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하얀색으로 덮어. 끝’ 인생 첫 집을 장만해 들떠있는 친구의 인테리어 조언 요구에 대한 나의 답이다. "병실이냐? 하얀색으로 도배하게? 요즘 병실도 '꽃가라‘로 예쁘게 하더만!" 내 말을 질투(?)로 받는 친구에게 진의를 전하기 위해 오래전 경험담을 풀었다. 10년 전, 뉴질랜드 남섬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2주간 현지살이를 한 적이 있다. 열다섯 평 정도 되는 작은 연립주택은 렌트 전용이라 소파, 침대, 옷장, 오븐이 다였다. 도착 첫날, 저녁을 해먹기 위해 세컨핸드 샵(우리로 치면 중고가게)에서 식기를 사오면서 생경하고 불안한 기분에 휩싸였다. ‘2주간이지만 그래도 먹고 살 집인데 뭔가 더 사고 들여야 하지 않나’ 같은 강박적 생각들이 올라온 것이다. 2주가 지난 후의 깨달음은 내 반평생에 내려친 불가의 죽비였다. ‘아무것도 없어도 아무렇지 않구나!’ 내 아파트가 떠올랐다. 방 4개는 물론, 현관부터 늘어선 생활용품, 장식품, 언제 쓸지 몰라 일단 쟁여놓은 물건들...... 모두 필수품이라고 생각해 수 차례의 이사 동안 끌고 다녔던 것이 다 무엇이었나. 매일이 산만하고 인생이 복잡했던 게 혹 그 적재물들 때문 아니었을까. 뉴질랜드 집의 벽
-문맹률 80프로의 사회와 군부 쿠데타 옹호론 광주학살로 권력을 움켜쥐고 대통령까지 한 어느 인물이 세상을 뜨자 난데없이 ‘국장(國葬)의 예’를 받았다. 시민사회는 애도의 개인적 차원이야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런 결정은 ‘촛불정부의 자기배반’이라고 비판했고 철회를 요구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는 처사였고 두고두고 곤경에 처할 역사적 평가의 논란을 자초했으며 정당화하기 어려운 흠결로 남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 국장의 자리에서 그의 치하에 국무총리를 지냈던 인사가 다음의 말을 추모사로 대신했다. 그는 정치학자 출신이기도 하다. “(정규육사 1기생들에게) 한국 정치는 국방의식이 전혀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되었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통치기능에 참여하는 계기였다. 이들은 국민의 문맹률이 거의 80%에 해당하던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 문명을 경험하고 한국에 접목시킨 엘리트들이었다.” 문맹률 80 프로의 무지한 한국사회에서 가장 선두에 선 엘리트 집단의 불가피한 통치행위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과 군사 쿠데타는 역사적 합리성을 획득하고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결단한 위대한 정치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임은 절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 공사로 있던 1787년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많은 신문업계 종사자들의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거기서 제퍼슨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신문지’가 아니라 ‘국민 의견’ 소통의 창구로서의 미디어다. 그가 대통령 시절 신문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이었던 것은 일관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시 신문들이 ‘여론 통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제퍼슨이 오늘날 미디어를 보면 어떤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정부 없는 신문’의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2021년 대한민국 최대의 화제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한국인이 한국에서 제작했지만 한국과는 별 관계가 없다. 넷플릭스의 ‘하청’을 받은 한국인 제작자가 제작비를 받고 만들어 ‘납품’한 것이다. 한국정부가 이 넷플릭스에 드라마의 수익이나 저작권에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 ‘오징어’가 보여주는 것도 국경과 국가의 경계가 사라진 신자유주의 시대의 권력(VIP)과 승자독식의 비정함이다. 근대 신문은 전제군주제 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왕권을 견제하고 사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 자체를 통해 자신의 인간적인 가치도 인식한다. 황제가 성자에게 물었다. “너는 나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느냐?” 성자가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신을 잊고 있을 때.” 이웃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똑같이 느낄 때, 우리는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주세페 마치니) 장애자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아미엘) 어떤 사람을 악인이라거나 바보라거나 더러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한번 경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타인에 대한 경멸의 감정에 제동을 걸 수 없게 된다. 인간 그대여, 자신의 가치를 알라. 지금은 그럴 때이다. 우리는 전혀 잘못 태어난 존재가 아닌데, 달아나 겁을 먹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다. 의연하게 고개를 들어라. 나의 생명은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을 살리라고 주어진 것이다. 나는 어디서든 진실을, 완전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주창한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나의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에머슨) 개인의 자유,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개인의 자유, 오직 개인의 자유 위에서만 민중
“우리나라는 제헌헌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주권주의,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등을 국가의 근본이념 및 기본원리로 하는 헌법질서를 수립한 이래 여러 차례에 걸친 헌법개정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위 헌법질서를 그대로 유지하여 오고 있는 터이므로,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폭력으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우리나라의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따라서 그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5·18 내란 행위자들이 1980. 5. 17. 24:00을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인류는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쉬지 않고, 사랑에 의한 합일에 바탕을 둔 신의 나라의 건설에 다가가고 있다. 개개인이든 인류 전체이든, 결코 현재의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성장의 가능성은 바로 신에게 있고 무한한 것이므로), 끊임없이 껍질을 벗고 변화하면서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옮겨가야 한다. 모든 상태는 그것에 앞서 있었던 상태의 결과이다. 그 성장은 씨앗이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쉬지 않고 계속되는데, 어느 누구도 그 끊임없이 생성 발전하는 인과율의 사슬을 끊을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개인이나 전 인류가 운명적으로 탈피와 변신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 변신은 역경과 고뇌 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위대성을 몸에 걸치기 전에, 빛을 향하기 전에, 어둠 속을 걸으며 박해를 견디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육체를 내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 강하고 더욱 완전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예수가 말씀을 통해, 또 자신의 실천을 통해 가르쳐준 것이다. 이리하여 18세기가 지난 오늘날, 하나의 발전 단계를 끝낸 인류는 다시 서둘러 변신을 모색
