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스위스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라는 공간에서 한 남자의 기상천외한 공연이 펼쳐졌다. 휴고 발이라는 이름의 독일 출신의 젊은 예술가는 마분지로 희한한 공연의상을 만들어 걸친 후 홀로 무대에 섰다. 흡사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과 같았다. 마분지를 둥글게 말아 몸과 다리, 팔을 감쌌고, 마분지 망토와 모자도 걸쳤다. 그는 이 자리에서 ‘카라바네’라는 제목의 시를 읊는다. ‘올라카 올랄라 알로고 붕 블라고 붕….’ 문방서 블로그 아트살롱 그 누구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그저 소리로만 존재하는 시구였기 때문이다. 유럽의 각지에서 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젊은 예술가들은 중립국 스위스라는 작은 섬을 찾아와서 놀라고 아픈 가슴을 이처럼 황당한 퍼포먼스로 표현을 했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잃어버린 인물이었지만, 스위스의 젊은 예술가들은 언어를 상실해버린 이들이었다. 전쟁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린 환자와도 같았다. 이곳 ‘카바레 볼테르’는 중립국…
달 가면(마흔여드레) /김혜순 너는 이제 얼굴을 다 벗었다 하얗고 둥근 달이 동쪽에서 뜬다 동서남북 천 개의 강물에 천 개의 가면이 뜬다 -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 문학실험실·2016 시적 주체는 “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는 목소리에, 일종의 견디기 힘든 수치심에 휩싸인 존재이다. 질문을 듣는 귀는 실제의 귀가 아니라, 자기윤리를 탄생시키는 마음의 귀다. 쉬임없이 들려오는 저 목소리. 저잣거리의 질책은 어떤 명령을 담고 있다. 어떤 의지의 무게로 시적 주체를 덮쳐오고 있다. 주체는 균열되고 분열된다. 고통과 고독으로 전염된다. 마흔여드렛 날에 이르러서 ‘너는 이제 얼굴을 다 벗었다’. 여기에서 “너는 네가 아니고 내가 바로 너”로 나타난다. 너는 “유린의 역사를 지탱해온”,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개별적인 죽음을 겪는 존재이다. 문득 너는 “존재에서 존재자”로 출몰하였다. 너를 탄생시킨 현실은, 죽고 사는 일이 자연스럽지 못하는 곳이고, 죽임이 떠도는 장소이므로, 새로운 윤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의 위험성에 대한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연구진은 빅데이터를 통해 소아 청소년 1천2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CT 검사의 위험성을 분석했다. 세계 최대 규모 연구다. 연구 결과는 미국의사협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 9월호에 실렸다. 이 결과 CT 검사를 받지 않은 경우보다 암 발생이 1.5배나 많았다고 한다. 갑상선암은 두 배 가까이, 뇌암과 혈액암도 1.5배 안팎으로 많이 발생했다. KBS 뉴스는 CT 검사를 한 번이라도 받은 117만 명을 10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1천200여 명에게 암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CT 검사 때 피폭된 방사선의 영향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아 청소년 시기에 암에 걸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홍재영 고대안산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방사선의 영향이 축적된 결과가 여러 가지 유전자나 세포 계통을 변화를 시키게 되고 변화들이 장기간에 걸쳐 2~3년에 걸쳐서 암세포를 유발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방사선은 몸에 지극히 해롭기에 적은 양이라도 쬐지 말아야 한다. 홍 교수는 “무증상 소아청소년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이거나 조직이거나 마찬가지다. 특히, 자기애(自己愛)가 강할 수록 이 증세는 더욱 심하다. 지나친 자기애는 결국 광기(狂氣)를 불러온다. 얼마전 대한민국 최대 권력기관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수원시가 쓰레기 분리배출과 관련해 고백한 자기반성은 좋게 평가할 만 하다. 제 식구 감싸기에 익숙한 조직들의 행태에 비춰보면 차라리 신선하기까지 하다. 갈무리 해보자. 시 청소자원과가 지난 11일 시청 별관 지하 1층 쓰레기 수거장에서 청사 내 19개 부서가 배출한 종량제 봉투 기운데 무작위로 4개를 골라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확인했다. 일명 ‘공공기관 생활폐기물 샘플링 검사’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일반 쓰레기 봉투 4개 가운데 3개 봉투에서 있으면 안될 내용물이 나온 것이다.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이물질이 묻은 비닐 등 분리 배출해야 할 쓰레기가 쏟아졌다. 심지어 휴대전화 충전기 등 소형 가전제품도 발견됐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라 망연자실(茫然自失), 그 자체겠다. 시가 그동안 시민들에게 강조해온 ‘생활쓰레기 분리배출 권장’이 공염불이 되는 순간이다. 시민들이 분리배출을 지키지
두보(杜甫)는 ‘군불견간소(君不見簡蘇)’에서 ‘나무는 백 년을 살고 죽어야 그 나무로 거문고가 만들어지며, 사람은 관 뚜껑을 덮어봐야 그 사람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인 ‘개관시사정’은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독일 속담에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다’라는 것이 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다’는,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의 제목이다.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 납득하면서 살아야 하는 진정한 승부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셰익스피어가 이 교훈적인 제목으로 희곡을 쓰고 대중들에게 연극으로 선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농부도 그 내면의 깊이를 알면 그 어떤 지성인보다도 더한 지혜로움과 삶에 있어서 교훈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에는 그만큼 지혜로움을 가지고 있는 고수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다. 각자의 일생 속에서 ‘오만가지’를 생각하는 각자의 시선에서 본 세상의 그 진리는 깊고 넓다. 인생이란 각 사람이 스스로
