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생태운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회색콘크리트에 정돈된 도로, 건물, 그리고 인위적인 처리시설 등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과 위정자들은 도시를 생태적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태복원을 위해 공원에 나무를 심고, 자연형하천을 조성하는 등 수많은 투자를 하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도시내 인위적인 생태복원이 생태계의 보전과 복원을 실현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 예로 자연형하천 조성의 경우 수많은 나무와 풀이 식재되고, 치어를 방류하여 생태계 복원을 모색하지만 자전거도로, 산책로, 여가 및 휴게시설 등이 설치되어 하천은 인공적인 요소의 범람으로 생태복원과는 거리가 먼 하천의 모습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여름철에는 목초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출하기도 하고, 공원의 수목을 관리하기 위해 비료와 농약을 살포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도시의 생태복원과 유지관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도시가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도시 나름대로 생태적인 기능이 필요하고, 또한 도시인이 생명과 생태적인 감수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화, 개발의 가속화 과정 속에 숲과 논, 밭, 개울이 사
최근 사회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소통’이다.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회자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린 어떤 상황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누군가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막힘으로 갈등을 겪곤 한다. 우선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이러한 노력은 우선 자신에 대한 정체성 파악과 상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이해인 듯하다. 소통이란 결국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지는 정도이며 서로의 정체성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공유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각자의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분이 보내 준 좋은 글에 ‘소통은 성찰이다’라고 정리를 해놓은 글귀를 받은 적이 있다. 소통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사회에 대한 성찰, 자연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된단다. 이 심오한 글귀로 ‘소통’과 ‘공동체 의식’을 함께 생각해보게 하는 일련의 사영들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여러 영역의 사회복지 서비스
보건소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경기도내 각 시·군·구에 설치되어 공공부문의 지역보건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보건소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약사 등이 배치되어 있어 지역주민들의 의료접근이 수월해졌다. 주민들은 보건소에서 일반진료에 해당하는 1차진료, 한방진료, 치과진료를 받을 수 있고 만성병진료, 건강검진 및 검사, 예방접종 등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지난 1997년 IMF 당시 보건소 신규 환자가 급속도로 늘었고 현재까지도 환자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지역주민들이 부담없이 편하게 보건소를 이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보건소 내 영유아 관리실 및 예방접종실에는 이른 아침부터 예방접종을 받으려는 모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반병원에서 1만원가량 하는 BCG, B형간염 예방접종비가 이곳에서는 무료이기 때문이다. 영유아의 경우가 그렇고 일반의 경우는 다르다. 나이에 따라 많게는 7천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일반진료의 경우도 접수비 500원만 내면 전문의의 1차진료와 함께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 검사비도 일반병원에 비해 저렴한 편이이서 주민들의 이용이 줄을 잇고 있다. 검사의 경우도 성병, 에이즈검사는 무료이며 결핵검사는…
‘희망근로 프로젝트’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야심작이다. 그런데 출발부터 삐끗하더니 시행 2주 만에 엉뚱한 곳에서부터 이 사업의 효용성에 관한 부정적 진단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발표한 희망근로는 차상위 계층 실업자에게 6개월 간 일자리를 제공하고 월 80여만 원을 주겠다는 정부의 회심의 카드였다. 이 사업에 소요되는 예산은 40만 가구에 무려 1조7천억 소요된다고 한다. 이러한 막대한 예산이 처음 출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당초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희망근로 프로젝트는 최저 생계비 이하에 재산이 1억 3500만 원 이하인 차상위 계층을 조건으로 출발했다. 영세 상인들의 매출에도 기여할 수 있는 쿠폰제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쿠폰 발행은 오히려 희망근로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고 그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더 크게 터지고 말았다. 당초 취지가 무색하게 된 것은 저소득층 일자리 사업이 중산층 아르바이트로 변질돼 가고 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저소득층 일자리 마련을 위한 희망근로 프로젝트가 중산층의 소일거리로 또는 용돈벌이로 전락하게 된 데는 정부와 지자체 등 집행
