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큰 인기를 누렸던 남자배우가 나이를 먹으면서 잃는 것은 잘생긴 외모이고 얻는 것은 주름이 주는 너그러운 인상이다.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의 주인공 브랜든 프레이저에게서 이제 '미이라'(1999) 때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급격하게 늘어난 체중으로 배우로서의 삶이 추락할 때 그는 '더 웨일'(2022)을 통해 차라리 272㎏이라는 극단적 몸집의 캐릭터(특수분장)를 연기해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신작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에서는 인생의 굴곡과 파고를 겪은 사람 특유의 밑바닥 인고(忍苦)의 표정을 현실감 있게 연기해 낸다. 영화를 만든 감독 히카리(본명 미야자키 미쓰요)가 브랜든 프레이저를 캐스팅한 건 역설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일본 사회의 특수한 문화를 반영하는 역할 대행 서비스란 직종에서 백인 남자가 일한다는 건 아무래도 이야기를 짜맞추기가 쉽지 않거나 아예 억지스러운 일이 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 역할을 일본인 혹은 아시아인이 했다면 영화는 오히려 정말 그렇고 그런 신파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제목인 ‘렌탈 패밀리( レンタル・ファミリー, 렌타루 파미리)’는 영화 속에
개봉 직후 폭발적인 입소문과 함께 2주 만에 200만 관객을 넘은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인기와는 다르게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영화이다. 흥미롭고 특이한 점은 그 흠결들조차 대중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영화의 패착은 다소 즐비하게 나열되며 때론 불필요해 보이는 코미디의 요소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흥행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장항준은 슬랩스틱 형 코미디 드라마(‘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리바운드’)에 장기가 있는 감독이다, 가 아니라 자신의 장르적 변신(‘기억의 밤’ ‘오픈 더 도어’)을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감독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감독은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건 당위의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장항준 표 코미디 사극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내용은 사실 무거운 얘기이다. 옛날 작가 이광수가 쓴 '단종애사'와 같다. 조선 왕조 초기는 그야말로 피 바람의 역사였다. 특히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한명회와 함께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했던 1453년의 계유정난 때 서울 종로의 재동(지금의 헌법재판소 일대)은 황보인
화제작 ‘하우스메이드, The Housemaid’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는 사실 따로 있다. 주연인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소름 끼칠 정도의 광적인 연기를 펼쳤고 또 다른 주연인 시드니 스위니가 아직 젊고 어린 나이에도(1997년생) 놀랄 만한 알몸 연기와 베드신을 선보였지만, 올드팬들에게는 엘리자베스 퍼킨스의, ‘알아보기 힘든’ 노년의 모습(1960년생)이 더 놀랍다. 40년 전 ‘어젯밤에 생긴 일’(1986)에서 데미 무어와 나와 스타덤에 올랐고 영화 ‘빅’(1988)에서 톰 행크스의 상대역으로 나와 인기 절정이었던 배우다. 이번 ‘하우스메이드’에서는 남자 주인공 앤드루(브랜든 스클레너)의 엄마로 나온다. 대사도 많지 않다. 깡마르고 성질이 이상한, 뭔가 정신질환의 근원 같은 느낌의, 늙은 여자로 나온다. 스타도 다 한 시절이 있고 그것은 또 순간 지나간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하우스메이드’는 처음엔 오래전, 전설이 된 B급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1992)의 리메이크가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게 한다. 일단 안정적인 집안에 가사도우미가 들어오고 그 여자와 집의 여주인, 그리고 그녀의 남편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정 살인극이라는 테두리가 흡사하다. 그러나
