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은 세상 모든 만물을 주관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창조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을 주었다. 꽃이라 이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불과했으나 알맞게 불러 줌으로써 무엇이 된다. 흔들리며 피는 꽃도 있고 이름을 불러줌으로 꽃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생물학적 성(性)과 사회학적 성(性)으로 구분하면 젠더(gender), 섹스(sex)가 된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불러내고 응답함으로써 완전한 무엇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균형이 깨지면 갈등이 생기고 권력과 힘에 의한 폭력이 생기는 것이다. 여성은 꽃 인가?라고 물으면 남북한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말할 것이다. 남쪽사람은 ‘빵과 장미’ 아니면 다른 무엇일 것이다. 북쪽출신인 나는 노랫말 가사를 생각한다.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남쪽남자는 ‘너 나와 친구할래, 아니면 남자할래’고 물음으로써 자신이 남자임을 확인시킨다. 북쪽남자는 무엇이라고 할까. ‘너 나와 동무할래 아니면 오빠할래’고 하여 자신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근접시킨다. 연애하는 과정에도 오빠가 아니라 동무라고 하기도 한다. 동지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고 동무는 친구이다. 동지라는 말보다 동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동무에서 연인
‘비호감선거’라는 말 자주 듣는다. 영웅부재시대라는 말 떠올린다. 아버지 집을 누가 비싸게 사줬다네. 법카로 초밥 수십 인분을 한 번에 사먹었다네. 살아있는 소 가죽 벗기는 푸닥거리로 뭘 노렸지? 대장동 직접 사인한 서류가 왕창 나왔대. 검사 사위 덕 듬뿍 봤다네. 아들 퇴원에 관용차 썼다더군. 주식시세 조작해 돈 벌었다네... 이런 일들, 전에는 구렁이 담 넘듯, 흘러갔다. 모르는 척해야 현명하다 했다. 심지어 ‘순리(順理)’라고도 했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은 매우 정교해서 아직도 ‘파워 만땅’이라고들 한다. 민초(民草)들은 뭐지, 세금만 내는 루저? 개돼지? 지금도? 전에 영웅 또는 천사를 뽑았다면, 착각이다. 박정희 전두환 등을 뽑았던 과거 선거는 ‘호감선거’였나? 백성 입 닫아걸고 언론에는 아무 얘기도 못하게 하면, 그는 영웅이었다. 어릴 적, 내게 대통령 박정희는 천사였고, 잘생겼고, 정의 그 자체였다. 좀 지나 ‘사나이’ 전두환 일대기는 주먹 불끈 쥐게 하는 영웅담이었다. 이순신 장군보다 위대했다. 착각을 강요했다. 심지어 충무공과 지들을 겹쳐보이게 하는 시도도 벌였다. 장난도 심했지. 비밀 없는 세상, 영웅이 되거나 만드는 ‘작전’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평등의 큰 뜻을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기대어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하여 이를 널리 밝히며, 민족의 오래도록 변함없을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에 따른 세계 개조의 기회에 따라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함이니 이것이 하늘의 뜻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가 함께 생존하고 같이 살아 나갈 권리의 정당한 움직임이니 하늘 아래 어떠한 것이든 이를 막거나 억누르지 못할 것이니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비롯하여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몇 천 년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겪은 지 지금까지 10년이 지났으니 우리 생존권을 빼앗긴 것이 무릇 몇이며, 정신적 발전에 장애가 됨이 무릇 몇이며, 민족적 존엄이 훼손된 것이 무릇 몇이며, 새로움과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흐름에 기여하고 도움을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무릇 몇인가. 아아 슬프도다. 오랜 억울을 드러내려 하면, 지금의 고통에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180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황제로 즉위한다. 유럽정복 전쟁의 연속적인 승리는 그를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전쟁에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확산을 위한 전쟁의 명분 또한 작동했다. 일종의 “해방전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의 전신인 프러시아는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시민들의 정치기본권인 권리조항과 함께 봉건적 의무의 해체, 그리고 국가공직이 능력있는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의 구질서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위협받게 되었고 이들은 결속했으나 패배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에 의한 독일의 패배는 따라서 지배계급의 패배였지 독일 민중의 패배는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군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 그 위세가 달라진 민중으로 구성된 군대였으니 전쟁은 영토 전쟁을 넘어 사상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군대는 시민 혁명군의 국제화를 이뤄내고 있었던 셈이다. 루카치가 그의 『역사소설』에서 이 시기를 “대중이 역사를 집단적으로 체험한 시기”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옳다. 역사소설의 대중적 수용이 가능해진 조건이 만들어진 것
설마설마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푸틴이 전쟁을 결정하자말자 우크라이나 전역이 미사일공격으로 불타올랐고 러시아의 기갑부대는 국경을 돌파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쟁마저 게임이나 영화처럼 접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뉴스는 폭발하는 화염과 번쩍이는 섬광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바쁘다. 전황은 그래픽까지 동원해 스포츠방송처럼 중계된다. 그러나 현실의 전쟁은 지하철에 피신한채 두려움에 떨고있는 시민들과 거리를 가득메운 피난차량 행렬에서 보이듯이 참혹한 실사판 지옥이다. 나는 이런 우크라이나전쟁 뉴스를 보면서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젤렌스키, 또 다른 사람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이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킨 푸틴보다 젤렌스키를 떠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또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침공을 결정한 푸틴과 러시아가 비난받음은 지당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한사코 반대하던 나토의 동진에 우크라이나가 디딤돌을 놓아주려할 때, 자국의 안보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한 푸틴에 반해 코메디언 출신 젤렌스키의 정치는 실패한 것이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
