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이면서 사학자인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이 타계한지 올해로 17년째가 된다. 그가 생존에 남긴 수필 가운데 ‘한 눈 없는 어머니’라는 작품이 있다. 이 글은 한 후배 젊은이가 찾아와 담소를 나누던 끝에 호주머니에서 돌아가신 어머님 사진을 꺼내더니 선생님이 잘 아시는 아무개 화가에게 부탁해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간청을 받고 나서 답장삼아 쓴 것이다. 젊은이의 부탁은 이런 것이었다. 어머니는 일찍이 한쪽 눈을 실명해 평생 동안 힘겹게 사셨다. 그래서 이번에 화가가 초상화를 그릴 때 두 눈을 다 완전하게 그려 주면 보수는 넉넉히 치루겠다는 것이다. 노산은 처음 돌아가신 어머님 사진을 내보이며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에 효심이 대단하구나 싶어 감동했는데 나중에 실명된 눈을 온전하게 그려 달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아무 말도 못했는데 그 답을 글로 옮긴 것이다. 글 내용은 이렇다. ‘그 즉석에서 나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나의 열리지 않던 입에서 분명히 듣고 간 것이 있을 것이오, 말없던 나의 입에서 듣고 간 것이 없소? 만일 없다면, 이제라도 한 마디 들어주오. 그러니 내 말을 듣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대의 품속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자세히 들
무거운 것은 다 내려놓고 가슴을 옥죄어 오는 부피만큼 먼지만한 것도 다 털어내고 고르게 평정하는 자연의 숨소리 느리게 느리게 돌려놓고 안으로 침잠하는 법을 익힌다. 세상의 인심 말하지 말 것이다. 속되다고 오열하지 말 것이다. 다 주고 또 주고 누구나 갈 때는 빈껍데기인 것을. 시인 소개 :1960년 경남 사천 출생, <문학마을>로 등단, 시집<불의 영가>외 다수, 경기문학인협회 사무국장, 한국미술협회 회원
우리나라의 국회가 개판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개판’이란 말을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정의하고 있다. 나는 ‘개판’이란 말이 어떤 새로운 판이 시작되기 직전의 혼란상을 가리키는 ‘개판 5분전’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인지, 사람의 행위와 구별되는 개들의 난잡한 행위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 국회의 모습을 떠올릴 때만은 개판이란 말의 의미를 ‘사람판’과 구별되는 ‘개판’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룩한 이후 국회가 품위있게 회의를 진행한 적이 과연 몇 번이었던가! 최근 몇 년간의 경우만 돌이켜보아도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들은 사학법 제개정 문제를 두고, 한미 FTA 비준문제를 두고, 미디어법 표결 문제를 두고 참으로 줄기차게 ‘짐승처럼’ 싸웠다. 사람이면서도 본회의장 단상에 뛰어오르고 발길질을 하면서, 물어뜯고 주먹질을
투철한 도덕성과 앞장서 실천하는 봉사의 자세, 이른바 지도자들의 으뜸덕목이다. 그러나 진정 좋은 세상은 지도자가 쓸데없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일 터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다 세상의 주인이 되고 제 몫을 해내는 세상이라면 굳이 지도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헛되이 품어보는 망상이기는 하지만 각자가 주인이 되어 올바르게 움직이고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굳이 앞장서 이끌어주는 지도자가 쓸데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의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역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 맞는 도덕적 봉사를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표개발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재미있는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수는 100점 만점에 26.48로 나타났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낮은 수치는 우리 사회의 고위층으로 인식되고 있는 정치인, 고위공무원, 대기업 CEO 등에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인 것이다. 반면 시민단체간부, 노동조합간부, 대학교수 등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제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우리 주변에 음주를 한 사람이 아무 거리낌 없이 운전대를 잡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음주를 한 경우 여지없이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든 음주운전을 택하든 이는 모두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음주운전은 아무 죄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되풀이 되는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 여건상 음주운전을 할때 마다 단속에 걸려 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된 사람이 재차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는 일도 거의 드물다. 무면허 상태에서도 사고를 내거나 음주단속에 걸리지 않는 한 무면허 운전은 우리사회에서 비일지배 하게 이뤄진다. 그래서 음주운전 행위는 강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음주운전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인명피해를 예방하고 또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음주운전 초범을 포함해 생계형 운전자를 사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적지 않은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사면 조치가 교통사고 증가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정보통신대학교 권영선, 한승헌, 남찬기 교수는 최근 발표한 ‘교통법규 위반자 사면정책 효과 분석’ 논
