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사고는 법률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교통사고 현장에서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도로교통법에 정한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현장을 이탈한 경우 가중 처벌하는 도주차량을 흔히 일컫는다. 모든 교통사고는 운전자가 법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과실에 기인해 발생하므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적용을 받게된다. 그러나 과실사고가 아니거나, 교통사고를 인식하고 피해자 구호없이 도주하는 뺑소니사고는 고의범으로 양형에서 처벌이 매우 무거운 것도 한가지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뺑소니사고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어떤 의무를 필연적으로 이행해야 할까? 사고를 낸 경우에는 반드시 차량을 정차해 피해자와 피해차량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피해자의 상태가 중하다면 곧바로 구급차를 부르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피해자의 상태가 중하지 않다고 판단되더라도 반드시 피해자에게 다친 곳이 있는지를 질문해 확인해야 한다. 이때 피해자가 병원까지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면 반드시 그 요구에 응하여야 하며 혹시 피해자가 특별한 치료가 필요없겠다고 말하더라도 거듭 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피해자와 담당 경찰관에게는 반드시 자신의 성명과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알려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10장 26절에서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고 경고한다. 고구려 고국천왕 시절 유명한 재상이었던 을파소는 단군으로부터 받은 참전계경(參佺戒經)에서 “가장(假章)은 문장을 거짓으로 꾸며 속임이니, 붓을 잡은 사람은 글로써 희롱하니, 글씨를 바꾸어 착하고 어진 사람을 모함하고, 영악한 것을 종용하여 착함과 악함을 거꾸로 하고, 길함과 흉함의 자리를 바꾸나니, 한 사람을 속이면 한 세상을 속이는 것이니, 하늘이 반드시 용납하지 않을진대…”라고 설파한다. 신정아라는 30대 중반의 여성이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미국의 명문 예일대학교의 박사인 것처럼 속이고 동국대학교 조교수로 임명됐으며, 이러한 가짜 학력을 기반으로 미술계의 요직을 섭렵하더니 마침내 광주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내정되기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다. 문제는 그녀의 가짜 행각의 배후에서 누가 힘을 써서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느냐는 점에 있다. 작금의 각종 설을 정리하면 동국대학교의 홍기삼 전 총장이 그녀의 교수 임용에 깊이 관여했으며, 이 대학의 재단 이사 장윤 스님이 신정아의 가짜 의혹을 제기했다가 이사직에서…
‘노익장(老當壯)과 고령화 사회’. 나이가 들었어도 결코 젊은이다운 패기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명장 마원(馬援)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글을 배우고 예절을 익혔으며 무예에도 정통해 그의 맏형 마황(馬況)은 그를 대기만성(大器晩成)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원은 항시 친구에게 말했다.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 도청 소재지로 인구 108만 명에 이르는 수원시의 수장(首長) 김용서 시장은 지난 2002년 만 61세의 나이에 전임시장을 누르고 당선됐고 지난해엔 2위를 압도적인 표차이로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1941년생으로 올해 만 66세인 김 시장. 초선 4년간의 임기와 재선 후 1년 여 동안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노익장’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실감케 한다.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처럼 해외시장 개척과 세일즈를 위해
정부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고 목을 조르는 행위는 반민주적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자유 민주체제에서는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한다. 물론 우리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가 분명하게 명기돼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선진국 대열 진입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에서 지금 심각한 ‘언론 목조르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역사를 위해 실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는 “정부와 언론간의 유착을 끊고 건전한 긴장관계를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 4년여 동안 집요하게 언론의 취재환경을 악화시켜 왔다. 노 정권은 2003년 집권 이후 언론에 대해 ‘조폭 언론’ ‘개혁 저지세력’ ‘반통일세력’ ‘최후의 독재권력’ 등등 저주에 가까운 폭언들을 퍼부어 왔다. 언론의 비판적 논조를 무력화시켜 보자는 의도가 분명했다. 올해 1월 16일 노 대통령은 “몇몇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기사 흐름을 주도하고 담합하는 기자실 실태를 조사할 필요가
화해란 묵은 감정을 풀고 서로 손을 잡는 일체감의 실천 덕목이요, 상생이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생존의 외연확대 방책이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화해란 말을 자주 썼으며, 박근혜 전 대표는 상생이란 말을 강조해온 바 있다. 화해하면 상생하고 상생하면 화해는 저절로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이 화해와 상생의 자세를 교환하며 합세하면 그 힘이 더욱 커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특정 정당의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논리를 펴지는 않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지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분열하거나 와해되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한 기둥이 쓰러지는 결과를 빚으므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나 국민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야당이 바로 서기를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범여권도 선의의 경쟁을 통해 단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그와 그가 속한 정당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명박 후보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부터는 어느 캠프도 없다. 오로지 한나라당만 있다는 그런 것으로서 우리 당직자 여러분들이 협조해 주시기 바란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그는 “
