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抒情詩)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散文的)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 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 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 없는 축복을 쏟아 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시인소개 : 시인 수녀. 1945년 강원 양구 출생,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석사. 시집 <눈꽃 아가>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내 삶은 당신을 향해 흐르는 그리움입니다> <민들레 영토> 등 다수. 산문집 <마음의 풍경>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등 다수.
오래된 영화가 생각난다. ‘군에 입대한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는 그 아들에게 밥 한끼 해 줄 쌀이 없다. 어머니는 40여 년을 고이 길러온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쌀을 사온다. 흰 쌀밥이 차려진 밥상을 받은 아들은 어머니가 수건을 벗지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수건을 벗겨보는데…’ 1965년 개봉한 영화 ‘삭발의 모정’이다. 황정순과 김운하가 모자(母子)로 출연해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비슷한 이야기로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청구야담(靑邱野談)과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해서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본다. 삭발은 세속에서 벗어나 구도의 대열에 들어선 출가자 정신의 상징이고, 청정수행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법정 스님은 대학 3학년 때 출가를 결심한다. “홀어머니의 외아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무명초 같은 머리카락을 벗겨내니 먹장구름이 벗겨지듯 세상을 환히 보게 됐다”던 스님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법정 스님의 의자’의 내레이터를 맡은 배우 최불암 또한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자랐던 번민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밤
4월의 마지막 날은 잔인했다. 수원지역의 4월 강수로는 최고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새벽 3시 30분을 기해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이날 오후 10시까지 내린 비는 136.0㎜. 수원지역의 경우 4월 강수로는 최고 기록이다. 종전에는 1980년에 기록된 120㎜가 고작이었다. 비가 내린다기 보다는 쏟아 붇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이날 오전 9시 본보는 화성행궁에서 시작해 화성을 한바퀴 도는 ‘제7회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화성돌기’ 행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비였다. 새벽부터 시작된 폭우는 천지를 개벽이라도 하듯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채 무섭게 몰아쳤다. 행사를 준비해온 본보 직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수원시민들 조차도 ‘이게 왠 날벼락’ 이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행사를 마음대로 연기할 수도 그렇다고 강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강한 빗줄기는 처음이었다. 새벽5시 직원들이 화성행궁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비를 피할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번개를 조명삼아 빗줄기 속에서 화성행궁 광장에는 50동의 천막이 설치됐다. 이렇게 약속된 오전 9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행사를 준비해온 직원들은 입을
‘5월은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천국의 모형으로 주신 가정을 생각하는 달입니다. 사탄의 세력으로 인해 가정이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저희들 가운데 가정문제, 자녀문제로 인한 어려움, 경제적 염려 그리고 병마와 싸우며 고통중에 힘겨워하는 이들을 구원하소서. 괴로울 때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치유와 회복도 경험케 하시여 위로와 평안을 되찾게 도우소서’ 5월을 맞아 가정을 위한 어느 목사님의 절절한 기도문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항상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잊고 지낼 수 있는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그 감사함과 소중함, 고마운 마음, 사람의 마음을 한번쯤 생각해 본다. 1등을 했다거나 승진을 했다거나 상금을 탔다거나 우리 모두는 잘하고 있을 땐 요란하고 화려한 응원을 받고 싶지만 기분이 가라 앉거나 풀이 죽어 있을 땐 그냥 옆에 있어주는 응원,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응원, 그리고 가만히 안아주는 응원, 그런 조용한 응원을 원한다. 내 곁에 그런 사람 묵묵히 응원해주며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해주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골방에 들어가 울음을 삼키고 가까스로 몸을 추스릴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아 일으키
지난달 26일 민주당 이종걸(안양 만안) 의원이 귀농인 지원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이 법안이 ‘귀농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 사업을 실시해 귀농을 촉진하고 귀농인의 안정적인 농어촌 정착과 농어업 및 농어촌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무너져 가는 농촌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도시민 실업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노후에 전원생활을 꿈꾸는 세대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될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귀농인 지원법안이 발의된 것을 환영한다. 이 법안은 농림수산식품부장관과 시·도 지사가 5년마다 귀농인 지원종합계획과 지원계획을 을 수립·시행토록 했으며 귀농인지원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아울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귀농인을 위해 일자리 및 창업, 판로 및 유통, 주택구입, 농지·어장매입 등을 위한 지원을 하고 전문적인 농어업기술과 경영능력을 갖춘 귀농인을 우수귀농인으로 선정해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면 귀농인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귀농인의 안정적인 농어촌 정착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전국 귀농 가구, 귀촌자 수는 4천67가구 9천13