한의원 근처엔 공사현장이 많다. 아파트 재건축과 함께 낡고 오래된 집들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끊이지 않는다. 가끔 지나다니던 거리에서 한번 요란하게 집을 부수는걸 한번 보고 그다음에 지날 때면 건물이 아이들이 블록으로 만드는 건물마냥 착착 올라가 있곤 한다. 그 변화를 보는 재미에 산책을 할 때면 공사하는 현장들을 살핀다. 어느 아침 산책길에 본 한 공사 현장도 한창 집을 부수고 있을 때 한 번 보았는데 다시 보니 깨끗한 땅에 어느새 시멘트 바닥이 생겼다. 맨 흙이 드러나 있는 땅에 시멘트 바닥만 깔려있는 그 공터를 둘러싸고 접근금지를 위한 울타리가 있었는데 그 옆에 있는 ‘양생중’ 이라는 푯말이 눈에 띄었다. 공사판에 양생이란 말을 썼네, 무슨 뜻일까, 궁금해져서 한의원에 와서 검색을 해보았다. 어느 포털사이트의 지식백과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뜻이 ‘콘크리트 치기가 끝난 다음 온도, 하중, 충격, 오손, 파손 등의 유해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충분히 보호 관리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한다. 큰 맥락은 사람에게 쓰이는 단어와 유사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양생은 “1. 병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건강 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 2. 섭생 섭양…
"국가 지도자들이 수십 년간 쓸데없는 소리만 해왔다. 이렇게... blah blah blah. blah blah blah. 오늘의 진실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느 정치평론가가 대한민국 현대사와 기후이슈를 묶어서 함께 비판한 것 같다. 아니다. 10월 31일 영국의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협약 당사국 회의를 앞두고 18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2003년생)의 가디언지 기고문의 일부다. 모두들 알다시피, 인류사회는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수준으로 지구온난화의 상한선을 정했다. 이게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다. 끝이다. 과학자들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폭우 폭염 산불 태풍 등의 연쇄적인 이상현상들은 종말론적 재앙을 경고하는 거라고 말한다. 노벨재단이 이 위대한 소녀에게 평화상을 주면 좋겠다. 금년까지 3회째 빗나갔다. 기후위기의 절박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거로 보인다. 금년 평화상 수상자는 필리핀계 미국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각각 두테르테와 푸틴에게 저항한 언론인이다. 나는 언론자유보다 기후위기가 백 배 더 긴급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가. 결코 깡패로
1년가량 남은 퇴직을 앞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화두가 몇 년간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근근이 부어놓은 연금은 퇴직 후 아내와 생계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늦게 본 아들딸은 아직 자립하지 못했다. 평생 시간만 나면 돈 안되는 일에 몰두하며 보낸터라 여유있는 노후는 언감생심, 마음 같아선 벌이를 계속하고 싶지만 늘그막에 정글로 뛰어든 선배들을 보니 버텨내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귀촌이었다. 애초 귀촌을 생각한 이유는 솔직히 말년에 도시빈민의 삶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도시에 머무르면 이런저런 복잡한 시절 인연들에 돈 나갈 일만 첩첩인데 알량한 수입으로 팍팍한 살림 허리펴기는 진작에 가망없는 일, 최소한 텃밭이라도 일궈 생계비라도 줄이면 버는거나 다름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얼마 전 함양에 텃밭을 마련해 올해부터 매주 하루 이틀씩 머무르며 칡덩굴이 뒤덮고 있는 묵정밭을 개간하고, 농막을 짓고 농사일을 배우느라 하루해가 어떻게 뜨고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태생이 도시에서 나고자란 탓에 농사일은 일자무식이다. 그래도 한 번씩 마주치는 동네분들이 살갑게 가르침을 주셔서 이제 잡초와 작물 구분은 웬만큼 할 수 있게 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는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이었고 5·18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한 군 수뇌부 중의 한 명이었다. 국민을 무력으로 진압한 대가는 차고 넘쳤다. 41대 내무부 장관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고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는 13대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삶은 전두환과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둘은 육사 11기 동기였고 같은 방을 썼던 룸메이트였으며 쿠데타를 모의하고 실행했다. 전두환은 12대 대통령을 마치면서 친구 노태우에게 대권을 물려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전두환은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를 원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5공 청산’의 국민적 요구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전두환은 강원도에 있는 백담사로 향했고, 노태우는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 전두환의 백담사 생활은 가끔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중계되었다. 나도 승복을 입은 전두환과 이순자의 모습을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전두환은 ‘세상만사를 통달하고’ 산에 의탁한 도인(道人)처럼 굴었는데 젊었던 내가 보기에도 거만하기가 짝이 없었다. ‘보통사람’을 자처하던 노태우와,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로 책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