 법칙에 대한 신앙이다. (라마에) 만일 남에게 선을 가르칠 수 있는데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가장 소중한 형제를 잃게 될 것이다. (중국 격언) 자신의 영혼을 더욱 개선하고 완성시키면 평생의 일에 힘써라
이런 식이라면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우리사회의 남녀 사이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나라의 남녀간, 특히 젊은 남녀간의 사이가 현재, 너무 안 좋다. 사랑 따위는 언감생심이고 서로를 적대하고 증오하기까지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서로를 멀리하고, 만나지 않으며. 연애도 별로이고, 결혼은 거의 계획이 없어서, 출산까지는 아예 생각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이런 식이라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 국가의 생산력은 급속하게 떨어질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잘못된 정보, 잘못된 세계관에 의해 현혹되고 길들여진 20대 남자들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들은 여성가족부, 비동의 간음죄나 비동의 강간죄 등이 남성역차별을 가져온다는 소아병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20대 여성들도 군대를 갔다 와야 하거나 그에 준하는 공적 업무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걸 위해서는 지금의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후보가 문제가 많고 아내와 그녀의 가족에 온갖 비리가 점철돼 있어도 남녀 역차별만 해결된다면 그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우편향돼있고 일베화 된 지 오랜데 신문기자들 중 상당수가 2030 남자들이라는 점도 주목해서 봐야
존 매케인(John S. McCain, 1936~2018) 상원의원은 미국인들이 가장 신뢰했던 정치인이다. 그는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 중 추락하는 바람에 체포되어 5년 반의 포로생활을 겪었다. 포로생활 중 그는 온갖 고문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한 번도 굴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아버진 잭 매케인이 태평양 사령관에 등극하자 베트남에서 홍보용으로 그의 석방을 주선했지만 먼저 포로가 된 순서대로 나가야 한다면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증을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매케인을 만든 것은 아버지의 품격이었다. 4성 장군으로 해군 제독인 아버지는 이미 3번의 참전 경험이 있는 미국 전쟁영웅이었다. 그는 태평양 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종식할 책임하에 북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시에 대한 대규모의 폭격을 계획하고 있었다. 무차별적인 폭탄투하는 도시 전체를 무덤으로 만들 수 있었고 아들 매케인 소령은 하노이시에 포로로 억류 중이었다. 매일 밤 아들이 있는 쪽을 향해 무릎 꿇고 기도하며 무사 귀환을 기다리던 아버지였지만 책임을 다하라는 양심의 명령을 택했다. 폭탄을 싣고 가는 B-52를 바라다보면서 말없이 눈물을 훔쳤을 아버지를 매케인은 기억했다. “
임헌영과 갈리아의 수탉들 “제 인생의 스승들은 결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한 시대의 황혼에야 날개를 펼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둠을 뚫고 새로운 시대를 일깨워주는 새벽의 전령사인 갈리아의 수탉들이었습니다.”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길사/2021)>의 머리말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온 임헌영과 유성호 교수와의 대담집으로 연수(年數) 팔십 고개를 넘어서는 그의 전투적이자 혁명적인 삶의 전기(傳記)다. 제목 그대로 문학과 역사가 서로 엉키면서 직조(織造)해온 세월에 담긴 사연과 인연들은 ‘문학평론가’라는 직업군 분류로만 설명할 수 없는 실천적 지식인 “임헌영”의 치열한 인생궤적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갈리아의 수탉’들과 함께 해온, 아니 그 자신이 바로 그 ‘갈리아의 수탉’이 된 현실의 한 복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우리는 임헌형이 이 시대 또 하나의 스승이 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 아테나가 로마의 풍토와 만나 새롭게 태어난 지혜의 여신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바로 그 미네르바와 함께 다니는 이른바 신조(神鳥)이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숲속을 날아 자신의 시간을 시작하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라떼’를 말하는 것처럼 꼰대는 없다고 한다. 그래, 서울에 살았지만 나 때는 자가용도 별로 없었고, 신촌에서 광화문 갈 때 문안 간다고 했었어. 바나나? 수입산으로 특별한 날 겨우 사먹었지. 음식 버리면 야단맞았고, 전기나 수돗물 절약은 당연했어... 이런 말하면 이제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는데 ‘역시 늙으면’이란 소리를 듣는다.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눈치 없는 꼰대로서 퇴출 대상이다. 맞아, 이번 정부에 들어서서 각종 경제 지표로 선진국이 되어 국제사회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선진국의 의미는 무엇일까? 배부르면 선진국? 여전히 지구 어딘 가엔 먹을 것이 없고 변변한 주거 시설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선진사회에서 풍요롭게 사는 이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다. 그들은 절약하려 해도 절약할 거리도 없다. 특정인이 선량한 사람인지는 그가 능력을 가졌을 때 나타난다. 권력과 재산을 가졌을 때, 주변에 갑질하지 않고 나누며 함께 하는 이가 진정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능력이 없는 이들 중엔 선량으로 포장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이들은 재산이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자신이 과거 겪었던 갑질이나 돈 자랑을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