내년, 2010년 8월이면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의한 조선강제병합이 이루어진 지 100년이 된다. 일본의 강제병합과 점령에 의해 시작된 한국 현대사에서 100년은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독재를 경험하고 또 민주화를 성취하면서 지나온 시대이다. 그러나 그 여파와 후유증은 아직도 우리의 현실로 이어져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한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 낸 경제발전은 우리에게 무한 경쟁을 요구하고 있고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유난히도 그 빛을 발하는 촛불들과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에서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식도 있다. 또한 세계와 맞장뜨는 북한의 핵 위협은 강도를 높여가고 남북대치 국면은 점점 긴장감을 더해 간다. 또한 대외적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 시도 등 불안한 요소가 상존하는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 우리는 속해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 각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파괴해온 자연환경과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원자재를 흡수하는 중국을 비롯한 개발국가의 천연자원 남용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한 수준에서 위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21세기 인류의 생존을 우려할 정도가 되고 있어 생태적 평화를 절실하게 추구해야할 시점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 언론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인천·경기지역의 대표 정론지인 경기신문의 창간 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시민 우선’ 등의 사시 아래 기존 지방언론의 틀을 깨고 지방신문의 고유성과 지역 중심의 독창적 보도를 통해 지방자치시대에 걸맞는 정직한 신문이 되기 위해 노력해온 경기신문은 그동안 인천·경기지역에서 유일하게 28면을 발행하고 있는 것을 비롯 인터넷판 강화를 위한 국내 유수의 포털사이트 제휴를 통해 독자들에게 ‘따끈한’ 기사를 제공해왔다. 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여론 주도층의 칼럼 필진 구성 등을 통해 지역언론 창달에 크게 이바지해왔다, 이는 지역의 현안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독자와 함께 하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인천지역민 등의 민원 현장에 즉시 달려가 어려움을 듣고 문제해결방안을 제시하는 현장성과 주민 밀착 보도는 지역의 다른 언론에 비해 주목할 만한 점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특히 경기신문은 중소기업대상 등의 여러 행사를 통해 독자와 함께 하는 신문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이
백화점은 ‘근대의 쇼윈도’ 또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백화점은 변화하는 근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자본주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중소도시에 까지 백화점이 들어서 있어서 특별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지만 일제치하 때만해도 백화점은 부자들이나 드나드는 특별한 구매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1852년 프랑스 파리에 세워진 봉마르셰백화점이었고, 동양에서는 1904년 개업한 일본의 미쯔코시(三越)백화점이었다. 조선에서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4년 서울(당시 경성) 남대문통에 개업한 조지야(丁字屋)백화점이 첫 번째였다. 1905년 일본 미쯔코시(三越)백화점이 조선출장소로 개설한 미쯔코시백화점, 1906년 개업한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같은해 문을 연 히라다(平田)백화점, 1931년 개업한 동화백화점, 같은해 창업한 화신백화점 등 모두 6개였다. 그러나 동화백화점은 개업 1년을 채 못넘기고 화신백화점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일제하의 백화점은 5개였다. 조지야, 미쯔코시, 미나카이, 히라다백화점은 일본인 소유이고, 화신(和信)백화점 만이 박흥식이 경영하는 유일한 조선 자본 백화점이었다. 화신백화점의
흘러간 시대에 중매쟁이가 신랑 후보의 외모(外貌)를 소개 할 때 ‘신성일 정도는 안 되지만’, ‘신성일 보다 훨씬 잘 생겼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처럼 모든 기준을 신성일에게 맞춘 적이 있다. 그러나 신성일 보다 훨씬 잘 생겼다고 하면 누구든 곧이를 듣지 않고, 그 사람 허풍쟁이... 이렇게 말 할 것이다. 결국 누구도 부정하지 못 할 그 시절 최고의 꽃미남이 신성일이었다. 얼마 전 ‘신성일이 시대를 위로하다’라는 책이 발간됐다. 솔직히 책 제목이 건방지다. 시대가 사람을 위로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한 사람이 시대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당대 최고 스타라지만... 어쨌든 요즘 연예인들을 탤런트니 엔터테이너라고 그럴 듯한 말로 불러주지만 조금 전만 해도 통틀어 ‘딴따라’라고 낮잡아 불렀다. 그러나 신성일은 딴따라가 아닌 배우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刻印)돼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해 봤더니, 딴따라는 유랑극단이나 서커스단이 손님을 모으기 위해 시가지를 행진하면서 내던 악기소리라고 한다. 신성일씨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반듯한 외모 때문에,고생한번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