일반적으로 미술 재능아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혼자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나름대로 표현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들 부모는 자녀에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으나 아이들의 작품을 칭찬해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추구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가르쳤다. 이들은 자녀가 원하는 일을 하면 간섭하지 않았다. 자녀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부모들은 다른 아이보다는 좀더, 그럴 듯하게 뽑힐 수 있도록 특별하길 원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순수성을 잃게 하는 것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창작성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저 보통 아이들이 낙서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기 책에 크레용으로 칠하는 수준의 그림을 그릴 때 미술 영재아들은 사물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려고 애쓴다. 음악과는 달리 아주 어린 나이에 미술에 대한 영재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미술은 체계적으로 짜놓은 기능이 아니며, 한 가지를 가지고 반복연습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미술은 창의성과 창작성을 곁들인 것으로 사물을 보고 인식
사람 중에는 두 가지 타입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이다.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을 우리는 창의적인 사람, 발전적인 사람이라 말하고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을 기계적인 인간이라고 말한다. 기계는 매사에 수용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능의 컴퓨터도 소프트웨어가 입력되지 않으면 한낱 쇳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천부의 재능이 있다 해도 적극성과 열의가 없으면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창의성은 단순히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정보(지식, 경험)를 끌어내어 새롭게 조합함으로써 유용한 어떤 사물이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창의적이라 함은 과거나 현재보다 새로운 사물이나 상황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베드레헴 철강회사의 회장은 “목 아래는 겨우 2달러의 가치가 있지만 목 위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며 다음과 같은 창의성 수준의 차이를 “똑같은 양의 강철 덩어리로 어떤 사람은 쇠공을 만들어 5달러의 이윤을, 또 어떤 사람은 바늘을 만들어 350달러의 이윤을
8월은 달콤한 달이었다. 이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밤 모 공중파에서 방영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때문이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이 드라마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는 풍문(?)도 들려오고 있다. 남장여자 ‘은찬’과 재벌 2세인 커피프린스 1호점 사장인 ‘한결’이 티격태격 싸우다가 사랑하게 되는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더욱이 관심이 가는 것은 드라마 덕에 동명의 소설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다. 최근 모 문학전문지가 가을호를 통해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며, 책이 외면받는 것은 작가와 독자들간 소통부재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책이 팔리지 않을 때마다 문학의 위기를 논해왔다. 이는 일본의 문학평론가 겸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63)이 주장한 ‘문학이 죽었다’와 너무 흡사하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를 운운하기에 앞서 왜 책이 팔리지 않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다. 로맨스소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성공은 이러한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른 대중의
인류의 양심은 노예제도를 폐지한 순간 되살아났다. 인간의 심성이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의 주창자 맹자나 그것이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의 신봉자 순자든 간에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보았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족한 인간 중 일부가 권력과 부를 세습하면서 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심지어는 그들을 사고팔았던 역사야말로 오만과 저주와 사악의 본보기였다. 1700년대에 영국의 노예무역 제도를 폐지했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양심의 표상으로 존경받고 있다. 미국의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는 ‘뿌리’라는 주목할 만한 소설을 통해 자신의 7대조인 쿤타킨데가 아프리카의 주푸레 마을에서 노예사냥꾼에게 잡혀 미국으로 팔려가 온갖 고통을 받으며 살아온 내력을 조명하고 있다. 그는 노예의 후손이라는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면서 인권탄압의 반인륜적 작태를 인류의 양심을 향해 고발했다. 이 소설은 그에게 퓰리처상을 수상케 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서게 했다. 우리나라에도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다가 파리처럼 압살당하거나 목이 잘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흔히 노예로 비유되고 있다. 일단의 사악한 인간들은 연고가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서해의 외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