이름 앞에 ‘최초’라는 낱말이 많이 붙는 이름 석자도 흔치 않은 일이다. 수원이 낳은 여류화가 정월 나혜석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초 여류 서양화가다. 최초의 전업작가로 물적 토대를 구축한 선구자였다. 최초의 여성유화가요 판화작가다. 유화 개인전을 최초로 열었다. 근래에는 최초의 여성소설가로도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4월28일은 그의 탄생115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를 기리기 위한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가 그가 태어난 행궁동에서 펼쳐지고 있다. 나혜석거리도 조성돼 해마다 나혜석거리 축제도 열리고 있다. 전국 여성을 대상으로 나혜석미술대전도 열린다. 올해로 열다섯 번째다. 작품공모가 진행 중이다. 매회 좋은 작품이 대거 출품되고 있다. 그가 다녔던 매향중학교는 1회 졸업생인 나혜석의 화가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화성그리기 대회’를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하고 있다. 나혜석 바로알기 심포지엄도 열리는 등 나혜석 예술세계와 삶을 조명하기에 저마다 바쁘다. 이처럼 나혜석이란 이름이 차지하는 역사적 비중은 화려하고도 무겁다. 그런데 정작 나혜석이 남긴 그림작품 하나도 없는 수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수원미술협회가 ‘박수근 나혜석을 만나다’ 라는 주제로
봄 꽃이 한창이다. 살랑 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미용실로 향했다. 차례를 기다리는데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한 모녀가 들어선다. 내 옆에 앉은 그들은 오순도순 정담을 주고 받더니만 나중엔 무슨 일인지 딸에게 부탁을 한다. 네가 원하는 예쁜 옷을 두 벌이나 사줬으니 제발 방 좀 깨끗이 치우고 살라고…. 사정을 하는 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집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얼마 전 일이다. 친정엄마 생신이 3월이어서 대구에 다녀왔다. 며칠 간 집을 비워야 했기에 걱정이 돼 딸에게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보일러는 밤에만 켜고 아침에는 꼭 끌 것, 현관문은 잘 잠그고 일찍 귀가할 것 등…. 말은 친정엄마 생신 차려 드린다고 내려갔지만 생신상은 음식점에 예약했고 생일케이크는 제과점에서 사 들고 와 촛불 꽂고 축하노래를 불렀다. 이런 딸에게 친정엄마는 그저 내려와 준 것이 고마워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지시고 손수 지으신 따뜻한 밥을 먹이신다.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는 날엔 아직도 아삭하고 맛있는 김장김치며 찹쌀, 또 사위가 좋아한다고 집에서 만든 떡을 정성스레 싸주신다. 차 안이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 사랑을 받고 오면서 눈물이 났다. 저녁…
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동래정씨 동래군파 16대 종손인 정운석(98)옹과 그의 9남매가 종택(宗宅·경기도문화재자료 제95호)과 그 관련 대지 및 전답(1만8천176㎡)을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에 기증키로 하고 3일 오후 2시 종택에서 체결식을 가진다고 한다. 공시지가로 따져 35억 2천만 원, 시가로는 80억 원이 넘는다. 군포 수리산 동쪽 자락에 자리 잡은 종택의 역사는 조선 중기의 문신 정광보(1457~1524)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 작은 사랑채, 행랑채 등 5동 60칸이 남아 있다. 안채는 정조 때인 1783년, 사랑채는 고종 때인 1877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살림집의 전형적인 특징인 맞배지붕의 아름다운 외관을 갖췄다. 정운석 옹은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집과 농지의 소유권을 넘겨줬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남을 위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형제들은 6~7년 전부터 종택을 공적(公的) 공간으로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번 기증의 주역이기도 한 셋째 용수(63)씨가 넌지시 종손인 큰형과 둘째형에게 묻자 형들이 선뜻 동의한 것이다. 형제들은 소유권을 포기함으로써 종택을 영원히…
조현오 경찰청장이 ‘화살표 3색 신호등’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 중이다. 조 청장은 “우리나라는 보통 3~4개씩 도로에 차로가 많다. 운전자들은 우회전할 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며 “제대로 정착되면 이런 혼란을 걷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호체계 변경으로 인한 혼란과 예산낭비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홍보해 더 이상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다음 아고라 토론게시판을 비롯한 트위터 등 실시간 소통미디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그 실효성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굳이 돈을 들여 바꾸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이가 없네”, “누구에게 편리한 것인가”, “더 혼란스럽다” 등의 내용이다. 27일 경기지방경찰청의 ‘화살표 3색 신호등’ 시연회를 본 취재기자로서도 의문이 든다.. 차로별로 신호등을 제각각 설치하고, 좌회전 차로에서는 화살표 신호등을 설치한단다. 하지만 좌회전 2개 방향이 있는 교차로에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구상도 못한 상태며, 차로별로 제각각 설치하다보면 설치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차로가 많은 구간의 설치방안도 두리뭉실하다.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