2020년에 발간된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 ‘피가 흐르는 곳에, If it bleeds’의 모든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현재 한국 극장가의 구석, 곧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거의 종영을 기다리고 있는 ‘척의 일생’도 이 중단편집에 두 번째로 실려 있는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답게 다소 기이한 공포의 감성도 섞여 있는데 예컨대 척의 할아버지 앨비(마크 해밀. 맞다.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그 마크 해밀이다)가 어린 손자인 척(벤자민 파자크)에게 절대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지붕의 골방과 같은 존재가 그렇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절대 금기시하는 그 방에는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실제로 할아버지 앨비는 이 방문을 연 손자를 계단으로 밀쳐 낸 후 방 안의 ‘어떤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미스터리는 스티븐 킹의 장기이자 일종의 낙관 같은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 그의 소설 속 요소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 전체의 주제를 밀고 나가는 하나의 소도구이자 맥거핀(MacGuffin: 눈속임 장치)일 뿐이다. 그의 작품에는 그보다 더 심오한, 인생과 세상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감독인 마이크 플래너건 역시 지금까지 ‘오큘러스’나 ‘힐
영화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넷플릭스 최대 히트작 가운데 하나이다.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은 단 회 형식으로 한 편씩 공개돼 오고 있다. 러닝타임은 대략 2시간 10여 분씩들이다. 이번이 세 번째로 부제는 ‘웨이크 업 데드 맨’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죽은 자가 (예수처럼) 살아나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돼 있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미스터리 추리극을 골간으로 한다. 주인공이 사설탐정이다. 이름은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다. 블랑 탐정의 캐릭터는 1회 때는, 아무리 댄디한 신사형으로 바꿨다 한들 명백히 전설의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에르퀼 푸아로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2편을 거쳐 이번 3편에서는 역사상 지금까지 손에 꼽을 수 있는 여러 사립 탐정 캐릭터를 다 혼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도 들어 있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도 들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더블버튼 재킷 정장을 입고 다니며 총을 갖고 다니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지략과 통찰, 혜안으로 사건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데 있어 모두가 ‘도사급’이다. 기본적으로
영화 ‘원더랜드’가 좋은 영화라는 것,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가 신하균에게 하는 대사, 곧 “나 너 착한 거 안다”처럼 따뜻하고 착한 작품이라는 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또 동의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전설의 영화감독 하워드 혹스가 얘기한 대로 좋은 영화란, 좋은 장면 세 개쯤이 있는 작품이라는 원칙 아닌 원칙을 적용할 때 ‘원더랜드’는 세 개 정도는, 아니 그 이상의 좋은 장면으로 차고 넘치는 작품이다. 그 점에 대해서도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17일 현재 전국 570,347명을 모은 수준으로 이 정도면 시쳇말로 ‘폭망’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원더랜드’의 이야기 축은 세 개이다. 아니 네 개이다. 중심은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가 이끄는 AI 여행사 원더랜드 팀이다. 이 둘은 죽어 가는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들 존재가 지닌 모든 정보를 사이버 상에 심어 놓고 앞으로 그를 그리워할 사람들, 그의 존재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도록, 그것도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슬쩍 극장에 나타났다가 겉치레로 상영을 하는 둥 마는 둥 사라진 영화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애당초 목표가 부가형 서비스 윈도우(VOD나 케이블TV, OTT)였을 것이다. 이제는 극장 상영작이 아닌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저어하거나 마다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됐다. 극장이든 비극장이든, 결국엔 어떻게든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전에 이런 영화가 있(었) 다는 것 정도 알고 있는 것은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물론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매우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나중에 VOD나 OTT로 보기에, 그렇게 시간 때우기용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떨어지는 작품도 아니다. 