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부잣집 애’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열 살 넘으면서 헤세의 싯다르타, 앙드레 지드의 돌아온 탕아(아! 내 인생 단편) 속 주인공에 빠져 밤을 태우던 조숙한 문학소녀는 ‘그림자 없는 인간은 깊이도 없을 것’이라 단정했다. 스무 살 넘어서도 어둠에 집착, 연애도 결손가정 출신이나 감옥 들락거리는 운동권 사내들과 했고 단골 카페도 대로변 햇빛 쏟아지는 공간이 아닌 곰팡이 냄새 피는 지하공간이었다. 청춘의 끝자락에 월드뮤직을 만나 음악으로 세계 일주를 하던 중에도 미국음악은 관심 밖이었다. 원주민 땅 따먹고 세워진 이백여 년 미국사가 낳은 음악들은 ‘오랜 역사 속 민중의 희노애락에 오욕이 발효돼 나온 월드뮤직의 본령’과 멀 것이라 예단했다.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즐기던 팝송 가사들이 온통 러브에 울고 웃는 내용이었던 터라 유치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대학을 다녀 반미감정도 있었다. 핑크 마티니를 늦게 만난 이유들이다. 핑크 마티니 음악이 좋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2000년 넘어서였는데 미국음악이라 패스. 그룹 이름이 핑크 마티니가 뭐야? 웬 칵테일 이름? 아마 신시사이저 웽웽 울리고 드럼 때려 부수는 정신없는 팝그룹이겠지..
만약 당신이 인식론, 정신질환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야구심판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어디에 속할까? 심판들은 다음의 다섯 종류가 있다. 그저 퀴즈이니 편한 마음으로 임해 보길 바란다. 1) 볼이 있고 스트라이크가 있고,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판정한다. 2) 볼이 있고 스트라이크가 있고, 나는 그것을 내가 본대로 판정한다. 3) 볼도 스트라이크도, 내가 판정할 때만 있다, 4) 볼이 있고 스트라이크가 있고, 내가 사용하는 대로 나는 그것들을 판정한다. 5) 볼도 스트라이크도 선언하지 않겠다. 애초에 불공평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답은 다음과 같다. 1)의 심판은 이는 강한 실재론자로서 정신질환은 추상적 실체로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2)의 심판은 유명론자로서 정신질환은 존재하지만 진단이 그것들을 정확히 분류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3)의 심판은 구성론자로 정신질환은 구조물과 같아서 그것을 나타내는 사람들과 동떨어져서 불확실한 실체를 가진다. 4)의 심판은 실용주의자로 정신질환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므로 우리는 최선의 그리고 최소한의 위해를 목적으로 진단을 사용한다. 5)의 심판은 사스주의자이다. 정신질환은 사회 통제의 수단이고 그것에
끝없다 끝없다 하며 하늘 끝으로 날아가는 민들레꽃 홀씨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보오얀 양산 남긴 자리는 내년에도 제 올 땅이라고 심지 박아놓고 강을 건너는 하얀 나비 그 막막한 아름다움으로 한 철을 보내고 나면 나도 꽃을 잃어버린 나무들에게 괜찮아 괜찮아, 일찍 깨달은 스승처럼 말할 수 있으리니 올 봄은 이 깨달음 하나로도 밥상 앞에 앉는 일 송구하지 않아도 되리니 ▶약력 ▶경남 거창 출생. ▶197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청산행』, 『유리의 나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등 다수. ▶김수영문학상 등 수상.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 ▶여향예원, 시 가꾸는 마을 운영.
전쟁과 전쟁 준비가 빚어내는 모든 불행은, 전쟁을 변호하기 위해 제시되는 온갖 이유에 대해 너무 클 뿐만 아니라, 그 이유라는 것이 대부분 논의할 가치도 없을 만큼 하찮은 것이고, 또 전쟁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여러 문명국들 사이에 아직도 전쟁이 필요한 것인가 하고, 거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미’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부터 그런 것은 한 번도 필요한 적이 없었다고. 이따끔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언제나 인류의 올바른 역사적 발달을 저해하고 정의를 파괴하며 그 진보를 방해해 왔다. 대중의 희생 위에서 소수자의 권력욕, 명예욕, 물욕, 대중의 맹신, 소수자에 의해 날조되고 유지되고 있는 각종 편견, 이런 것들이 전쟁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가스통 모흐) 전쟁만큼 사람들의 행동에서 외부로부터의 조종의 힘, 또는 이성이 아닌 사람들의 소문에 의해 좌우된 결과가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없다. 몇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것이 어리석고 추하고 해롭고 위험하며 파괴적이고 고통스럽고 사악하고 아무런 필요도 없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기꺼이 자랑으로 여기며 실행하고, 그것이 일어나서는
올해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등락은 센세이셔널하다. 봄에 8000만 원이 넘었던 비트코인은 현재 반 이하로 떨어져 3800만 원대(6월 22일 현재)로 떨어졌다. 친환경 전기차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비트코인 가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트코인 채굴에 화석연료 사용이 많다는 이유로 원래 계획을 취소하였다. 가상화폐 채굴을 위한 전력 소비로 탄소배출이 증가함으로 지구의 기후 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도지 코인이 에너지 소모가 적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도지 코인을 띄우기도 했었다. 도지 코인은 채굴 알고리즘이 비트코인 대비 더 간단하여 빠른 속도로 가상화폐(복제 불가능 숫자의 나열)를 만들어 낸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전력 소비가 많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그 전력이 화석연료의 연소로부터 온다고 어떻게 특정할 수 있었을까? 어떤 전력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만들어지기도 하는 데 말이다. 게다가 도지 코인이 좀 더 빨리 가상화폐 채굴을 한다고 하더라도 발행량이 늘면 전력 소모도 늘어나는데 도지 코인이 친환경이라는 근거는 억지이기도 하다. 어쨌든…
1. 한국에서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언론사는 어디일까. 조선일보다. 콘텐츠가 풍부하고 보도가 균형 잡혔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구제불능의 극우매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안티조선' 운동이 그러한 시각의 상징이었다. 이 신문이 대형 사고를 쳤다. ‘성매매 관련 기사’를 쓰면서 조국 교수와 딸의 삽화를 함께 내보낸 것이다. 뉴스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참담함을 토로했다. 하물며 이런 모욕을 당한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자칭 ‘1등 신문’이 공개적 인격살인을 저지른 게다. 검찰개혁 국면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조국과 그 가족에 가해진 보수 언론의 광기어린 공격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집요했다. 그의 법무부 장관 임용설이 제기된 지 3개월 만에 “조국”을 키워드로 하는 온·오프 보도가 100만회를 넘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허위, 과장, 왜곡이 세상에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번의 조선일보 보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수준이다. 인간성과 가족의 마음에 대한 난도질이기 때문이다. 보도가 나간 지 두 시간 반 만에 해당 신문이 그림을 바꾸고 사과를 내놓기