7월 22일 오전 9시 반부터 태양계의 우주쇼가 있었다. 달이 태양을 먹는 개기 일식이 61년 만에 일어난 것이다. 그 다음 개기 일식은 2035년이 되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낮달이 부동의 태양과 자전하는 지구 사이에 한순간 직선으로 놓이며 포개지는 교합 장면 때문에 잠시 세상이 어두워지는 기현상이 연출된다. 태양신 숭배의 긴 역사에서 이런 현상은 서구 문명권에서는 불길한 흉조로 여겨진 반면에, 음의 잠재력을 만물 생성의 근원으로 여겨온 동양에서는 오히려 경사스런 일로 여기곤 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직원들은 미술관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달이 태양을 서서히 삼켜버리는 이 대역전극을 지켜보며, 백남준 예술의 신화적 상상력과 정치적인 비전을 떠올렸다. 항상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그에게 역사상 선례가 없는 비디오 예술은 달과 숙명적 연관 속에 탄생하였다. 개기 일식 바로 이틀 전인 7월 20일은 백남준 탄생 77주년이었고, 특히 그 날은 40년 전(1969) 아폴로 11호의 루이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날과 겹쳤다. 달은 지구 생명의 리듬을 조율하는 별들의 으뜸으로서, 동양사회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보이지 않는 탯
생활필수품을 얻기 위해서는 동네수퍼나 아니면 얼마간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차를 이용해 할인점을 찾게 된다. 동네 수퍼는 가까이 있어 좋다. 접근성이 좋아 가벼운 복장에 부담없이 찾게 된다. 그러나 한가지 흠이 있다면 한여름철에는 냉방이 잘 되지 않거나 종업원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돌아서곤 한다. 물건을 사고 파는 과정 속에 이웃 사촌지간의 정도 사라진지 오래다. 가격이 약간 비싼 것도 흠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나 할인점은 어떤가. 물론 이동을 위해 차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 할인점에는 가족이 한팀으로 이동해 쇼핑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가지런히 정돈된 수많은 물건들을 취사선택하는 재미도 있다. 물론 시간상으로나 금전적으로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야만 이런 형태의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골목상점과의 차이점이다. 골목 상점이나 슈퍼마켓들이 SSM)의 골목상권 진입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SSM입점이 계획된 상가지역을 중심으로 상가 유치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흘려서는 안될 일이다. SSM입점이 계획된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자들이 입점문의가 쇄도하고 있어 오히려 SSM의 시장진입이 가속화될 조
모든 사회개혁을 위해서 ‘역지사지’는 꼭 필요하다. 서로의 입장을 안팎으로 뒤집어 놓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결정적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정치신뢰회복을 위해선 국민들도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정치는 국민은 위한 것이지만 정치인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에게는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현실적기반이 있어야 비판에 대한 힘이 실리고 응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지난 주말 기대를 모았던 쌍용자동차 노사대화가 무산됐다.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는 역지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건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 즉 노사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잣대로 보인다. 회사 측의 일방적이고도 고압적인 행태를 일반 시민들은 곱게 보지 않는다. 공권력은 물과 의약품조차도 공급을 못하게 막고 있다. 회사 측은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을 거듭 내세우는 외에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의 회생과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여기서 한 번만 입장을 바꿔보자. 합의했던 내용이나 국민들에게 발표했던 합의사항을 한 번만 더 곰곰이 짚어보고 따져보
우리나라에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서머싯 몸(Maugham,W.S)의 ‘달과 6펜스’는 후기인상파 대가로 불리는 외젠 앙리 폴 고갱(Eugune Henri Paul Gauguin,1848~1903)이 모델이다. 소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증권거래소 간부로 월급도 많이 받는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로 주위의 두터운 신망과 부족 할 게 하나 없는 40의 중년이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의 부부 관계는 끝났소.” 이런 황당한 메모 한 장만 남긴 채 어릴적 꿈,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타이티로 떠난다. 진정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 단순하고 쉽게 정리하자면 취미가 생활의 수단(手段)이 되었을 때, 다시 말을 바꾸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돈벌이가 되었을 때다. 인생에 만약이 없다지만 월급쟁이(?)에게 만약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 대부분 현재에서 커다란 변화를 원하리라. 그 변화의 다다르는 끝부분은 어릴적의 꿈일 것이다. 얼마 전 이런 소식이 있었다. 서울지방법원장을 지냈고 대형 로펌에서 연봉 수억 원을 받는 올해 66세 어림잡아 칠순 노인네가 소년시절의 꿈, 물리학(物理學)을 전공하기 위해 모든 걸 던지고 미국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