경기도가 평택항자유무역지역 내 수년간 자행된 불법 사실을 알고도 이를 ‘양성화’시켜 주었다는 의혹과 함께 지역 내 비판여론이 점차 거세지는 분위기다. 도는 경기신문이 수차례 지적·보도한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내 불법 임대(전대)에 대해 그동안 ‘경기침체’ 등의 이유로 상당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급기야 도는 지난 8월 12일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내 M로지스틱에 입주해 있는 S기업 등에 ‘입주계약’을 체결해 주면서 사실상 불법 의혹을 확인하기보다 ‘양성화(?)’로 오히려 불법 의혹을 덮었다는 비난을 평택항 인근 물류업체들로부터 거세게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내에서 암암리에 이뤄져 왔던 불법 임대(전대)가 도의 이번 결정에 따라 공개적으로 자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6년~2017년 경 M로지스틱과 입주해 있던 S기업은 금전적인 관계 등으로 고소고발사건을 진행한 바 있었고, 이 과정에서 ‘토지소유권’과 관련한 다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M로지스틱 내 토지들은 S기업과…
역지사지. 맹자의 ‘이루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우(禹)는 중국 하(夏)나라의 시조로 치수(治水)에 성공한 인물이다. 후직(后稷)은 중국에서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는 인물이다. 맹자는 이들을 논하면서 “우 임금은 천하에 물에 빠지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를 잘못해서 그가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기의 잘못으로 그가 굶주린다고 생각해서 백성 구제를 급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한다’는 뜻의 ‘인익기익(人溺己溺)’, ‘인기기기(人飢己飢)’라는 말이 나왔다. 맹자는 그와 유사한 표현으로 역지즉개연( 입장을 바꾸면 다 그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표현이 역지사지의 유래 라는것. 잘 알려진것과 같이 역지사지는 다른사람의 처지에서 생각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쓴다. 하지만 의미대로 실천에 옮기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떤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일찌기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
아침 뉴스에 오늘 오후 황사가 몰려온다고 바깥 외출을 삼가라는 내용이 나온다. 황사는 모래바람이지만 그 속엔 몸에 안 좋은 중금속이 섞여 있다. 특별히 기관지가 안 좋거나 천식 환자는 황사를 조심해야 한다. 황사와 미세먼지의 차이점은 황사는 모래바람이면, 미세먼지는 중국의 공업지대에서 규정없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대량의 대기오염 물질이다. 황사의 피해가 심각한 시점엔 아침마다 출근길에 나서야 하는 나는 걱정부터 앞선다. 알레르기 비염인 나는 황사가 실로 두렵다. 멀리까지 이동해 한반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는 시정(視程) 장애, 호흡기 질환, 눈 질환, 알레르기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 나아가 황사에 포함된 미세 입자들이 대기 중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각종 산화물을 생성하는 까닭에 흡연자들의 만성기관지염을 악화시키고, 노인과 영아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황사의 정체란? 중국의 북부 내몽고 지역의 광대한 사막지대에서 하늘을 덮고 몰려오는 이 황사는 도대체 무엇인가? 황사 황토지대나 사막 등지에서 발생한 사진(沙塵)이 바람에 의해 멀리 퍼지는 현상으로 봄철에 물어오는 바람을 통하여 황사 먼지 속에는 토양을 구성하는 철분, 알루미늄…
2019년 교사의 머리를 장난으로 때린 중학생이 학교로부터 ‘출석정지 10일’의 처벌을 받았다. 서울의 A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은 “2만원을 줄테니 선생님을 때려보라”는 친구의 말에 이 같은 행동을 저질렀다. 폭행을 재촉한 학생에 대한 징계도 출석정지 10일에 그쳤다.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교원지위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개정 의결돼 앞으로 교원의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한 규제가 이전보다 대폭 강화될 예정이다. 오는 1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인 ‘교원지위법’은 교사가 오로지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특별법이 시행된다. 지난 9월 김한표 의원(자유한국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교권침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교사들이 학생 및 학부모로부터 상해·폭행, 폭언·욕설, 성희롱 등 교권침해를 당한 횟수는 1만5천103건에 달했으며,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는 2014년 3천946건에서 2018년 2천244건으로 줄었으나 상해와 폭행의 경우 86건에서 165건으로, 성희롱은 80…
일기예보 /이화은 보도블럭 한 페이지에 지렁이 한 마리 온몸을 밀어 무언가 쓰고 있다 철자법이 맞지 않아도 똑똑한 사람들 모두 비라고 읽는다 한 획만으로도 충분히 천기를 누설하고 있다 내일은 꿈틀꿈틀 비 오시는 날 비라고 써도 사랑이라고 읽는 사람에게 긴 긴 연애편지나 써야겠다 - 이화은 시집, ‘미간’ 세상은 온통 은유로 가득 차있다. 우리는 풀과 나무와 꽃들을 보며 바람의 방향을 알고 계절을 안다. 이렇듯 직접적인 표현이나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채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네도 그렇다. 얼굴색이나 표정을 보고 상대방의 속내를 알아채거나 짐작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러한 미묘함은 사람에 앞서 미물들이 먼저 안다. 지렁이와 개미떼의 행렬, 그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것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은유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다. 보도블록 한 페이지에 지렁이 한 마리가 온몸을 밀어 무언가 쓰고 있다. 철자법이 맞지 않아도 내일의 날씨를 알 수 있게 하는 그 몸짓에서 우리는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 화자는 내일 할 일을 생각한다. 비라고 써도 사랑이라고 읽는 사람에게 긴 긴 연애편지나 써야겠다고 한다. 비 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