- 동아시아 문명권의 충격 우리에게 19세기“근대의 충격”은 동아시아 문명권 전체의 진로설정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시기 서구는 단연 우리보다 훨씬 앞선 문명체제로 받아들여졌다. 가령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는 병자호란 이후 북벌(北伐)의 대상으로 삼아 오랑캐로 알고 있는 청(淸)으로부터 배울 게 있다는 18세기 말엽의 각성이었다. “이십년을 힘써 중국을 배운 뒤에 이러쿵저러쿵 해도 늦지 않는다”라고 했던 박제가의 말은 동시대 박지원이 남긴 《열하일기》의 내용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지녔다. “중국 변방의 이런 시골조차 이리도 번성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라는 충격은 연암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한다. 물론 여기서 그 배움의 직접적인 내용은 청나라보다는 그곳에 융해되어있던 서구의 지식과 기술체계였다. 그러나 그런 논지는 개혁정치에 무관심했던 주자학이 지배하고 있던 현실에서 제대로 먹혀들리 만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뭔가 크게 사변(事變)적 사태가 일어나야 정신이 번쩍 드는 법이다. 동아시아는 서구의 습격을 강력하게 받게 된다. 마침내 청조(淸朝)의 소멸로 이어지는 아편전쟁(1840년)이나 일본 막부정권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던 에도 앞바다의 미국…
이성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은 언제나 일치한다. 스스로 깨달았다고 자만하는 자는, 한평생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도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죽는다. (동양 금언) 우리는 그 사람 속에 아직 잃어버리지 않고 남아 있는 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없고, 그 사람 속에 잃어버리지 않고 남아 있는 지혜를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더 현명하게 만들 수 없다. (칸트) 이성은 모든 사람들 속에 있어서 단 하나이다. 사람들의 교류는 이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단 하나인 이성의 요구에 따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더러움, 곧 공해문제만은 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러움이 무엇입니까! 세력 있고 잘사는 사람들이 남 생각은 아니하고 저만 잘살겠다고 욕심대로 한 결과로 나온 찌꺼기입니다. 찌거기는 자연 속에서는 저절로 분해되어 다음 차례의 생명의 자료가 될 수 있도록 돌아가는 법칙이 있으므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똥은 식물의 거름이 되고 동물이 뱉은 탄산가스는 식물의 동화작용에 섭취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인간이 그 생각하는 힘을 잘못 써서 자기의 쾌락만을 구하게 되면 자연의 질서를 깨뜨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 나는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늑대인 줄 알았다.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똘이장군’이라는 애니메이션 때문이었다. 1978년 시리즈로 제작된 이 만화는 우리 국민들의 반공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이것이 실제인 줄 알았다.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주입된 내 인식이 문제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2021년 한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며칠 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분은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시는데 학부모들의 민원 때문에 많이 속상해하고 계셨다. 민원의 내용은 이랬다. 다문화가정 학생이 많은 이 초등학교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서 비다문화가정 학생이 대규모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학교 측에서는 학교 소개를 위한 설명회를 비대면으로 실시하였고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이해를 잘한듯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들은 그렇지가 못했나 보다. 다문화가정 학생이 많은 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더 나아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하면서 학교는 민원 해결에 고심하고 있
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시 북한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였고 , 당 총비서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를 신설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제1비서의 위상에 대해 단순히 실무적 역할 수행에서 부터 후계를 염두에 둔 자리 신설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제1비서에 누가 임명되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조용원 당 비서 또는 동생인 김여정이 임명될 수 있으며, 아니면 10살 내외로 추정되는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되지 않은 아들을 위한 자리라는 전망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1년 12월 북한 최고 권좌에 오르면서 2016년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기 까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라고 하면서 자신의 직위를 ‘노동당 제1비서’로 한 적이 있다. 집권 초기에 선대 후광을 활용하는 의도가 작용해서 ‘1비서’ 직함을 사용하다가 자신의 권력이 안정화된 이후 ‘국무위원장’ 그리고 ‘당 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겠다. 금년 초 8차 당대회에서는 ‘당 위원장’ 대신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일반적인 ‘당 총비서’로 명칭을 변경한 바 있다. 이렇듯 김정은 자신이 사용한 ‘당 제1비서’라는 직함은 후계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