영화는 종종 재미로, 쉬기 위해, 그래서 일상의 활력을 얻기 위해 보는 것이다.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그렇게 머리를 쉬고, 리프레시(refresh) 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우리말 제목의 느낌대로 할리우드, 곧 LA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한 사립 탐정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립 탐정은 뉴욕 같은 동부보다 LA, 캘리포니아가 많다. 미국의 동쪽은 춥고 서쪽은 따뜻하며 사람들이 친절하고 '루스'하다. 특히 할리우드는
일본에서 가장 잘 우는 여배우는 안도 사쿠라이다. 그녀는 감정만 살짝 잡아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영화 ‘한 남자’에서도 첫 장면부터 안도 사쿠라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영화 ‘한 남자’는 그렇게 시작한다. 일본의 미야자키(큐슈 내의 지역으로 일본 본토인 혼슈에서 꽤 떨어진 곳이다. 오키나와 다음으로 일본 최남단 지역으로 꼽힌다)에서 세이 분도(誠文堂) 문구점이라는 조그만 가게를 하며 살아가는 타케모토 리에(안도 사쿠라)는 비가 오는 날 가게에서 눈물을 흘리며 홀로 울고 있다가 한 남자 손님을 맞는다. 나중에 타니구치 다이스케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이 남자(쿠보다 미사타카)는 훗날 리에의 일생을 송두리째 흔들게 된다. 리에는 유토란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유토 밑으로 료란 이름의 아들이 하나 더 있었으나 2살 때 뇌종양으로 죽었다. 둘째가 죽는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했다. 그녀는 죽은 아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다. 그래서 종종 혼자 운다. 슬픔에 젖어 사는 리에의 빈 공간을 약간은 과거가 수상해 보이는 남자 다이스케가 스며 들어온다. 그는 주변 벌목 회사에 일하는 노동자이다. 벌목꾼이다.
김성훈 김독, 하정우·주지훈 주연의 영화 ‘비공식 작전’은 흥행 면에서는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첫 주 100만 안팎) 예상외로 활기찬 작품이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이유는 1) 대체로 텍스트가 이해하기 쉽고 2) 1980년대 후반의 시대 묘사가 섬세하다는 점 3) 레바논 내전 당시 벌어졌던 실제 사건(도재승 서기관 납치 사건)을 드라마틱 하게 구성했다는 점 등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객들이 내심 이 영화에 크게 동화되고 있는 건, 1980년대 전두환 – 노태우 독재 시대 때 벌어졌던 국가적 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 방식 등등이 2023년 현재의 정부 모습보다 훨씬 더, 백배 더 낫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 기이한 역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만약 지금 누군가, 재외국민이든 국내 해외여행객이든 납치나 재난을 당했을 때 현재의 국가나, 공무원 중 누군 가가, 영화처럼 구하러 나설 것인가. 과연 그럴 것인가. 영화는 종종 과거 일을 통해 현실을 일깨우게 한다. 기이한 깨달음을 준다. ‘비공식 작전’이란 영화 한 편이 지금 세상을, 전두환 시대 때보다 못한 현실로 깨닫게 할 줄은 이 작품의 감독이나 배우도, 이
안타깝게도 국내외 모두에서 흥행에 실패한 실사영화 ‘인어공주’는 몇 가지 지점에서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두드러질 만큼 아주 다른데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인어공주가 흑인이라는 점이 제1의 요소는 아니다. ‘공주=흑인’은 차이라기 보다 비교적 단순한 특징, 캐릭터의 외모 설정에 불과하다. 인어공주가 흑인이기 때문에 내용이 달라지거나 극 전체의 톤 앤 매너가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냥 피부가 까매서 처음엔 다소 ‘신기하게’ 느껴지다가도 이내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이번 ‘인어공주’가 안데르센의 원작이나 1989년에 나온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와는 궁극의 지점에서 각각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1) 원작과는 결말을 완전히 다르게 갔다는 것이고 2) 1989년 애니메이션과는 왕자의 캐릭터가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실사영화에서 왕자는 ‘백마를 탄’ 이미지가 아니다. 그는 다른 선원들과 함께 갑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백성처럼, 일반 국민처럼 살아가려는, 그래서 ‘보통 사람의 정치학’을 깨달아 가려는 꽤 괜찮은 덕목의 지도자 청년으로 나온다. 심지어 왕자는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다. 외모상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