인류가 진보하는 것은 바로 종교적 신앙이 진보하기 때문이다. 신앙이 진보한다는 것은 새로운 종교적 진리를 발견하거나, 인간의 세계와 신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탐구하는(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이해와 결부된 모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는 일이다. 새로운 종교적 진리라는 것은 없다. 유사 이래 모든 현자의 세계 및 신에 대한 관계는, 오늘날의 것과 완전히 같다. 종교가 진보하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미 발견되고 표현된 것을 정화하는 데 있다. 신앙이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 가장 뛰어난 선각자들에 의해 도달된, 인생에 대한 가장 높은 이해의 지표이며, 그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도 언젠가 틀림없이 불가항력으로 그것에 접근해가게 된다. 진정한 진보, 즉 종교적 진보와 기술적, 과학적, 예술적 진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기술적, 과학적, 예술적 업적은 현대에서 볼 수 있듯 종교적 퇴보 속에서도 매우 위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을 탐구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온갖 미신과의 싸움과 종교적 의식의 해명, 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 진보의 투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권력의…
‘맹지’란 지적도상 도로와 접하고 있지 않은 땅을 말한다. 개발 가치가 작아서 매우 저렴하다. 지도를 보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육로가 막힌 맹지이다. 다행히 3면이 바다인 덕분에 해상교통로는 뚫려 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는 이 해상교통로를 활용하여 외부 세계와 교류함으로써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오늘날 이 땅의 가치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 안에 들어갈 정도로 커졌다. 언젠가부터 한반도가 중심이 된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 새로운 시각을 강조하는 것이 유행이다. 넓은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시각적 이미지는 북쪽으로 막혀있는 지리적 답답함에서 벗어나 웅비의 나래를 펴는 즐거움을 준다. 요즈음 거꾸로 지도를 다시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불안하다. 오른편은 중국에 막혀있다. 위와 왼편은 일본 열도에 막혀있다. 시원하게 뚫린 넓은 바다는 어디로 가고 갑자기 꽉 막힌 ‘맹해’만 보이는가. 중국은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을 풀지 않고 있고, 일본과는 과거사 재판 문제로 외교적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에 대한 현 정부의 외교가 너무 저자세라고 비판한다. 일본과의 문제는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마지막 추위가 매섭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페티카, 그는 함경도에서 태어난 노비의 아들이었다. 아홉 살 나던 해 가족을 따라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령 연해주로 이주한 그는 러시아 초등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고려인이었다. 온 가족이 나무를 캐내고 돌을 주워내며 밭을 일구었지만, 세끼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그가 가출한 것은 열한 살 때였다.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세계를 구경하고 싶었던 그는 무작정 연해주 최남단의 항구도시 포시에트로 갔다. 하지만 어린 그를 받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굶주린 채 지쳐 쓰러진 그를 구해준 사람은 러시아인 선장 표트르 세묘뇨비치였다. 페티카는 표트르 세묘뇨비치 선장을 따라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의 흐름과 물정을 익혔다. 표트르 세묘뇨비치의 부인은 배에서 내린 그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학교에 보내주었다. 러시아 정교회에 입교한 그는 표트르 세묘뇨비치 부부의 양자가 되어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에 귀화한 그의 정식 이름은 초이 표트르 세묘뇨비치였다. 19세기 말 연해주에 이주한 조선인 중에 최초로, 유일하게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는 사업가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내에게서 회식이 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딸은 야간근무를 하는 날입니다. 냉장고를 뒤적이다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무얼 살까, 한 끼니를 해결하는 데도 선택이 필요합니다. 재래시장 반찬가게에서 고사리와 도라지와 숙주나물을 샀습니다. 까만 비닐봉지에 세 가지 나물을 담고 9000원을 계산하는 순간에도 저녁메뉴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고추장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마트에 들렀습니다. 태양초 고추장(1.8kg)과 다담 된장찌개양념(530g), 마파두부 양념소스(130g)와 꽁치통조림을 계산대에 올리고 2만 6660원을 지불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막혔습니다. 빨갛고 파란 신호등 색깔에 따라 차와 사람이 사거리를 가로지릅니다. 내가 선 횡단보도 신호등 색깔은 멈춤입니다. 맞은편 신호등에 걸린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나부낄 때마다 얼굴 앞에 새겨진 숫자가 비상등처럼 가쁘게 펄럭입니다. 신호등이 바뀌고 보행자 신호등 밑에 숫자가 깜빡거립니다. 한 번 깜빡거릴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듭니다.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 때문일까요. 줄어드는 숫자가 마치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의 카운트다운 같습니다. D-15, D-14
투박한 남프랑스 사투리에 겁 많고 소심했던 폴 세잔(Paul Cézanne). 놀랍게도 큐비즘(입체파)의 거장이자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됐다. 이런 세잔의 그림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은 예쁜 사과였다. 왜 그랬을까. 세잔에게 사과는 우정과 아량, 인간애의 징표였다. '사과바구니'와 '7개 사과의 정물'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세잔의 사과가 이처럼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다. 19세기 중반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부르봉(Bourbon) 중학교. “파리에서 한 학생이 전학을 왔다. 그 학생은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이를 본 한 학생이 그 전학생을 도와줬다. 그 전학생은 어느 날 사과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바구니를 선물 받은 학생은 그 후로 계속 사과가 있는 정물만 그렸다.” 사과를 준 학생은 훗날 프랑스 대문호가 된 에밀 졸라(Emile Zola)이고 사과를 받은 학생은 세잔이다. 이 둘이 주고받은 학창시절의 우정. 이 추억이 세잔 그림의 주요 모티브였다. 세잔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생트-빅트아르(Sainte-Victoire) 산이다. 이 산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대장주다. 하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