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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1980년대보다 못한 지금. 그 이상한 진실의 영화

124. 비공식작전- 김성훈

 

김성훈 김독, 하정우·주지훈 주연의 영화 ‘비공식 작전’은 흥행 면에서는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첫 주 100만 안팎) 예상외로 활기찬 작품이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이유는 1) 대체로 텍스트가 이해하기 쉽고 2) 1980년대 후반의 시대 묘사가 섬세하다는 점 3) 레바논 내전 당시 벌어졌던 실제 사건(도재승 서기관 납치 사건)을 드라마틱 하게 구성했다는 점 등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객들이 내심 이 영화에 크게 동화되고 있는 건, 1980년대 전두환 – 노태우 독재 시대 때 벌어졌던 국가적 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 방식 등등이 2023년 현재의 정부 모습보다 훨씬 더, 백배 더 낫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 기이한 역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만약 지금 누군가, 재외국민이든 국내 해외여행객이든 납치나 재난을 당했을 때 현재의 국가나, 공무원 중 누군 가가, 영화처럼 구하러 나설 것인가. 과연 그럴 것인가. 영화는 종종 과거 일을 통해 현실을 일깨우게 한다. 기이한 깨달음을 준다.

 

‘비공식 작전’이란 영화 한 편이 지금 세상을, 전두환 시대 때보다 못한 현실로 깨닫게 할 줄은 이 작품의 감독이나 배우도, 이 영화를 만들게 한 많은 투자자, 그리고 제작자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86년 레바논 주재 서기관인 오재석(임형국)이 납치된다. 이유는 일본인인 줄 알고 몸값을 벌 요량으로 무장 분파 중 하나가 납치했으나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데다 내전이 복잡해지면서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게 된 것.

 

한국 정부는 손을 놓은 지 오래지만 어느 날 이민준 사무관(하정우)이 오재석이 보낸 모스부호를 받게 된 후 직접 인질 석방에 나서게 된다. 몸값은 250만 달러. 문제는 이 몸값을 여기저기서 다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민준은 돈도 지키고 서기관도 구출해 내야 한다.

 

그러던 중 레바논에서 개인택시 영업을 하고 살아 가는 사기꾼 김판수(주지훈)가 이 위험한 사건에 우연찮게 개입하게 되면서 일은 더욱 꼬이게 된다. 이민준은 이제 김판수로부터도 돈을 지켜야 한다. 둘은 결국 힘을 합쳐 이 역사적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요약된 줄거리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단순화이다. 복잡할 만한 내용은 다 버렸다. 그것도 매우 과감한 수준으로. 예컨대 레바논 내전이 얼마나 복잡했는지 그런 건 불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레바논 내전을 거의 단순하게 조직폭력배들의 싸움 정도로 격하시켰다. 그것도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 단순 도식화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 단순 무식한 접근 이야말로 대중 관객이 이 영화를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한다. 아이러니한 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레바논 내전은 1975년~1986년 집중적으로 진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중동의 파리로 불렸던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철저하게 파괴된다. 베이루트를 장악함으로써 레바논의 지휘권을 차지하려 한 이스라엘과 시리아, 레바논 정부를 대표했던 기독교 민병대의 팔랑 헤 당, 무슬림 민병대를 대표하는 헤즈볼라 간 4파전이 전개됐다.

 

여기에 전통적인 종교 세력인 기독교와 회교 간 다툼, 곧 마룬 파와 시아 파의 갈등이 중첩된다. 모든 갈등의 시작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들을 강제로 몰아낸 데서 시작됐으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인 PLO가 본부를 요르단에서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옮기면서 본격화 한 것이다. 레바논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 놓여 있는, 우리의 경기도 정도의 규모의 지중해 연안 국가이다.

 

 

이 복잡다단하다 못해 처절할 정도의 갈등 구조였던 레바논 내전은 일반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비극들을 초래했는데 그 얘기는 캐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2010년에 만든 ‘그을린 사랑’에 담겨 있다. 한 기독교도 여성이 내전에 휘말려 겪게 되는 상상하기 힘든 비극을 그린다.

 

‘비공식 작전’에는 그런 얘기가 단 1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영리한 선택이었던 셈인데 만약 그 ‘그을린’ 역사마저 보여주려 했다면 영화는 완전히 길을 잃고 헤맸을 가능성이 높다.

 

김성훈 감독은 ‘비공식 작전’을 인질 강탈 영화의 작법으로 구축하려 했으며 대중영화의 규칙을 지키는데 만족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중영화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지만 그것 때문에 영화의 내용은 대폭적으로 하향평준화됐다.

 

대신 재미와 롤러코스터의 액션 느낌을 살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됐다. 영화 만들기란 늘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대신 김성훈은 1980년대 후반의 한국 정치 상황을 슬쩍 끼워 넣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의 정권 교체기, 의사(擬似, 사이비) 민주주의 사회 체제의 수립, 88 서울 올림픽 전야의 모습, 그 가운데 당시 외무부와 안(전)기(획)부의 주도권 경쟁 등을 알맞은 수준으로 펼쳐 보인다. 레바논 내전보다는 훨씬 더 이해가 쉽다. 우리 얘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민준은 외부의 적(레바논 테러 단체)과 내부의 적(정부 부처 간 갈등, 안기부장의 횡포)과 동시에 싸워 내야 한다. ‘비공식 작전’은 그 중첩의 모순 구조를 풀어 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임순례 감독이 얼마 전에 내놓은 영화 ‘교섭’과 차이가 생긴다.

 

항간에는 ‘비공식 작전’이 ‘교섭’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두 영화는 ‘확실하게’ 다르다. ‘비공식 작전’이보다 선명한 텍스트 구조를 갖고 있는바, 우리 편과 상대 편이 분명하고 선과 악이 정확하다. 심지어 CIA 요원으로 나오는 카터(번 고먼)조차 매력적인 착한 인간으로 분장시킨다. 그 단순 대립이 이 영화를 ‘교섭’보다 성공의 위치로 끌어 올릴 것이다.

 

 

‘비공식 작전’은 조연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며 그 서브플롯이 잘 받쳐 준 영화이다. 안기부장 역의 김흥수, 외무부 장관 역의 김종수, 외교부 과장 역의 박혁권, 부장 역의 유승목 등이 모두 자기 역할들을 충실하게 해낸다. 이들 때문에 에피소드들이 풍부해졌으며 영화의 유머와 재미가 강화됐다.

 

외국인 배우들의 연기도 그간의 한국 영화가 보여 온 아마추어 수준을 완벽하게 뛰어넘은 것인 바, 번 고먼의 무표정 연기가 눈에 띄고 인질 협상 중재자이자 미술상 역의 마르친 도로친스키라든가 테러범 연기를 했던 다수의 모로코 연기자들도 영화의 동력을 이뤄내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비공식 작전’은 세트가 일품인 작품이기도 하다. 외교부 사무 공간의 디자인, 조명, 미술 소품 등은 이 영화가 지닌 디테일의 수준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을 과시한다. 영화 ‘비공식 작전’은 거대담론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했거나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실패시킨 작품이다.

 

대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방식을 따랐다. 국익이니 국가보다는 단 한 명의 사람을 구하려는 인간주의에 치중했다. 물론 그런 내용이 더 거짓말일 수는 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려는 것,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위해 자칫 내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은 지금 시대라면 판타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 때가 지금보다 더 나았으며 더 인간적이었다는 자각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영화 ‘비공식 작전’은 그래서, 아픈 각성의 바느질 같은 영화이다. 영화의 역할은 늘, 그 정도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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